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지수 Aug 29. 2022

농경 문화 속에서 습득한 자연 이치

우리 문화유산에 깃든 자연 경외

1부_한국 공예의 오랜 화두자연 그리고 공예 정신(1)


국립중앙박물관, 선사실, 2016 



우리나라는 오랜 역사를 거쳐 온 덕에 일제강점기 수탈이나 전쟁을 겪고도 많은 문화유산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문화유산에는 유형, 무형의 다양한 유물이 존재합니다. 유형 유산에는 오래된 건축물이나 조각품, 회화, 공예품 등이 있습니다. 무형유산에는 음악·연극·무용·공예 기술 및 놀이 등 사람들의 행위를 통해 전승되는 문화재 전반이 해당됩니다.

이러한 모든 유산은 한국의 자연에서 인간이 생(生)을 영위하기 위해 적응하고 개척하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생성된 것입니다. 한국은 사시사철 사계의 변화가 뚜렷한 온대지역입니다. 신석기시대 이후 농경문화가 자리 잡으면서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관심은 자연환경에 잘 적응하고 활용하여 잘 먹고 잘 사는 것에 맞춰졌습니다. 그러나 자연은 인간의 의지에 의해 관여되거나 조정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농사를 지을 때 비가 가장 필요할 때는 5월 모내기할 때입니다. 이때 비가 적정량 오지 않으면 이른 봄 모종을 키운 농부의 노고는 둘째치고 일 년 농사를 시작하기도 힘듭니다. 이삭이 여물기 위해선 뜨거운 여름 햇살이 필요합니다. 자주 태풍이 올라와 아직 여물지 못한 이삭을 떨구고 벼를 꺾어 버리면 이 또한 낭패입니다. 봄에 그토록 필요했던 비 소식 역시 가을 수확 철에 집중되면 그 또한 낭패입니다. 그래서 그 옛날 환웅(桓雄)이 세상에 내려와 인간세상을 구하고자 아버지인 환인의 허락을 얻어 내려올 때 천부인(天符印) 3개와 더불어 농사에 필요한 신(神)인 풍백(風伯)·우사(雨師)·운사(雲師)를 거느리고 내려왔나 봅니다. 


이처럼 자연을 통해 의식주를 해결할 수밖에 없는 인간은 자연스럽게 자연을 경외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인간이 자연을 이용하여 살아가되 자연의 상태를 유지시키고 거대한 규율을 해치 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야말로 바로 선인들이 자연을 이해해온 삶의 지혜였습니다. 즉, 인간이 자연과의 유기적 관계 안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 그것은 살아있는 생명체로써 인간의 삶을 살아가는 ‘생의 이치’입니다. 이것은 옛 지혜가 아니라 오늘날 자연에서 의식주를 채취하여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이어져 내려오는 삶의 방식입니다. 얼마 전, 시골에 사는 고모님을 만나 뵈러 갔다가 산에 산나물을 채취하러 가신다 하여 따라갔었습니다. 서울 사람이라 풀처럼 생긴 것이 모두 나물이고 약초라 하여 설명을 들으니 무척 신기하고 욕심이 났습니다. 이것도 캐가고 저것도 캐 가면 나물도 무쳐먹고 국도 끊여먹고 싶어 제법 욕심을 부렸습니다. 그랬더니 고모님 말씀하시길.. “아가, 그럼 못쓴다. 먹을 만큼만 가져가야지 다음에 산에 올라올 때 재미도 있고 남은 걸로 산짐승들도 뜯어먹고살지.”하셨습니다. 그렇죠. 자연 앞에서 인간의 욕심이란 그렇게 하잘 것 없는 것입니다. 어떤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으면 자연은 회복이 불가능하고 그 폐해는 고스란히 인간의 몫으로 되돌아오니까요.


자연은 어느 날 갑자기 돌변해 인간의 생명과 삶을 위협하기도 한다.


시골 아낙의 생각에도 이처럼 기본적으로 자연스럽게 자연에 대한 존중과 회귀의 정신이 녹아있습니다. 온대기후 속에서 사계의 변화에 맞춰 농경을 주업으로 삼는 동아시아에는 유독 자연의 규율을 중시하는 문화가 발달해 있습니다. 자연의 규율을 다른 말로 바꾸면 ‘도(道)’입니다. 이 자연의‘도’는 만물의 존재론적 근거인 동시에 인간 삶의 윤리적 근거이기도 합니다. 이는 동양 예술의 핵심적인 키워드입니다. 

도는 자연뿐 아니라 인간을 비롯한 자연에 존재하는 모든 존재 안에 내재되어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천지만물은 근원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서로 유통하는 존재입니다. 사람만이 주체가 아니라 세상의 모든 것이 주체로 간주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동아시아의 문화와 예술은 이러한 사유를 전제하고 그 사유를 바탕으로 생성되었습니다. 



앞서 말했듯 자연환경에 따라 유목하며 육식과 채집을 주로 하는 민족보다 한 자리에 정착하여 곡식을 재배, 수확하여 생존에 필요한 것을 얻는 농경 문화권 사람들에게 농사를 좌지우지하는 자연의 이치를 깨닫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일일 겁니다. 자연을 거슬러 인간의 의지를 관철시키는 노력-예를 들면 홍수를 막기 위해 보를 쌓거나 마을에 들이닥칠 해일이나 바람에 대비하여 방풍림을 조성하는 등의 노력 말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의지와 노력을 한순간에 무위로 돌려버리는 실패를 경험한 인간은 결국 자연이 하는 일에 인간은 간섭할 수 없으며, 오로지 스스로 궁구하여 주어진 결과에 대해 자연이 품은 이치를 깨닫고 순응하며 그에 맞게 최선을 실천하는 것밖에는 도리가 없다고 믿었을 겁니다. 즉, 자연의 일 앞에 인간이 할 일이라고는 자신들에게 필요한 것은 살리고 필요 없는 것은 제거하거나 고치는 일밖에는 없었습니다. 그것은 혹독한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하는 것보다 자연이 하는 일이 더욱 빠르고 광범위했기 때문입니다. 조그맣게 라도 텃밭을 가꾸시는 분들이라면 얼마나 빨리 잡초가 자라는지 아실 겁니다. 예전에 주택에 살 때, 일이 바빠 일주일간 집을 비웠더니 마당이 어찌나 풀숲으로 우거지던지 놀랐던 일이 있습니다. 정성껏 마당을 가로질러 놓았던 주춧돌은 보이지도 않더군요. 이처럼 자연은 인위보다 빠르고 예상을 뛰어넘습니다. 따라서 옛사람들 역시 자연이 변화하는 원리를 체득하고 그에 따라 자신의 해야 할 바를 정해 행하는 것을 제일가는 생존의 비결로 여길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