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사가들은 한국 미술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2부. 한국 미술에 나타난 자연미(1)
'문화'란 인간 경험의 장(場)에서 산출되는 것이기에 한국 미술 역시 한국의 풍토, 한국인의 삶 전체와 연관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한국미술의 특징을 이야기할 때 제일 먼저 언급되는 것이 바로 '자연미(自然美)'입니다. 고대부터 한국은 자연 자체를 부모처럼 생각하면서 자연신에게 제사를 드렸으며 이는 한 해에 대한 감사와 새로운 해의 풍요를 기원하는 의미였습니다. 무속신앙이나 도교, 불교 그리고 유교를 막론하고 한국인의 삶의 자세에는‘자연과의 사랑 내지 조화’가 그 기조에 깔려있습니다. 한국인에게 있어 자연은 인간을 포함한 생활 터전인 동시에 의식주를 해결하는 자양의 공급처이며, 그것은 내가 종당 죽음 이후에 돌아가야 할 고향입니다.
자연에 순응하려는 한국미의 특성은 오래전부터 여러 미술사학자들이 주목해 왔습니다. 일제 강점기 미술 비평가였던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悦, 1889-1961)는 『조선과 그 예술』에서 ‘중국 예술도 유럽 예술도 고대로 거슬러 갈수록 ‘자연에 대한 무심(無心)한 신앙’이 보이고, 시대와 더불어 ‘자연에의 반역’이 나타난다. 그에 비해 조선의 예술(陶藝)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 조선 도자기의 아름다움은 자연이 가호하고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아치(雅致, 아담한 풍취)는 모두 자연이 베푸는 은혜이다. 자연에의 무심한 신뢰, 이것이야말로 후기의 예술에 있어서 놀랄만한 특수한 예가 아닌가’라고 하였습니다. 야나기 무네요시는 민예운동을 주창한 미학자로서 버나드 리치, 하마다 쇼지( (濱田 庄司, 1894~1978)과 함께 일제 강점기 조선을 돌면서 한국의 주요 문화재를 둘러보고 도자기, 목가구 등을 비롯한 수집한 한국공예품의 열렬한 애호인 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야나기의 기술에 나타난 ‘자연에 대한 무심한 신앙’은 실상 도자기뿐 아니라 한국미술 전반에서 볼 수 있는 특징입니다.
이후 야나기를 계승하여 일제강점기 우리 미술을 연구한 미술사학자 고유섭은 자연에 순응하는 이 같은 한국미를 ‘무기교의 기교’, ‘무계획의 계획’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그 예로 집을 지을 때 자연의 지형을 이용하여 쌓고, 추녀를 올릴 때 나무를 기교적으로 깎지 않고 자연 그대로의 굴곡진 목재를 그대로 살려 얹어 만드는 것을 예로 들었습니다. 즉 한국미술에는 자연에 대한 강압이 없고 자연에 대한 순응이 있다고 하였으며, 흙냄새가 짙은 한국미술의 특징을‘구수한 큰 맛’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고유섭의 ‘무관심성’이 제기된 후 김원룡은 1968년 발표한 저서 『한국미술의 역사』에서 한국미술의 특징을 ‘자연주의(自然主義)’라고 규정 지었습니다. 여기서 자연주의는 서구 문예사조로서 사실주의 내지 리얼리즘, 자연주의(naturalism)와는 다릅니다. 동양의 자연이 도덕 내지 근본(氣)으로서 여겨져 왔다면, 서양의 자연은 물질 또는 법칙을 가리키는 개념으로 간주되어왔습니다. 따라서 서구에서 자연은 인위적인 것, 제도적인 것에 비해 열등한 것으로 여겨지면서 통제와 가공의 대상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서구는 리얼리즘에 입각하여 자연을 과학적 방법에 의거하여 분석하는 실험적 소설을 창작하거나 19세기 말 유럽에서 일어난 자연주의의 회화 버전인 인상파에서는 에서는 자연을 빛과 색의 간섭을 통한 광학현상으로 읽고 이를 점과 같은 기하학이나 광학에 입각한 색의 변화 같은 과학적 방법으로 해독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서양의 자연 인식은 거슬러 올라가 서구 사유에 있어 뿌리 깊은 그리스 자연철학 및 모방설에 기초한 미학사상에 근원을 두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서구인들의 사유방식에 나타난 자연주의는 그 어떤 형태이든 간에 인간 대 자연, 주관 대 객관이라는 이분법적 구도를 포기하지 못합니다. 그에 반해 앞서 설명했듯 동양의 자연은 가공/통제해야 할 대상이 아닌 성찰과 흠모의 대상, 분리되어 있으나 분리되어 있지 않는 일체와 합일의 존재로 봅니다.
다시 김원룡의 견해로 돌아가서, 그는 제작하는 마음이 순수하고 순진한 것이야말로 한국미술의 특성이라 하였습니다. 옛 장인(匠人)들이 공예품을 만드는 데 있어 가능한 인공의 흔적을 줄이려는 경향이 뚜렷하다는 점, 자연재료의 형태나 색을 되도록 가공하지 않고 최대한 자연 그 자체로 남기는 제작 태도 즉,‘인공을 회피하는 자연에의 순응, 자연적인 것에의 기호’를 김원룡은‘자연주의’라고 보았습니다. 여기서 그는 자연재에 인위를 가해 가공하는 것을 최소화하는 것을 의도라고 할 수는 없다고 보았습니다. 왜냐하면 옛 장인들은 공예품을 만들 때 의도를 가지고 만든 것은 아니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김원룡이 한국의 전통미술 전반에 걸쳐 나타난다고 파악한 자연주의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파악․재현하려는 노력’이자 ‘철저한 아(莪)의 배제’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한국예술에서 나타나는 몰아(沒我)적 요소는 단순히 자기(莪)를 배제하고 대상을 재현하려는 것이라기보다는 물아합일(物我合一)을 추구한 결과입니다. 공예품에서 주체로서의 예술가의 개성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이를 테면 대상에 몰입하여 혼연일체가 되고자 한다거나 창작자와 감상자의 일체감이 미감으로 작용하고 있는 측면이 크다는 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