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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지수 Sep 14. 2022

<분청>을 시작하며

자연스러움과 자유로움을 위한 한국 미술의 '법고창신(法古創新)'

시작하는 글_



분청사기 조화선 조문 편병, 15-16세기, 20×13×23.5cm, 개인 소장


공예 평론가이자 전시기획자인 저는 미술 현장에서 우리 작가들이 옛 전통문화 유산을 견본 삼아 그 안에 담긴 본색(本色)을 새로운 창작으로 도모하는 것을 자주 봅니다. 한국 미술 뿐 아니라 현대 공예 작가들 모두 한 목소리로 옛 것에서 찾아 보려 하고 닮기 원하는 으뜸은 '자연스러움'과 '자유로움'입니다. 이 책은 우리 작가들의 눈이 향한 곳에서 출발하여, 그들이 전통으로부터 견인해 실천하고 있는 새로운 우리 미술의 면면을 찾아보는 여정입니다. 이제부터 독자분들과 선사시대 빗살무늬토기부터 현대분청으로 이어지는 한국 미술의 자연스러움과 자유로움을 함께 찾아 보려 합니다.





이 책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부에서는 한국미술이 올곧이 추구하고 담아온 견본자연이라점에 주목합니다, 오랫동안 우리 민족이 사계 속에서 농경을 일구며 자연과 하나 되어 살기 위해 노력해왔고 그 결과 한국미술  또한 인위보다 자연스러움을 더 우위에 두게 되었음을 설명합니다.


2부에서는 한국 미술에 깃든 자연미(自然美)를 살펴봅니다.

하늘과 땅이 주는 대로 살고 일하는 법을 터득해온 사람들의 삶과 지혜는 단지 옛 문화, 옛 물건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회 공통이 지향하고 공유하는 바는 반드시 그 시대의 물건에 깃들기 마련입니다. 한국 전통 건축과 미술 전반이 자연을 애호하고 인위보다 무위를 우선하는 태도를 공유하는 이유입니다. 우리 문화 전반을 다 살펴볼 수는 없기에, 이 책에서는 부득이 우리 도자기를 위주로 살펴봅니다. 도자가는 사람들의 삶과 가장 밀접하고 우리 박물관 소장품중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석기시대 토기부터 청자, 분청, 백자를 위주로 그 안에 담긴 자연을 살펴봅니다. 자연재를 재료 삼는 모든 조형예술 창작이 마찬가지겠지만, 도자 공예는 특히 도예가가 자연 질료의 속성을 이해하고 솜씨 있게 다뤄 형태를 다듬고 자유자재로 다룰 기술을 획득해 얻는 극복과 적응의 과정이 중심입니다. 결국 도예가의 일은 자연을 가까이하고 그에 순응함으로써 자연 닮은 유용한 무엇을 만드는 일로 귀결될 수밖에 없습니다. 유독 우리 도자유물에는 자연을 닮은 기물 형태, 도안, 질감많은 이유입니다. 우리 선조들이 남긴 아름다운 도자 전통 유산 가운데 현대 미술가들이 그토록 닮고 싶어 하는 '자연스러움'의 원형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3부에서는 우리 도자전통 중에서 옛 분청에 주목합니다. 분청은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약 200년간 짧게 제작되었다 사라진 기물입니다. 제작 기간은 짧지만 옛 분청이 지니고 있는 자연스러움과 자유분방함의 미감은 독창적이고 현대적입니다.  1970년대 이후 해외 교류 개방화 바람을 타고 전통 분청을 해외에 소개하는 여러 전시가 기획, 소개되었습니다. 해외 미술계, 언론은 우리 분청을 보고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해외 미술계의 거장인 칸딘스키나 잭슨 폴록 같은 현대미술 거장들의 표현에 준하는 미감이 이미 수 세기 전 조선의 공예품에 존재했음을 발견하고 찬사와 놀라움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분위기에 힘입어 1980년 즈음부터 우리 미술가들도 점차 전통 미술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그 속에서 우리다운 것, 세계에 견줄만한 새로운 미술 표현을 찾으려고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특히 한국 현대 추상미술의 대가인 김환기부터 최근 미술시장에서 각광받고 있는 한국 단색화 작가들까지 모두 달항아리를 비롯한 한국 전통 분청에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들의 작품과 전통 분청의 표현을 견주어 보면서 해외 미술계가 주목했던, 그리고 우리 미술이 옛 분청에서 보고자 했던 현대적 면모를 여러분의 눈으로도 가늠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4부에서는 옛 분청이 담고 있는 여러 미적 특질들을 조형미술로 발전시킨 현대 미술 작품들을 살펴봅니다. 그리고 한국 전통 분청의 수법을  나름의 해석과 수준 높은 기량, 새로운 기법과 재료로 시도하는 한국 도예가들의 새로운 분청 표현을 연이어 살펴봅니다. 이들은 과거의 수법, 기형을 그대로 모방하거나 살리려고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우리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미감, 전통 속에 있는 진아(眞我)를 보고 찾으려는 작가들입니다. 이들이 전통 분청의 맥락을 잇고 한국 현대 분청을 대표하는 전부라고는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한국 도예가들이 전통문화에서 한국 현대미술로 인종하려는 새로움과 그를 도모하려는 다양한 방법들을 감상하시기에는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이 책이 독자분들이 지난 20여 년간 우리 작가들이 옛 분청으로부터 '자연스러움'과 '자유분방함'을 보고 새롭게 가져오려 노력한 바를 가늠하시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각자의 눈과 마음으로 옛 분청과 오늘의 분청을 비교하며 즐겁게 감상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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