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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지수 Sep 06. 2022

한국 도예가들의 분청(6)_이강효

4부_우리 미술이 다시 보고, 다시 쓰는 분청_여섯 번째 작가, 이강효



이강효(李康孝, 1961-)



최근 전통 분청 작업에 깃든 체화성(體化性)을 가장 극대화시킨 작가는 이강효(李康孝, 1961- ) 일 겁니다. 그는 옹기 기법을 바탕으로 분청, 철화를 결합한 <분청 산수> 연작 등 익히 많은 작업을 해 온 작가입니다.


이강효, 달(月)의 산수(山水), 2021, 클레이아크 김해 미술관 돔 하우스 ⓒ클레이아크 김해



<2014 공예플랫폼 '공예가 맛있다'> 개막식, 문화역서울 284, 한국공예디자인진흥원이 주최(6월 25일), ⓒ한국공예디자인진흥원



이강효 작가는 최근 몇 년간 사물놀이 가락을 배경음악으로 삼고 대형 항아리를 캔버스, 무대 삼아 산화철과 화장토를 이용해 과감한 퍼포먼스를 벌이면서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강효의 ‘분청 퍼포먼스’는 한국 전통도자의 특징으로 꼽는 ‘무기교의 기교’를 숙련된 공예가의 내재적 기(氣)의 발현으로 이해하고 공예의 작업 과정을 물질과 신체를 합일해 행하는 새로운 형태의 행위예술로 확장한 것입니다.

이강효 작가는 옹기 특유의 성형방법인 타렴법(輪積法)을 접목해 형태를 만듭니다. 흙을 길게 늘인 흙가래를 수십 개 미리 만들어 주변에 둡니다. 그 후, 물레 위에 밑창을 만들고 그 위에 흙가래를 한 줄씩 쌓아 올립니다. 한 줄 한 줄 흙가래를 돌려 쌓으며, 사이사이 도개와 수레를 사용해 흙벽의 안과 밖을 지속적으로 두드립니다. 옹기 성형 방법, 타렴법은 상대적으로 물을 많이 쓰고 무른 흙을 사용하는 전기 물레 성형보다 짧은 시간 내 대형 기물을 제작하는데 유리합니다. 제작 후 바로 옮기기도 수월하지요. 이러한 제작방식이 이강효 작가가 다른 작가들에 비해 짧은 시간에 시연을 마치고 무엇을 보여주어야 하는 퍼포먼스로 작업을 확장하는 데 용이한 점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강효 작가는 퍼포먼스뿐 아니라 평상시에도 사물놀이를 즐겨 듣습니다. 작업하는 내내 사물놀이 가락이 낮게 흐릅니다. 이강효의 퍼포먼스는 보기에 따라서 액션페인팅으로 유명한 미국 화가 잭슨 폴록((Jackson Pollock, 1912-1956)의 작업과 비견될 수도 있습니다. 폴록의 액션페인팅은 르네상스 이후 실로 면면히 유지되어 내려오던 서구 이젤 회화의 전통에서 내려와 캔버스를 바닥에 내려놓고 작가가 그 주위를 이동하며 붓이나 막대기로 물감을 흩뿌리거나 주사기로 물감을 쏘고, 구멍 난 물감통을 흔들어 만든 행위의 화면입니다. 폴록이 화면의 주위를 돌며 역동적으로 만들어낸 화면은 마치 선과 색채의 그물망처럼 보입니다. 폴록의 기하학적 화면은 대상의 윤곽선을 안정적으로 묘사하여 형상을 그려내는 전통적 방법에 배치됩니다. 때문에 선과 면의 구별, 형태와 배경의 대조, 화면 안과 밖의 구획을 판별하려는 시도 자체를 무위화하는 그림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모더니즘을 이끈 미술 비평가 클레멘트 그린버그(Clement Greenberg, 1909-1994)는 하인리히 뵐플린(Heinrich Wölfflin, 1864-1945)이 바로크 미술에서 ‘회화적(malerische)’이라는 개념을 도출하며 정의했던 특질들이 폴록의 전면적(all-overness) 화면에 총체 되어 있다고 평했던 것이지요.


그러나 이강효의 분청 퍼포먼스는 회화의 전통적 개념을 혁신하거나 무력화시키려는 의도와는 다릅니다. 그는 오히려 자신이 뿌리를 둔 공예에 대한 경외와 계승의 태도를 보입니다. 그는 사물놀이 장단의 맺고 끊음에 따라 자신의 몸짓, 에너지를 맞추며 행동합니다. 마치 화장토를 물감처럼 흩뿌리고 손으로 문대고, 몸을 비비고, 기물을 회전시키며 역동적인 물질과 행위의 화면을 완성하지요. 5분여의 짧은 시간이지만,  기의 표면에는 시간과 행위의 궤적에 따라 작업자의 신체적 특징과 운동의 방향성, 도구의 흔적, 재료 변화 등이 고스란히 기록됩니다.

관객은 작가가 자기 흥취에 취해 물질을 마구 뿌리고 행동하면 될 것 같지만, 성패의 관건은 중도(中道)에 있습니다. 작업자는 사물놀이 장단에 맞추되 그에 끌려가서는 안 됩니다, 생각을 하지 않되 생각을 놓아서도 안 됩니다. 이것이 고도의 집중 상태, 무위(無爲)입니다. 머리로 그리고 몸으로 끊임없이 작업의 진행상황과 환경, 물질의 상태를 가늠하며 행동할 시간차와 사용할 물질의 양, 행위 등의 완급을 조절해야 합니다. 같은 물질과 행위라 하더라도 날씨나 환경, 물질의 성분과 농도, 배합비 등 다양한 변수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옵니다. 이 때문에 이강효의 퍼포먼스는 사전 준비가 중요합니다. 아무리 자가가 사전 계획을 단단히 세우고 그대로 행위하더라도 작업 중에는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작가의 긴밀한 즉흥성과 판단력, 감각필요합니다. 우리는 퍼포먼스 하는 짧은 시간동안 그것을 우리의 눈으로 가늠하며 도예가가 그릇을 만드는 동안 발휘할 감각, 시간, 감정을 가늠하는 셈이 될 테구요.


이강효,  분청 산수(粉靑山水) ,  2006, 분청토, 분청유, 환원소성 1280 ℃
이강효,  분청 산수(粉靑山水), 2014,  85×41×82cm 분청토, 분청유, 환원소성 1280 ℃


그렇다면 이강효는 왜 분청의 재료로 기물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이러한 퍼포먼스를 벌일까요?     

이강효 작가는 분청으로 만든 사물 즉, 물질이 아니라 공예과정 중에 발생하는 ‘정신’이라는 비물질 영역에 주목합니다. 즉, 자신을 기물을 만드는 사람, 기능인이 아니라 한 인간의 신체와 기(氣)로 표출시킬 수 있는 창작의지를 실현하는 창작자로 생각합니다. 작가가 물질을 비 물질성의 영역으로 끌어넣기 위해 신체를 적극 활용하는 이유입니다. 이 과정에서 신체의 의미는 물질 위에서 움직일 때 그 존재가 명확하게 가시화됩니다. 작품에 신체가 물질을 펼치고 힘을 가하는 순간, 작가의 내면에 들어가 있거나 움틀 거리는 기운이 바깥으로 분출합니다. 단순히 뿜어져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작가 자신도 그리고 그것을 보는 우리도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강효의 퍼포먼스에서 동원되는 흙물, 산화 철물 등의 물질은 절반 쯤은 물리적 재료이지만 절반 쯤은 비물질입니다. 물질을 붓고 손바닥으로 문지르는 일은 공예의 행위기도 하지만 자율적 판단과 직감에 따라 단일한 화면으로 구성하는 일로 보면 예술가의 일이기도 합니다.      

앞서 현대미술과 분청이 접한 현대성의 면면이 그러했듯, 이강효의 작업은 공예의 영역에서 발아시킨 것이지만 물질과 신체, 작가의 감각을 몰입을 통해 단일한 구조로 만드는 현대 미술의 물성 표현과 일맥상통합니다.

하지만 이는 이강효만의 독특한 방식은 아닙니다. 오랜 세월 능숙한 기술과 암묵적 지식을 갖추고 재료와 자연의 법칙에 순응하는 법을 배워 물건을 만들던 옛 도공들도 그리 해왔던 공예의 방식이기도 합니다. 공예 작업의 성패는 단순히 한 개인의 심리적, 육체적 충동을 발산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단련된 기술과 암묵적 지식 그리고 자신만이 터득해낸 리듬과 감각을 절제와 발산 사이에서 어떻게 조화하여 거리낌 없는 상태 혹은 자연스러움을  물질과 형태로 구현해 낼 것인가에 달려 있습니다. 그것이야말로 한국 미술 전반을 태동시킨 옛 장인들의 방법이자 태도이며 정신입니다.      

이강효,  분청 귀얄합, 2014,  분청토, 분청유, 환원소성 1280 ℃



이강효,  분청 산수(粉靑山水), 2018,  옹기타렴, 분청토, 화장토, 환원소성 1280 ℃


이강효의 분청 작업은 짧은 시간 안에 역으로 오랜시간 단단히 다져온 몸의 기술과 암묵적 지식을 어떻게 공예가가 자신 안에 내재된 기를 절제하거나 발산하는지 함축적으로 보여줍니다. 한국적 자연주의를 정신적 기조로 삼은 한 숙달된 공예가의 신체적 행위가 기의 표면에 어떠한 물질의 흔적들을 남기고 그것이 공예품에 고유한 시그니처를 부여하게 되는지 그는 기라는 물질, 사물이 아닌 역동적 행위로 달리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의 퍼포먼스는 단순한 매체의 차용을 넘어섭니다.

흔히 현대 분청을 시도한다면, 옛 분청의 수법, 물성을 도출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이 상정한 자유로움, 자연스러움을 지향하고 이끌어내야 한다고들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반드시 옛 분청의 기법, 수법, 형태를 고스란히 재현하고, 그 결과물이 기(器) 여야 하는 것은 분명 아닐 겁니다. 중요한 것은 본색(本色)이지 외시(外視)가 아닙니다. 그의 방법이 공예 그리고 분청이라는 테두리 안에 갇혀 있지 않고 오히려 한국 도예가들이 궁구 해야 할 정체성, 태도로 분청을 방법 삼고 있다는 점에서 이강효의 <분청 산수> 그리고 <분청 퍼포먼스>는 여러 현대 도예가들의 분청의 시도 중에서도 유의미함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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