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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지수 Sep 06. 2022

한국 도예가들의 분청(7)_정재효

4부_우리 미술이 다시 보고, 다시 쓰는 분청_일곱 번째 작가, 정재효


정재효(鄭再孝, 1963- ), '한국생활도자100인전: 이 계절, 形의 기억' 작가 인터뷰 中



정재효(鄭再孝, 1963- )의 작업은 향토와 전통에 근을 둔 ‘자유로운 교차와 접목’이 특징입니다. 작가는 옛 분청과 백자의 기형과 수법 등을 참조하되, 하나의 매체, 수법, 재료에 국한되지 않는 너른 표현과 지역색, 현대성을 추구합니다. 전통 분청 수법을 백자 바탕 위에 화장토 대신 청화 안료나 산화철로 재료를 바꿔 달리 적용하기도 하고, 반대로 조선 백자 제기 형태를 분청의 기형으로 응용하기도 합니다. 작업을 하면서 시도해 보고픈 바가 생길 때마다, 적합한 재료와 수법을 고르고 격 없이 자유롭게 섞는 것이 정재효의 창작 방법이자 추동력입니다. 그의 작업 목표가 특정 전통도자의 유형을 정해두고 요즘 재료와 수법으로 재현 혹은 변형하여 새로운 계통을 잇거나 발전시키는 ‘계승’에 목표가  있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재료와 수법을 달리해도 분청이 그의 오랜 작업의 근간이요, 미감(美感)의 원형이라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정재효,  분청지두문사각합,      2012



정재효의 작업은 주요한 두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정재효의 작업은 영남 지역의 문화적 정서와 특징이 잘 살아 있습니다. 조선『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따르면, 영남지역은 고려 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주요 자기 제작 공급지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청자에 이어 분청까지 두루 제작되었습니다. 청자에서 이어져 온 것이기에 분청 역시 인화, 상감기법 등이 발달했습니다. 영남은 조선시대 여당의 세력과 학문의 중추적 역할을 한 유학의 근거지로서 법도와 충효를 바탕으로 한 엄격한 유교문화가 발달한 곳입니다. 국가 권위의 옹립뿐 아니라 개인적으로 뚜렷한 주체 의식과 강직한 학자적 소양을 중시했던 영남 선비 문화가 공예품뿐 아니라 생활 문화 곳곳에 배어 있습니다. 이러한 영남 선비문화의 학풍과 문향이 인화, 상감 기법과 같은 단정하고 정연한 표현을 낳았습니다. 영남 분청은 환원소성으로 굽습니다. 산화철이 포함된 흙이 환원 소성으로 구우면 잿빛 바탕으로 바뀝니다. 여기에 아이보리색 화장토가 바탕에 단단히 결부되고 그 위에 투명유가 시유되면, 불 속에서 약간의 푸름을 머금은 청연 하고 경쾌한 유리질로 변하면서 시원함이 느껴집니다. 백자로 이행되고 분청 제작이 점차 쇠퇴하는 후기로 갈수록 분청은 비정제된 바탕, 덜 다듬고 과감하게 생략한 표현, 물성이 한데 어우러져 칼칼하면서도 모던한 기운이 엿보이기도 합니다.


영남 분청이 같은 문양을 반복하여 규격과 규칙을 지켜 얻는 정연함과 반듯함이 특징이라면, 호남 분청은 유연하고 간드러진 멋이 있습니다. 귀얄, 덤벙, 박지 기법 등이 발달한 이유입니다. 분청 특유의 지역색은 도자뿐 아니라 판소리, 음식 등 우리 문화 전반이 갖고 있는 다양성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한국의 산야(山野)는 산과 강이 많아 지역 간 교류가 어려워 각 지역이 향토색을 뚜렷하게 형성하며 살았던 것과 연관성이 큽니다. 이렇게 형성된 지역과 문화적 특색이 고스란히 분청 특유의 다양한 표현과 미감으로 반영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분청이 삶과 밀착한 공예 사물이었음을 보여줍니다.

정재효의 작업은 영남지역의 문양, 형태, 질감을 살펴 자기 창작으로 가져가고 있습니다. 그가 작품도 하지만, 생활 식기, 화병 같은 공예기도 꾸준히 작업하는 것은 영남 분청뿐 아니라 분청의 일상성을 잇고 새롭게 쓰는 행위를 이어가는 중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재효,  분청상감사각화병, 2016, 분청토, 화장토, 재유, 상감 환 원소 성 1280


정재효, 분청 컵, 2016, 분청토, 화장토, 재유, 상감 환 원소 성 1280



정재효 작가는 부산 출신입니다. 부산에서 자라 고등학교까지 오래 살았습니다. 졸업 후, 울주에  이천에서 일로 잠시 내려와 있도예가 고영재 선생 밑에서 물레를 배웠고 그를 따라 짧은 시절이었지만 경기도 광주에서 물레 대장으로 일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국민대에 진학하며 잠시 타지 생활을 이어 나갔지만, 졸업 후에는 다시금 본터인 영남으로 돌아와 생업과 창작의 를 잡았습니다. 덕분에 정재효의 작업은 동시대 수도권에 거처를 잡은 여느 작가들의 분청 표현과 다른 특징들이 있습니다. 특히 툭툭 던지고 거칠게 긁어낸 표현, 외마디 장단처럼 눌러찍은 반복 디자인에는 영남 지역의 말투나 음식의 맛, 풍경 등이 공유할 만한 지역의 정서와 특색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예로, 어두운 바탕에 백토로 굵은 점을 툭 툭 찍거나 가늘고 짧은 풀비에 화장토(안료)를 묻혀 표면을 흩뿌리듯 시문한 표현은 거친 바탕과 어울립니다. 부산, 경남 지역에 여행을 가거나 출장을 갈 때, 역에서 내리자마자 들리는 짧고 강한 어투가 귀에 들어와 꽂히듯 그의 작업을 보노라면 소탈함과 거침없는 자유분방함이 함께 느껴집니다. 여기에 호남분청같은 간드러짐과 감칠 맛같은 감아 쥐고 휘도는 멋은 없습니다.

그가 꾸준히 다른 지역의 작가들과 교류하고 현대 미술, 디자인 등의 다양한 이론과 표현을 수용하면서도, 영남의 문화색이 작가의 작업 면면에 생생한 것은 그만큼 작가가 오랫동안 영남 지역에서 태어나 살며 몸과 정신에 형성된 모든 것들이 자연스럽게 작업의 근기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지방에 홀로 떨어져 작업하고 사는 일은 다소 문화적 수혜에서 멀어지고 동시대 작가들과의 교류도 쉽지 않았겠지만, 오히려 그것이 분청을 작업하는 작가만의 획득할 수 있는 독특한 표현이자 색(色)이 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둘째, 정재효의 작업의 수법이나 아이디어는 전통에 근하면서도 형태와 장식은 모던함을 추구합니다. 그는 전통도자에 즐겨 등장한 꽃, 나무, 구름 등 구상 도안보다 점, 선, 면 등 단순한 기하학적 도안을 즐겨 시문 합니다. 손목 스냅을 경쾌하게 움직여 그린 포물선, 어둡고 거친 바탕에 도칼로 직선을 지그재그 반복해 그은 직선, 면을 대범하게 깎은 백자 표면에 청화 안료로 툭툭 찍은 점이 멋들어집니다. 이 모든 표현은 공예 장식이 아니라 추상화를 보는 것 같기도 합니다.


정재효, 갈대, 2019 60×13×65cm/ 물, 2019, 65×13×70cm/ 산, 2019, 65×16×65cm
정재효, 산수(山水), 2019, 60×13×65cm, 201



이는 작가가 대학에서 공예가 아닌 디자인을 전공한 영향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정재효의 점, 선, 면은 단순한 공예 문양 혹은 상징기호가 아닙니다. 누군가는 점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꽃 무더기나 별을 볼 것이요. 포물선의 군집에서 바람결에 누운 갈대밭을 연상하거나, 지그재그 음각선의 반복을 보며 우레, 산등성이의 높고 낮음을 보려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은 맞기도 하고  틀린 것이기도 합니다.

정재효의 점, 선, 면은 압축된 자연입니다. 기운생동의 응축된 표현입니다. 그것은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무엇도 아닐 수 있는 비정형입니다. 동양인들, 특히 한국인들은 모든 예술과 건축에서 자연을 견본으로 삼되 대상의 형상을 그대로 묘사하기보다 표현에 자연 본연의 질서와 도(道)를 담고자 했습니다. 언제나 우리의 눈은 외양이 아닌 실체를 보려 했습니다. 자연을 잘 닮게 그리기보다 대상이 담고 있는 기운과 생동을 간략한 점, 필획만으로 드러내고자 한 것이 동양 그림, 우리 공예의 작법(作法)이요, 작자와 관자의 시선입니다.     

우리 공예에도 많은 자연 도상이 등장합니다. 꽃, 나비, 어류, 당초문, 대나무, 매화 등등 다종 다양한 자연물의 형상이 훌륭한 도공이 빚은 형태 위에 수준 높은 화공의 솜씨로 그려졌습니다. 그러나 그 역시 자연을 그대로 모사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옛 사람들이 자연의 형상에 견주어 간절히 희구하고 염원했던 것입니다. 유독 우리 전통 도안에 인간사 길흉화복과 희로애락에 관련된 상징이 많은 이유입니다. 부귀(富貴)를 희구하여 모란을 즐겨 그렸고, 부부화합과 다산을 위해 쌍어(雙魚)를 그렸으며, 신춘(新春)의 즐거움을 나누려 봄꽃 피는 나무 위에 지저귀는 까치를 그렸습니다. 이처럼 옛 그림, 공예의 문양은 옛사람들이 그토록 바라고 담고자 했던 언어이자 마음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희로애락이 옛사람이나 현대인이 서로  크게 다르지 않다 하여도 옛사람들이 옛 그림에 담고자 했던 것과 우리가 우리 시대의 예술에 담고자 하는 것이 같을까요? 옛 기형과 도안을 다시 가져와 재현하거나 변형하는 것만으로는 우리 시대가 현대 공예품에 담고자 하는 정신과 미감, 우리가 필요로 하는 유용(有用)을 담을 방법이 없는 이유입니다.




정재효 작가는 새로운 우리 시대의 공예를 위해 첫째, 공예 사물은 마땅히 태어난 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정서와 미적 감각, 필요를 담아야 하고 둘째, 하나의 유형에 안주, 고정되기보다 다양한 전통 도자의 형식과 유산을 격이 없이 자유롭게 넘나들고 접목하며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 하며 셋째, 외양이 아닌 우리 미술이 함의한 정신을 보아 그것을 형상과 유용한 사물로 도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그것을 만들고자 방법을 궁리하고 줄기차게 노력하는 작가입니다. 모든 공예가들이 우리 시대가 공예품에 담고 표현해야 할 것 그리고 자신만이 전통으로부터 도모할 아름다움과 유용함이 무엇일까 생각하고 고민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늘 격을 허물고 뒤섞기를 거듭할 때 가능합니다. 그런 노력을 하는 이, 남다른 것을 자기가 딛고 살고 있는 땅에서 찾는 이가 영남 울주의 도예가‘정재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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