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이 움직이는 모든 소리들이 나의 몸짓, 붓질이 되고
4부_우리 미술이 다시 보고, 새롭게 만드는 '분청'_ 첫번째 작가, 황종례 <귀얄문기>
[ 4부의 작은 문을 여는 글]
1990년대 말부터 우리 도예계에는 분청을 현대적으로의 재해석하려는 작가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한때 2000년대에는 분청이 현대도예의 대세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작가 수도 증가하며 전시도 많았습니다. 대부분 수도권에 작업실을 열고, 함께 모여 전시를 같이 하며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일부는 옛 분청의 지역색, 제작 문화를 살리기 위해 충북 문경, 경상남도 김해, 충복 계룡산 지역에 정착하기도 했습니다. 그 어디에서든 옛 분청의 재료와 수법을 현대에 맞게 그리고 자신의 개성을 더해 새롭게 하려는 시도들은 대한민국 곳곳에서 지속 중입니다. 최근에는 이들의 활동을 정리하고 평가하려는 미술관의 기획도 증가하고 있습니다.
분청을 자기 공예 표현으로 발전시킨 작가들을 소개하기 전에, 제가 공예 현장에서 분청 작업하는 작가들을 만나며 느끼는 점은 작가들이 유독 자연을 애호하고 자연을 소재로 삼는 경우가 많다는 점입니다. 제가 이 책의 제목을 <자연스럽고, 자유분방하게>라고 지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자연스러움과 자유분방함은 작가들이 늘 옛 분청에서 보고 본받고자 하는 바이기도 합니다.
작가들이 옛 분청에서 즐겨 참조하는 장식 문양은 모란, 국화, 당초문, 버드나무, 어류, 새 등 자연물이 가장 많습니다. 한국 현대작가들의 분청 작업에서도 자연물은 여전히 중요한 소재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옛 것의 도안이 단순히 자연을 사생하거나 반복적 패턴으로 그린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만약 지금의 작가들이 이를 간과하여 옛 분청의 형태와 도상을 단순히 참조하거나 소재로 이용하는 것은 올바른 전통 해석과 계승의 방향이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전통이 형성된 문화적 맥락과 진의를 이해하지 못하고 도상이나 색상, 수법 자체에 매료되거나 일부분만을 자의적으로 취해 새것을 도모한다 해도 그것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 있는 표현이 되거나 감흥을 줄 수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현대 도예가들이 자연 문양을 자주 소재화한다 하여 이들이 한국미술의 중요한 미적 특질로 꼽히는 자연주의를 계승했다고 평가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현대 도예가들의 자연 문양의 사용은 단순히 옛 것을 도용하거나 그대로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수법을 바꾸고 형태에 맞게 확장하거나 변용하거나, 도안화된 문양을 베끼는 대신 실제 대상을 들여다보고 관찰하여 자신만의 디자인으로 재해석한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현대 미술가들 조차 분청의 표현과 현대성에 매료되고 소재로 활용하는 때입니다. 정작 옛 도공의 후예라고 할 수 있는 현대 도예가들은 어떻게 분청을 이해하고 있을까요? 그리고 어떻게 자신만의 독자적 표현, 새로운 예술로 승화시키고 이해하고 있을까요? 지금부터 천천히 분청을 대표하는 현대 도예가들을 소개하고 작품을 보겠습니다.
처음 소개해드릴 작가는 한국 현대도예의 1세대 작가인 황종례 작가입니다. 황종례 작가의 작풍은 청자의 비색과 분청의 귀얄에서 가져왔습니다. 시원한 귀얄붓으로 빠르게 오간 붓질이 마치 선선한 가을바람이 갈대 사이로 넘실거리는 들녘 풍경을 연상시킵니다. 귀얄은 동적이면서 약동감을 자아내기에 적합한 기법입니다. 귀얄을 도자 표면에 재빠르게 속도감 있게 돌리기 위해선 필력이 우선입니다. 선만 빠르게 오간 것 같은데 그 속에는 원근감이나 공간감을 충만히 느낄 수 있습니다.
황종례 작가는 1970년대 중반부터 귀얄을 시도했습니다. 초기에는 즉흥성에 치중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일정한 방향성과 리듬감을 주는 반복적 선, 자연스러운 선의 축적을 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작가는 1960년대에는 보라색, 녹색, 밝은 황토색 등 다양한 색유를 시도했었는데, 작가의 귀얄을 옛 분청의 수법을 재현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마치 서양화의 붓질과 같은 표현에 가까운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분청 귀얄 기법 특유의 속도감과 일정한 반복에서 나오는 생생한 선율이 어울려 예술과 공예가 다르지 않음을 보여주는 작업이기도 했습니다. 귀얄 기법의 묘미는 선의 각도, 방향, 선의 축적, 속도, 바탕색 그리고 보는 이가 어떤 각도와 방향으로 바라보는지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진다는 점에 있습니다.
"생동감, 그건 자연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겁니다. 풀, 나무, 산세, 물속, 바다....
이런 것들에서 생동감이 납니다. 살아있다는 것, 생동감이 나는 것, 진취적 느낌을....
귀얄문의 힘찬 힘이 저한테 상당히 감동을 주었습니다. 바람소리, 나무소리, 물소리들이 움직이는 것에 착한 하여 항상 움직일 수 있는 것을 표현한 것이 '귀얄문기'입니다."
2006년 미술평론가 장동광과의 구술채록문, p.234. 중에서
작가가 강조하듯, 황종례의 작업은 색이나 문양에서나 과장되지 않은 자연스러움, 편안함이 느껴집니다. 그것은 우연이 아니라 작가가 자연의 관찰, 오랜 생활처럼 몸에 베인 습관과 생각에서 길어 올린 표현입니다. 일숨에 귀얄 붓을 쥐고 같은 간격, 속도로 기물의 표면을 휘돌려면 작가가 들이마시고 내뱉는 숨도 그러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연에서 가져온 흙의 호흡을 듣고 상태를 나의 피부처럼 느껴야 합니다. 작가가 스스로 편안하고 요동치지 않아야 표면에 밀착된 터지, 경거망동하지 않되 생명감 있는 소리와 움직임을, 파장이 남을 수 있습니다. 평생 작업실을 벗어나지 않고 80이 넘은 고령에도 매일 흙을 만지고 귀얄 붓을 매 다듬으며 전통을 향한 의지를 불태우고 의문하는 작가입니다. 늘 격조 있는 표현을 구할 수 있기 바랐고, 자연의 생동감이 자신의 손끝에서 작업으로 구현되길 바라는 간졀함이 작가를 여전히 물레 앞에 앉게 하는 원동력이 아닌가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