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살펴보았던 우리 전통분청의 미적 특질이 오늘 현대미술 작가들에 의해 어떻게 변용되고 있는지 본격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분청 제작의 마감은 세종년간 이후 조선의 백자 생산이 가속화된 것과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백자는 15-16세기 조선 영․정조 시기에 정점을 이루다가 점차 무분별한 사번과 관리 약화로 결국 조선말 관요 체제에서 사번 형식으로 몰락합니다. 이후 일제강점기로 접어들면서 신석기시대 토기로부터 이어온 한반도의 도자기 문화와 생산은 중지되거나 왜곡됩니다. 이러한 문화적 단절과 왜곡은 단지 도자문화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한국은 식민지 시대와 분단시대를 차례로 거쳐 과거의 회복, 현재의 진단, 미래의 방향을 스스로 고민할 사이 없이 외부로부터의 문화 유입과 전통가치로부터의 단절이 불러온 아픔과 폐해를 고스란히 겪어야 했습니다. 이 속에서 해방 이후 한국의 작가들은 끊임없이 자생성의 문제에 대해 질문해왔습니다. 자생성이란 우리 민족의 역사와 풍토 등을 기반으로 하여 스스로 생성된 무엇입니다. 토종 내지 우리 것에 대한 강조는 결국 문화적 순결주의와 상통합니다. 한국 미술의 자생성을 의문하고 되찾으려는 시도들은 우리 현대 미술의 시작이 외국의 다양한 사조를 수용하여 우리의 것으로 육화 시키려는 데서 시작했으며, 그 과정에서 외부의 것을 나의 것으로 소화시키지 못했다는 자성 탓일 겁니다. 즉, 우리 민족미술의 생존 근거를 헤아리고 묻는 담론이 한국미술의 정체성 찾기입니다. 이 과정에서 전통은 중요한 소재가 되었습니다. 그만큼 한국 작가들에게 전통은 단순한 소재가 아니라 작가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일이며 서구 현대미술의 방법과 언어를 대체할 대안의 실마리를 내부에서 찾겠다는 의지의 실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그 속에는 시대적 파고 탓에 우리의 독자적, 토착적 철학을 올바로 세우지 못했고 그에 근간하여 우리 삶의 지향과 필요에 부합하는 새로운 미술을 창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한국 현대미술 현장에는 끊임없이 조선시대 민화, 무구, 부장품 등의 한국 전통미술의 도상과 더불어 백자, 분청과 같은 옛 도자기들이 지속적으로 소환되고 있습니다. 이는 오늘날 서구 미술 문화의 유입과 모호해지는 문화 정체성의 혼란 속에서 우리 미술의 한계를 전통미술문화 속에서 새롭게 찾아보려는 시도로 아주 오래된 것입니다. 특히 최근 우리 화단에 불고 있는 단색화 즉, 모노크롬 회화에는 앞서 살펴보았던 자유로운 표현, 추상성, 재료의 물성, 정신성의 추구 등 옛 분청의 표현적 특질과 미감이 엿보입니다.
김환기(Kim Whan-ki, 1936- ),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1970 232x172cm, Oil on canvas
고(故) 김환기 화백은 조선의 목가구와 백자 항아리, 사슴과 매화 같은 한국적 소재를 즐겨 그렸습니다. 화가이면서 문필가이기도 했던 김화백은 그의 에세이집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환기미술관, 2005)에서 '우리 것을 먼저 이해하고 그 가치를 깨달을 때에 비로소 새로운 미술의 창조와 세계적인 미술문화로의 도약이 가능하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김화백은 1963년 도미(渡美) 하기 전까지 민족정서가 충만한 소재들을 찾아내 자신의 예술세계로 정착시키며 작품으로 승화시켰습니다. 그는 조선의 도자기, 목공예품들을 수집하면서, 자신의 미감이 이러한 전통 기물로부터 구축됐다고 피력한 바 있습니다. 도미 후 그는 본격적으로 한국의 전통미를 근저로 세계적이면서도 보편적인 조형미를 추구했습니다. 면을 분할해 화면을 실험한 십자구도, 사방 구도 작품과 다양한 종이를 붙여 화면을 구성했던 콜라주 작품 그리고 무수한 색 점을 찍는 가운데 면을 비워 선을 생성한 삭면 추상화와 점화(点畵) 작품들이 대표적입니다. 실제 그의 점화들은 화면에 보이는 조선 15세기 승렴문이나 원권문 등을 인화기법으로 새긴 분청의 표면과 무척 닮아 있습니다. 이것은 <분청사기인화원권문장군(粉靑沙器(圓圈文장군)>인데, 이 도판을 90도 우 축회 전하여 확대해 보면 마치 현대 단색화처럼 보이지요.
‘우리 것을 먼저 이해하고 그 가치를 깨달을 때에 비로소 새로운 미술의 창조와 세계적인 미술 문화로의 도약이 가능하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환기미술관, 2005) 中에서
분청사기인화원권문병 (粉靑沙器(圓圈文甁) 조선 15세기 17.2(h)x10.3x9.3cm, ⒸSamsung Leeum Museum
지금 보시는 검은 색채의 작품은 한국 단색화를 대표하는 작가 김기린의 1977년작 <Visible, Invisible>입니다. 보기에는 그저 단순하고 어두운 그림 같지만, 그 안에 작가가 한 점, 한 점 성심을 다해 같은 간격으로 찍은 점들이 무수히 담겨 있습니다. 화면을 중심으로 십자가처럼 교차하는 빈 공간을 두어 우리 눈이 검은 색채를 헤집어 점과 공간 사이에서 울울히 진동하는 시각성의 문제를 던지는 작품입니다. 김기린의 작업이 포함된 한국 단색화는 1970년대 국내에서 태동한 미술 양식으로 구상성을 배제한 추상회화입니다. 단순한 색채와 반복적 행위를 통해 순수예술의 혁신과 한국미술의 자생성을 위한 실험적 전위 정신을 화면에 부여하고, 나아가 1970년대 표현의 자유가 엄격했던 억압적 정치상황 속에서 고도의 한국적 구도정신을 지향한 미술운동입니다. 서양 미니멀리즘과 한국미에 근간한 정신성의 융합을 통해 세계에 통용되는 보편성을 바탕으로 현대적 표현을 획득하려는 미술 행위입니다.
김기린은 색을 한 가지로 제한하고 점을 찍거나 물감을 바르는 표현방식에 있어 반복성에 기인해 화면을 만듭니다. 그 과정에서 무엇을 그린다 혹은 표현한다는 작가의 의지는 반복의 과정 속에 본질 그 자체에 점차 집중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를 우리 동양철학의 사고체계 안에서 찾는다면 가장 가까운 개념은 불교의 근본 교리인 ‘무아(無我)’일 겁니다. 무아는 연기(緣起), 공(空), 무상(無常) 등과도 긴밀히 연관되는 개념으로, 연속적이며 불변의 실체로서의 자아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무아는 그저 존재를 사라지게 하거나 지우는 것이 아닙니다. 고도의 자기 인식을 통해 스스로가 존재와 경험으로 분리되거나 물질과 마음을 구분하는 것에서 탈피하는 일종의 경계 허물 기입니다. 어떤 ‘옳다/아니다’, ‘있다/없다’ 등의 이분법적 구분을 없앰으로써 자아를 나를 둘러싼 끝없는 세계로 확장시키고 종당 우주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결국 단색화 그리기는 화면이라는 한정된 공간 혹은 무대 위에 물감과 붓을 가지고 점과 선을 무한히 그으면서 그 속에서 "멈추지 않고 계속 진행되고 있는(ongoing)" 존재를 확인하는 일입니다. 김기린의 작업은 캔버스 위에 물감을 바르고 물감이 마르기 전 그 위에 한지를 겹치는 일을 반복합니다. 얇게 덧바른 물감으로 물먹은 한지는 우글쭈글 해지면서 골이 형성됩니다. 일종에 물을 매개로 물감과 한지의 물성을 극대화시키고 그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고 의도하지 않은 일루전을 만들기 위한 행위를 반복적으로 행하는 셈입니다. 이 반복적 과정이 일종의 인위(人爲)라면 한지에 물감이 스며들면서 만들어지는 색(色)과 골(骨)은 무위(無爲)입니다. 이 인위와 무위의 과정이 하나로 중첩된 깊이 있는 화면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세 번째는 묘법으로 유명한 박서보 작가의 그림을 살펴보겠습니다. 박서보 작가의 트레이드 마크인 '묘법'은 작가가 작업 중 중간 잠깐의 쉼 없이 캔버스에 반복적 행위를 지속하고 화면에 행위의 결과가 순차적으로 보이는 방식입니다. 작가는 많은 색을 사용하는 것을 절제하기에, 화면은 단순하고 그 위에 남긴 행위의 흔적들도 바교적 단순합니다. 화면은 간결하지만 빠르고 반복적으로 수없이 그어나간 필적이 물질의 층위로 시간 순서에 따라 쌓여 있습니다. 작가가 물질, 도구를 동원해 자신의 신체외 결합하여 만들어낸 궤적의 화면은 매우 역동적인 인상을 줍니다.
박서보의 묘법을 보다 보면 저는 옛 분청 유물 중에서 특히 <분청사기조화선조문편병>과 같은 자유로운 필선을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 어떤 거리낌 없이 적당한 힘을 주어 도구를 휘둘러 자신의 선형과 신체 행위의 궤적을 보여주는 박서보 작가의 필선 화면은 옛 분청이 공유하는 원초적 미감과 매우 닮아있습니다. 그 안에는 규칙성을 포함하지만 자유분방함이 있고 투박하고 간결하지만 무심하고 자유로운 심상이 있습니다.
분청사기조화선조문편병 (粉靑沙器彫花線彫文扁瓶), 조선 15세기, 20.5(h)cm ⒸLeeum Samsung Museum
정상화의 작업은 아예 고령토를 캔버스에 발라 바탕을 마련하는 것이 작업의 시작입니다. 거친 듯 서걱거리는 듯 독특한 마른 흙의 질감이 형성되면 캔버스를 일정한 간격으로 접어 횡의 균열을 만듭니다. 다시 펼쳐 접은 자리에 생긴 균열에 따라 흙을 떼어 내고 그 공간에 아크릴 물감을 채우는 일을 반복합니다. 흙을 바르고 떼내며 부재의 자리를 아크릴 물감으로 다시 메우는 반복의 과정은 동양적 명상을 통해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종의 수행성(修行性)을 띕니다. 이는 서양 회화의 엄격한 규칙성에 반하는 행위로 전통적 화법과 규칙을 따르지 않아도 현대회화의 형상화 과정이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화면은 <분청사기귀얄문태호>를 90도 우측으로 회전하여 확대한 것인데 이 역시 정상화의 작업과 매우 흡사한 느낌을 줍니다.
정상화(Chung Sang-hwa), Untitled 74-1, 1977 145x112cm Acrylic on canvas, Ⓒ국제갤러리
분청사기귀얄문태호
(粉靑沙器귀얄文胎壺), 조선 16세기
37.0(h)cm, ⒸLeeum Samsung Museum
현대미술 작가들의 인터뷰나 관련 자료들에서 이들이 도예가들, 미술사가들과 교류하며 옛 백자나 분청을 가까이 두고 이들의 수법과 미적 특질을 참조했다는 사실 혹은 영향 관계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분청이 그들의 창작의 영감이자 모태로 확정 짓는 것은 다소 성급한 시도일 수 있습니다. 현대미술이 추구하는 현대성과 외국에서 우리 옛 분청을 보며 현대성이 이미 존재한다 평가한 것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음은 확인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나아가 한국 단색화의 반복성과 물성에 준한 화면은 1962년 <한국미술오천년전>의 전시를 본 유럽 언론들이 19~20세기의 칸딘스키(Wassily Kandinski, 1866~1944)와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1869~1954)보다 무려 5세기나 앞선 조선 분청에서 현대미술에 준하는 추상성과 아름다운 자유정신을 발견하고 격찬을 아끼지 않았던 예나, 미국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열린 2011년 <조선분청사기전>에서 소개된 귀얄이나 덤벙을 ‘우연의 미(美)’로 이야기하며 미국의 현대 추상 화가 잭슨 폴록(Jackson Pollock, 1912~1956)과 샘 프랜시스(Sam Francis, 1923~1994)의 작품과 준하는 아름다움이 있다고 했던 지적을 자연스럽게 떠오르게 하기에 충분합니다. 해외에서 먼저 주목했던 ‘분청 수법과 미적 특질의 현대미술로의 확장 가능성’이 우리 한국 현대미술에서 이미 시도되고 있음을 어느 정도 가늠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예를 보건데, 오랫동안 우리 삶을 반영하고 심미안으로 태동시킨 미술품에서 세계인들도 동감할만한 보편성을 찾아 현대미술로의 확장하려는 것이야말로 오히려 우리 미술이 세계 미술의 첨예한 표현들 속에서 가치화되는 방법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