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로 갈수록 분청사기에서 볼 수 있는 조형 특징은 '단순화를 통한 해학미의 추구'입니다.
이것은 15-16세기 충북 계룡산에서 제작되었던 철화 분청에도 여지없이 발견됩니다. 지금 보시는 <분청사기철화어문병(粉靑沙器 鐵畵魚文甁)>의 배부분에는 물고기가 그려져 있습니다. 동체 전면에 백토로 귀얄칠을 하고 산화철로 문양을 그린 전형적인 계룡산분청병입니다. 다른 <분청사기철화어문병>의 다채로운 어문의 표현들을 보실까요? 대부분 물고기의 몸체는 길게 과장되고 주병을 한 바퀴 쉬이 돌고 있습니다. 입부분과 지느러미를 과장되게 묘사하여 힘차게 그려져 있습니다. 어떤 것은 비늘의 결을 일일이 묘사한 것도 있고 당초문이나 물결무늬로 채우거나 아예 점으로 찍고 만 것도 있습니다.
분청사기박지모란문병 (粉靑沙器剝地牧丹紋甁) , 조선 15세기 ⒸLeeum Samsung Museum
분청사기철화어문병 (粉靑沙器 鐵畵魚文甁) 조선 15~16세기 높이 29.5cm Ⓒ 호림박물관
이러한 분청의 해학미는 마치 그리다 만 비 완성작처럼 보이기도 하고 도공이 자리를 비운 사이 아이가 낙서해놓은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표현은 오히려 고수만이 가능한 표현입니다. 가공의 손길 없이 예술작품이 실재할 수는 없습니다. 진정한 고수의 솜씨는 솜씨를 부리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 고도의 솜씨와 재기가 전체의 균형을 침범하지 않게 숨기는 것입니다. 이것은 ‘완전한 것은 마치 덜 된 것 같다. 그래서 사용하더라도 해지지 않는다’라는 노자의 대성약결의 구절 ‘대교약졸(大巧若拙)’을 떠올리게 합니다.
대교약졸은 노장사상의 중요한 심미 이론의 하나로 중국 예술 특히 문학에서 인위적 기교미(奇巧美)를 최대한 배제하고 무위자연의 졸박미(拙朴美)를 중시하는 도구로 쓰였던 개념입니다. 대교약졸 속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첫째는 인위적 기교와 자연스러움 가운데서 자연스러움을 더 높게 평가하는 것이며 그것을 지향한다는 의미입니다. 두 번째는 시간의 흐름 속에 자연스러움과 인위적 기교미를 통합하면서 다시 자연스러움으로 회귀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중국에서 발아한 대교약졸은 동북아시아 문화권의 아름다움을 설명하는데 보편적 개념으로 진화합니다. 국내 중국문학 학자인 박석 교수는 다음과 같이 한국 미술의 대교약졸을 중국의 것과 비교하여 설명하기도 하였습니다.
“중국사람들이 전반적으로 크고 웅장하고 화려한 아름다움을 좋아하는 반면, 한국 사람들은 작고 섬세하며 담백한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결국 중국 사람들보다는 한국 사람들이 대교약졸의 아름다움을 더 깊게 이해하고 있다” - 중국문학 학자 박석曰
분청의 대교약졸한 표현은 대범성과 연결되면서 거리낌 없는 상태 혹은 자연스러움을 동경하는 태도와 맥락을 같이합니다. 즉, 한국인에게는 지나친 기교로 드러난 인공미의 진수를 우위에 두기보다 자연 상태의 아름다움을 선호하고 미적 우위를 두려는 부분이 강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연에의 추구, 인공성의 배재 등 한국미술이 지닌 친자연주의적 성향은 많은 학자들이 거론해온 한국미술의 중요한 특성입니다.
옛 분청이 순전히 감상이나 종교적 이데올로기, 권력의 권위를 드러내기 위한 상징물이 아닌 생활용품이라는 점 즉, 관념화된 그리고 생활로부터 유리된 예술이 아니라는 점은 한국 최초의 미술사학자 고유섭이 말한 것처럼 무기교의 기교, 무계획의 계획, 비균제성, 무관심성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 특유의 소박미는 단순히 기물이 생활과 분리되지 않아서 비롯된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결국 자연과 인간이 어떤 한쪽으로 기울지 않고 타협접을 찾는 것이며, 꾸밈없는 자연미를 미적 우위에 두는 자연스러운 천지인(天地人) 합일이라는 데서 발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분청사기음각수조문편병 (粉靑沙器陰刻樹鳥文扁甁) 조선 15~16세기, 보물 제1069호. Ⓒ삼성리움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