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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지수 Aug 30. 2022

분청과 '화이부동(和而不同)'

다른 것들의 공존과 조화로움을 가능하게 하는 화합의 조형 정신

3부_현대의 눈으로 다시 바라보는 우리 '분청'의 세계


앞서 말했듯, 분청의 아름다움은 영호남, 충청권 등 각 지역의 문화색에 따라 달리 제작된 다양성에 있습니다. 짧은 제작 기간에도 분청의 다양한 조형 표현은 자연스럽게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정신을 떠올리게 합니다. 화이부동은 원래 논어에서 군자의 자세를 나타내는 표현으로, 주위 사람들과 친화하며 어울리기는 하나 부화뇌동(附和雷同)하거나 무리를 만드는 등 편향된 행동은 하지 않는 자세를 말합니다. 다양성과 개성의 공존 속에서 조화로움과 일치를 추구하는 화이부동의 덕목은 하나로 획일화되지 않고 각 지역의 환경, 문화색, 미의식을 반영하며 비록 짧은 한 시대 속에서 공존하며 뛰어난 조형과 쓸모를 실천해 온 분청의 특성을 설명하기에 적합한 개념입니다. 분청은 지역별로 나름대로의 색깔을 지니고 있지만 그것은 자연과 사람들의 삶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그와 합일하고 부합하면서 유용함과 미를 전개하려는 자들만이 만들 수 있었던 산물입니다. 결국 분청의 미적 특질은 ‘각 지역의 토착성과 지형성, 문화적 특색에 부합한 실질적 민생의 필요 즉, 당대 사회가 요구하는 공예적 필요에 근간하는데서 출발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그것은 획일이 아닌 다양성의 공존을 인정하고 허용하는 당대 사회 구성원들의 공통된 지향과 함의가 태동시킨 것입니다.




이러한 화이부동의 정신은 옛 도공들이 다양한 기법을 동원하여 조형하는 방식에서도 드러납니다. 분청의 아름다움은 기형에 대담하고 활달한 기형을 만든 후 분장으로 누그러뜨리고 다시 그에 걸맞은 장식을 베풀어 형태, 색, 질감, 장식의 균형을 맞춥니다. 이때 단순히 수렴과 억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조형요소 간의 균형과 조화를 통해 또 다른 차원의 새로운 조형성을 창출하는 것에 방점이 있습니다. 즉, 각 요소가 발산하는 힘을 작업자의 심미적 판단과 숙련된 공예적 수법으로 누그러뜨리거나 상승시키면서 각 요소들이 지닌 총체적 힘을 한데 모으고 내재율화하는 것이야말로 분청이 지닌 조형적 강점이자, 우리 한국미술의 힘입니다. 그릇의 형태가 좋다 하여도 색, 문양이 형태의 조형성에 맞게 구성되지 않는다면 좋은 그릇이라 할 수 없습니다. 즉, 그릇이 갖는 모든 조형요소가 혼연일체가 되어야 합니다.     

분청 제작과정에서 화이부동은 조형요소 간 모순적 양상을 수용하는데서 진가가 드러납니다. 한국예술 특유의 미의식으로 오랫동안 논의되어 온 '멋'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한국의 멋은 흔히 격식의 순용 하는 것이 아닌 ‘격에 들어가서 다시 격에서 나오는 격’ 즉, 초격미(超格美)’로 설명됩니다. 우리 한국예술에는 미술, 시, 음악 등 분야를 막론하고 기본적 질서로부터 형식을 지키려는 한편, 엄격한 형식의 제약으로부터 자유하려는 두 가지 힘이 늘 함께 작용합니다. 특히 분청사기에 나타난 대표적인 두 가지의 힘은 재료, 기법, 문양 같은 틀을 지키는 정격의 틀과 다른 형태와 재료의 상태, 제작자의 감각에 따라 정격에서 투출 하는 변격입니다. 이 변격은 단순화를 통해 실천되고 이것은 분청 특유의 해학미를 만들어냅니다. 


. 분청사기박지모란문병 (粉靑沙器剝地牧丹紋甁)  조선 15세기, ⒸLeeum Samsung Museum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지금 보시는 작품은 15세기에 제작된 <분청사기박지목단문병(粉靑沙器剝地牧丹紋甁)>입니다. 모란은 고려시대 청자부터 조선 백자 그리고 우리 민화에 이르기까지 자주 등장하는 식물 문양입니다. 모란은 중국 당나라 측천무후 때부터 번성한 이래 번영, 창성의 꽃으로, 미호(美好)와 행복, 부귀의 상징으로 애호되었습니다. 실제 여름날 마당에 핀 모란을 가까이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무척 소담스럽고 화려합니다. 왜 옛 선인들이 모란을 보고 "오월에 성장한 여인과 같은 꽃"이라 비유하고 “꽃 중에서 가장 부귀한 것(牡丹花之富貴者).”이라 했는지 알만합니다. 그러나 우리 분청의 모란 표현은 관찰의 원리를 통해 현실을 충실히 재현하려는 서양의 그림과는 다릅니다. 오히려 대상이 지닌 본질, 잡스럽고 부수적인 것들을 제거하고 가장 대상이 지닌 특질을 잘 설명할 수 있는 표현을 도모하는 것이 동양 그림의 수법입니다. 즉, 우리의 도공들은 우리 눈에 비친 모란이 아닌 모란 하면 떠오르는 공통의 무엇 즉, 모란 특유의 풍성함과 겹의 미학을 표현하는데 더 주력합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혹은 기법에 따라 분청의 도판 표현은 복잡한 묘사가 사라지고 점차 간략해집니다. 지금 보시는 <분청사기조화목란문병(粉靑沙器剝地牧丹紋甁)>처럼 묘사가 간략해집니다. 이것이 좀 더 발전하면 <분청사기조화선각문편병>처럼 아예 구체적 묘사가 사라지고 마치 현대의 추상화를 보는 듯한 간략적 표현으로 진화합니다.


(좌) 분청사기박지모란문병 (粉靑沙器剝地牧丹紋甁) 조선 15세기   ⒸLeeum  Museum/ (右)분청사기음각모란문호 (粉靑沙器線彫牡丹文壺), Ⓒ미국 메트로폴리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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