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도예가 쓰임이라는 용도에서 벗어나 흙과 불의 조형을 지향하는 추세라 하더라도,전통을 반추해 새것을 도모하려는 작가들에게 기본적으로 재료에 대한 이해를 갖추고 실기 기술을 장착하는 기술적 연마는 작가의 의도 이전에 공예가로서 당연히 갖춰야 할 자질입니다. 회화와 달리 도자예술은 크던 작든 기(器)를 화면 삼아 형태, 회화의 변주와 조응을 실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개념만으로 예술이 되는 회화, 조각 등 타예술 매체와 다릅니다. 구체적 기술과 제작행위가 부재하면 그 어떤 형상도 재현해낼 수 없습니다. 따라서 도예가들에게 흙을 주무르고 가마 앞에서 연료를 넣으며 불을 보고 좋은 것이 나오길 염원하는 긴 시간과 경험을 늘릴 다작(多作)은 필수적입니다. 특히 같은 행위와 기물 생산의 반복이 전재되는 기(器)를 작업하는 도예가들에게는 더욱 중요합니다. 매일 흙을 주무르고 필요한 공정을 마치 밀착된 생활인으로서 행하는 것은 반복적이고 지루할 것도 같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오래 작업해 온 작가들이 한결같이 고백하되, 작가로서 생과 정신을 지치지 않게 하는 원동력입니다.
이수종(李秀種, 1948- ) 작가는 자신의 작가 정체성을 농부에 자주 비유합니다. 앞서 말했듯, 도예가의 작업 과정은 대부분 입문부터 능숙한 작가가 되기까지 오랜 시간 노동과 훈련을 필요로 합니다. 이는 마치 농부가 땅을 일궈 씨를 뿌리고 수확을 거둘 때까지의 마음가짐과 노력과 유사합니다. 절대 노력 없이 생각과 아이디어만으로는 좋은 작품을 얻을 수 없습니다. 이수종 작가는 우리 도자기의 아름다움과 정신이 사시사철을 통과하며 농사를 짓고 자연과 순응하며 자연과 일체화를 이루며 살았던 농부의 지혜와 마음과 유사하다고 자주 이야기합니다.
(左) 이수종, 무제(untitled)
1991
15x37x28cm, Mixed Media / (右) 이수종, 무제(untiled), 1990, Mixed Media
이수종, 흙놀이 , 1990, 철판, 백토 슬립, 무소성, 열선, 180x420cm
지금은 현대 철화분청을 대표하는 작가로 알려져 있지만, 작가 이수종은 1970년대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물질성을 강조하는 순수 조형의 작품들을 제작했었습니다. 이 시기의 작품들은 서구 조형의 방식을 빌어 ‘흙을 불에 굽는다’는 오랜 행위를 통해 자연과 인간과의 원초적 관계를 다시 묻는 시도였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러던 작가가 1989년부터 서서히 서구식 조형을 내려놓고 새롭게 분청 제작에 도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옛분청사기가 거친 태토를 감추고 백자에 준하는 그릇이 되기 위한 혹은 기능상의 이유로 화장토를 사용했다면, 그의 분청은 일종의 바탕입니다. 화가들이 캔버스 위에 젯소를 발라 바탕을 마련하는 것에 견줄 수 있을까요? 옛 분청의 장식을 거친 태토를 바탕 삼고 그 위에 산화철을 사용하거나 음각선을 더해 드로잉 합니다. 흩뿌리기도 떨구기도 하며 전통분청의 재료와 수법을 현대미술의 견지로만들었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작가가 흙을 단순한 조형재가 아닌 우리 삶의 터전이자 자연의 일부로 여긴다는 점입니다. 또한 그가 도예가가 갖춰야 할 태도로 흙과 불을 다룸에 있어 자연과 일체가 되려는 마음 그리고 숙련된 기술과 재능의 연마를 중요시하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 보아야 합니다. 즉, 작가는 분청의 아름다움이 무절제한 자유분방함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의 숙련과 사유를 통해 걸러진 절제된 표현에 있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수종의 ‘자연주의’는 어떤 자연의 형상을 구상화시키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초기에는 꽃, 풀 등 자연물을 사실적으로 표현했으나 점차 한자 서체를 바탕으로 화장토와 산화 철물을 가지고 자유롭게 드로잉 하여 마치 현대 추상회화 같은 에너지 가득한 화면을 도출합니다. 하지만 이수종의 분청은 현대미술의 신체의 행위를 통해 비정형의 감성과 생각을 드러내려는 추상화의 지향과는 다른 것입니다. 그것은 작가 자신이 마치 자연의 법칙과 흐름에 따라 순응하여 농작물을 수확할 수밖에 없는 농부의 본분처럼 자연을 대표한다고 상정한 재료-흙을 가지고 매일 분투하는 과정에서 기술과 지식을 습득하며 자신의 감성에 맞는 최선의 방법을 찾고자 노력하여 정직하게 수확물이자 작업의 궤적이 축적된 화면입니다. 결국 이수종의 자연의 핵심은 흙입니다. 첫째, 흙은 자연의 일부이며, 그 흙으로 작업하는 일은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간 선조들의 삶이 흙을 만지고 경작하고 빚으며 자연과 긴밀한 공감대를 이뤄왔음을 그리고 그것이 지금도 유효함을 재차 확인하는 일입니다. 둘째, 흙의 본질을 파악하고 흙 자체가 지닌 특성을 끄집어내는 일은 인간성 회복 즉, 자연스러움을 되찾는 일입니다. 이것은 “도자기는 반드시 각박한 현실을 사는 사람들이 정신문화의 빈곤과 정성의 결핍 즉, 인간의 본성을 되찾고 유지하는데 도움이 되는 물건이 되어야 한다”는 작가의 오랜 생각과 일맥상통합니다. 이때 도자는 어떤 물질적 사물이 아니라 인간의 정신에 관여하고 기여하는 물건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좋은 그릇을 만드는 도예가가 아닌 도예가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작가의 오랜 의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엄밀히 말해 그의 분청이 과거의 전통에서 영감을 받거나 회복하는데 그치지 않고 우리 시대가 요구하고 필요로 하는 작품을 만드는 데 목표가 있음을 확인하게 해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