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할매니얼과 힙트래디션’(Hip+Tradition)의 유행 속에서
[한국 공예, 오늘은] _1
몇 년 전부터 MZ세대의 소비력과 취향이 주도하는 시장에 불기 시작한 레트로 열풍. ‘할매니얼’에서 패션계 Y2K 열풍으로, 레트로 감성 터지는 걸그룹 뉴진스로 옮겨가더니 전통굿즈와 길거리 한복드레스가 대표하는 힙트리에디션(Hip-Tration)으로 유행이 번지고 있다. 대표적인 레트로 현상인 ‘할매니얼’ 입맛은 할머니의 사투리인 ‘할매’와 밀레니얼 세대의 ‘밀레니얼’을 합성한 용어다. 주로 할머니들이 먹고 입는 음식과 패션 취향을 선호하는 밀레니얼 세대를 의미한다.
식품계에는 흑임자·인절미·쑥·한과 등을 활용한 일명 할매 입맛 식품이 열풍이다. 유통업계는 ‘할매니얼’로 대변되는 뉴트로 열풍이 주요 소비층에서 안정적인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고 파악하고 있다. 젊은 세대는 옛날 상품이나 그 시기의 취향을 새롭고 재밌는 놀이로 인식하는 듯하다.
최근 문화계도 유사한 유행이 불고 있다. 지난해 초연한 ‘일무’는 패션 디자이너 정구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와 서울시무용단이 협업해 지난해 초연한 ‘일무’는 올해도 매진사례를 이어갔다. 국립국악원은 젊은 MZ들의 성지 성수동에서 상설공연을 정기적으로 펼칠 예정이며, 각 지자체들도 "도심에서 즐기는 풍류"를 내세우며 서양음악 대신 퓨전국악을 내세워 야장과 야행을 기획, 추진 중이다.
상업 공간도 전통이 대세다. 전국 어디나 한옥을 갤러리, 레스토랑, 카페, 독립서점, 패션샵 등으로 리모델링한 곳이 흔하다. 문화에서 전통이 곧 힙(Hip)이다. 대한민국에서 또 하나 힙한 구역이 박물관과 고궁이다. 경복궁 야간 개장, 창덕궁 달빛 기행 등 궁에서 하는 야행(夜行)은 티켓팅을 해야 갈 수 있을 정도로 인기다. 더불어 전통문화를 새로운 감성으로 풀어낸 상품도 인기다. 덕분에 ‘힙트래디션’(Hip+Tradition)이라는 신조어도 생겼다. 지난해 한국문화재재단이 출시한 굿즈는 젊은 층에게 특히 인기다. 굿즈 중 ‘자두 꽃 오일램프’ 세트를 포함한 5개 상품은 1000개의 물량이 출시 3일 만에 동나 추가 제작에 들어갔을 정도다. 힙트래디션의 대표 주자인 국립중앙박물관 굿즈 역시 1년 새 매출 규모가 30%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가사유상 미니어처, 고려청자 시리즈는 국립중앙박물관의 대표적인 굿즈로, 2022년부터 MZ 세대들의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이처럼, 문화재단, 박물관들이 앞다투어 내놓고 있는 여러 전통 관련 굿즈가 인기를 끄는 것은 기존엔 공예품이나 문구류 등이 대부분이었으나 최근 들어 무선이어폰 케이스나 유리잔, 캠핑용품 등으로 다종다양하게 품목이 확대된 영향이 크다.
현 공예∙디자인의 ‘전통의 현대화’와 전통문화 밀상 즐김 유행 속에서 가장 우려되는 것은 소재로 접근하는 가벼운 인식과 상업화다. ‘과거 전통과 역사를 바탕으로 새로운 지식이 습득되어야 제대로 된 앎이 될 수 있다’는 조상들의 법고창신, 온고지신(溫故知新) 기조를 이어 전통문화를 지키고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은 모든 창작자, 연구자들의 통론이다. 전통의 현대화는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 등을 계기로 국제교류가 빈번해지고 한국이 개방화 단계를 밟으며 현대미술, 공예, 디자인 전분야에서 전통의 현대화, 세계화 시도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2000년대 전후로 형성된 한류열풍이 형성되면서 전통은 본격적인 현대화 바람을 일으켰다. 한복뿐만 아니라 한식, 한옥 등 의식주를 비롯해 국악, 탈춤, 전통악기 등 예술 분야 등 우리 문화 전반에 영향을 미쳤다. 한국인의 신명과 흥취, 전통적인 아름다움, 역동적 패기가 돋보이는 태권도가 비보이, 발레, 타악기 등과 결합한 종합공연의 형태로 유행했다.
한국에서 전통의 현대화, 세계화는 염원이다. 한국미술, 공예작가들도 빠른 속도성과 일변 산업화와 잦은 정치격량, 서구화를 경헝하며 전통과 현대의 어딘가에 선 자신 그리고 우리의 현재와 미래에 관심이 많았다. 그것이 지금 한국미술을 세계에 견인시킨 원동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각자 생각하는 전통의 현대화, 세계화의 수위와 범주 개방의 문제는 생각이 다르다. 경복궁과 인사동, 북촌한옥마을, 전주한옥마을 등 인근에서 퓨전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우리 전통을 제대로 지키자는 견해는 “이들에게 고궁 방문 시 한복 착용 무료입장 혜택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을 피력한다. 다른 편에서는 “조목조목 따질 것이 아니라 퓨전한복이든 전통한복이든 그것을 계기로 시민, 관광객들이 한 번이라도 더 우리의 고궁을 방문하면 좋은 것 아니냐?”라고 반문한다.
전통 굿즈, 할매니얼 식품 유행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상업화, 퓨전화, 소재화로 전통이 갈수록 퇴색되고 가벼워진다는 의견이 있는 반면, 젊은 세대들이 나서서 전통을 애호하고 생산, 소비하니 전통이 무거움을 덜고 한층 친근해지고 다채로워 좋다는 의견도 있다. 결국 어디까지 전통으로 인식하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일이다. 우리가 ‘전통’이라고 여기는 것 역시 세월 속에서 사용자들의 기호와 니즈에 의해 수차례 수정되고 사라졌다 다시 생기기도 한 것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전통을 박물관의 전시 유물로 국한하기보다 디자인과 젊은 층의 감성을 입혀 즐기는 대상으로 바꾸는 것은 긍정적이다.
RM이 쏘아 올린 달항아리 유행을 타고 다양한 형태로 변형, 여기저기 꾸준히 나오는 굿즈 <달항아리>
과거 무분별한 한국스러운, 전통스러운 이미지들로 팔았던 중국산 <한국관광기념품>의 추억
전통을 단지 아름답게 혹은 재미를 위해서만 이용한 것은 예술도, 공예도, 디자인도 아니다. 예술가의 창작은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을 가리지 않지만, ‘전통’을 단지 소재로, 상품화를 위해 가볍게 접근하고 맥락 없이 뒤섞고, 변형하는 것은 늘 경계해야 한다. 전통에 대한 깊은 이해와 해석을 거친 다음에야 현대적 언어와 시대의 미감으로 변용할 수 있다. 지나친 현대화, 세계화를 추구하면서 전통문화의 근간과 정체성을 해치는 행위, 본질이나 기의가 아닌 전통의 형태, 도안, 색만을 모티브로 따고 맥락 없이 변형하고 섞는 관습적이고 진부한 창작이야말로 전통을 오염, 훼손시키는 주범이다. 아울러 전통 굿스에 자주 등장하는 모란, 용, 당초문, 청자운학문, 달항아리, 매병, 정병 등 전통 유물의 특정 도안과 형태에만 집중하는 소재 한정성도 개선해야 할 것이다. 창작자들이 박물관 내 비유명 유물과 알려지지 않은 전통문화유산 등 우리 전통에 대한 식견과 이해, 관심을 넓히면 해결될 일이다. , 그것이 이루어지면, 지금처럼 지역 박물관과 미술관, 유명사찰 및 유적 관광지 굿즈샵에서 서울과 동일한 굿스를 판매하는 일도 줄고, 더불어 굿스 디자인도 다변화할 것으로 예상한다.
최근 전통 굿즈가 주목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현재 문화체육관광부에서 각종 문화재나 전통 문양 등의 데이터를 무료로 개방하여 누구나 저작권 걱정 없이 다양한 전통 굿즈를 제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젊은 세대들의 뉴 레트로 열풍, 그 시절의 향수를 자극하고 동시에 새롭지만 동시에 아는 맛을 즐기려는 중장년층들의 니즈, 코로나19 장기화로 몸과 마음이 지닌 밀레니엄 세대의 위로 심리 등이 복합적으로 더해져 지금의 ‘힙(Hip)한 전통’ 유행이 우리 사회에 불고 있다. 이 유행 덕분에 근래 현대 공예에 관한 관심도 부쩍 높아졌고, 업계가 공예가들과 손을 잡는 협업 제안도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이 유행이 얼마나 더 지속될지, 어떻게 발전할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하지만 일단 문이 열린 만큼 역사와 전통을 기반으로 가능한 우리 것을 살리면서 첨단 물질이나 기술, 생활양식과 문화의 변화를 수용 및 반영하는 것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문화는 늘 생동하고 변모하며 흐르는 물(水)과 같은 것이니 말이다. ■홍지수_공예평론, 미술학박사, CraftMIX대표
본 글은 2024년 월간도예 3월호
공예칼럼 홍지수의 <소소담화>에 '한국 공예의 힙(Hip)한 전통'을 제목으로 실린 바 있습니다. 사전동의 없는 본 글의 무단 복제, 편집, 캡처, 인용, 공유 등을 삼가해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동감, 존중, 배려가 글쓰기에 큰 힘이 됩니다. 필요하신 경우, 댓글이나 메일로 협의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