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히는 첫 번째 손님이 두 번째로 다녀간 날이었다. 영업이 끝난 가게의 문을 닫고 여느 때처럼 함께 저녁을 먹기만 하면 되는 시간. 상혁은 방금 지은 흰 밥 위에 푸짐하게 카레를 올렸다. 이번엔 얼마나 맛있게 먹어 줄까 하는 기대감에 저절로 콧노래가 나왔다.
쟁반에 두 사람의 식사를 담아 유유히 응접실 문 앞으로 간 그는 노크를 하기 직전 흥얼거림을 멈췄다. 문틈 끝을 타고 수상한 연기가 새어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쎄한 기분이 든 상혁은 노크도 생략하고 문을 열었다.
아니나 다를까 익숙한 라임향 대신 매캐한 연기가 가득 차 있었다. 응접실의 파릇파릇한 나무들이 질식해 버릴 만큼 진하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지? 다급해진 상혁은 그 시커먼 것이 어디서 나오는지부터 찾아야 했다.
‘앗.. 저기다’
보통 때라면 굳게 닫혀 있을 서재문이 반쯤 열려 있고 그 틈을 비집고 시커먼 연기가 맹렬한 기세로 쏟아져 나오는 중이었다. 상혁은 들고 있던 쟁반을 테이블 위에 던지다시피 놓고 서재 옆 주방으로 내달렸다. 행주인지 걸레인지도 모를 헝겊을 물에 급하게 적셔 코와 입을 막았다.
‘주인장이랑 고담이에게 무슨 일이 난 건가?’
매번 그 방엔 들어가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더니 뭐가 뭔지 몰라도 거기서 탈이 난 게 분명했다. 상혁은 이 다급한 상황이 곧 해결되지 않으면 얼마 남지 않은 자신의 심장은 기어이 터져 버리고 말 거라는 확신이 들었지만 크게 개의치는 않았다.
“덜컹”
문을 제치고 방에 들어서자 연기는 더욱 심하게 차 있었다. 상혁은 밀도가 좀 덜한 아래를 노려 허리를 숙였다. 그리고는 더듬거리며 간신히 그 방을 수색해 나갔다. 어지러이 나뒹굴고 있는 잡동사니와 짐들 사이로 혹시 쓰러져 있을 주인장과 고담이를 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허리를 낮게 구부린 채 어렵사리 그들을 찾던 상혁은 갑자기 움직임을 멈췄다. 분명 일분일초가 중요한 상황인데 무언가가 맞지 않았다. 방이 넓어도 너무 넓었던 것이다. 예상대로라면 방문 앞이나 조금 안쪽이면 바로 발견되었어야 했다. 화재나 연기의 원인점도, 쓰러져 있으리라 예상했던 희생자도 찾아야 했지만 상혁은 순간 자신이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인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분명 작은 방이었는데..’
상혁은 사장인 이유가 그곳을 나올 때 스치듯 지나치며 방 안을 본 적이 있었다. 벽 쪽에 붙어 있는 책장들이 서너 개, 창문이 하나 그리고 일인용 책상과 의자가 전부였던 공간. 그런데 지금은 이 건물 전체 평면의 크기와 맞먹을 만큼 넓고 낯설었다. 건물의 바깥쪽을 빙 둘러 견적을 내어봐도 도저히 나올 수가 없는 너비다.
‘이건 말이 안 되잖아.’
이상한 나라에 온 엘리스라도 된 건가. 논리적으로 아는 것과 느끼는 것의 차이가 커지자 상혁의 사고는 자꾸 어떻게 이것이 가능한지 추론하려 들었다. 그러다 다시 주인장과 고담이가 지금 어떤 상황인지에 생각이 닿자 잡념을 버리려는 듯 머리를 흔들고는 바닥을 훑는 데에만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는 매캐함을 애써 참으며 바닥의 짐들 중에 사람이나 고양이는 없는지 한번 더 확인해 갔다. 그러나 결국 어디에도 쓰러진 사람이 없다는 걸 확인한 뒤 상혁의 머릿속에서 분명해지는 건 딱 한 가지였다.
‘여긴 그 서재가 아니다.’
결론이 확신으로 바뀔 찰나 구석 쪽에서 여태까지 보이지 않던 무언가가 반짝였다.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철제 난간이었다. 반짝이는 검은색 페인트로 칠해진 표면 위로 희미하게 반사돼 보이는 불빛. 이 집의 2층으로 난 철제 계단과 똑같은 것이었다. 지하실이 있다는 것도 들은 바 없던 상혁은 순간 내려갈지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아래층을 채우고 있는 진회색의 바다가 넘실거리며 살아 있는 것 같아 상혁은 침을 꼴깍 삼켰다.
‘그래, 119를 부르기 전에 잠깐 확인이라도 해보자. 운이 좋으면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상혁은 젖은 헝겊을 입으로 꽉 깨물다시피 고정시켜 호흡하며 내려갔다. 잠시 일렁이며 보이던 불빛은 이제 아예 꺼진 건지 칠흑같이 어두웠다. 핸드폰 플래시로 계단만 비춰 서너 개 정도를 간신히 내려가자 연기는 더 짙어져 이제 아예 앞을 볼 수가 없었다.
‘여긴 장비 없이는 못 들어간다.’
단 몇 계단 만에 호흡이 전혀 되지 않자 한계를 느낀 상혁이 돌아가 구조를 요청하려는 순간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바로 아래의 층계를 밟고 엉거주춤 뒤로 돌아가려 무릎을 반쯤 구부리자 계단 반 개 정도의 높이 차이로 신선한 공기가 얼굴 전체를 훑고 지나가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 숨을 쉴 수 있다?!’
찰나에 자신이 잘못 생각한 건지 알 수 없어 맛을 보듯 헝겊 사이로 숨을 조금 들이켜보자 분명 더 확실해졌다. 이건 공기다. 어리둥절해하던 것도 잠시 상혁은 못 쉬었던 숨을 한꺼번에 몰아 쉬었다.
'이제야 살 것 같군.'
기운을 차린 상혁은 고개를 들어 머리 위를 플래시로 비춰보았다. 바로 15cm 위로 검은 연기 덩어리가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딱 거기서 꿈틀대고 있었다. 정확히는 상혁이 마지막으로 딛었던 계단에서부터 새로운 공기를 들이쉴 수 있었다. 지질표층처럼 공기가 완벽하게 나뉘어 있던 것이다.
“사장님! 고담아! 거기 아무도 없어요? ”
떠오르는 궁금증을 누르며 상혁은 찾으러 온 이들을 부르기 시작했다. 한 계단씩 내려갈 때마다 목이 터져라 불러댔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다. 빨리 찾아서 이곳을 나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성대의 한계치를 다 써버린 상혁의 목소리는 이제 쉰 쇳소리를 내며 갈라지고 있었다. 플래시의 연약한 불빛에만 의존해 층계의 나선을 꼬박 3번째 돌아 저 멀리 마지막 계단이 희미하게 나타났을 때 땅이 불현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처음은 지하철이 지나갈 때처럼 저 멀리서 두근두근 하는 것 같더니 점점 커지며 올라오고 있었다. 상혁은 본능적으로 바로 옆 난간 손잡이를 꽈악 움켜 잡았다. 두두두. 위아래로 흔들리는 엄청난 크기의 진동이 지표층 밖 모든 것을 훑고 지나가려 하고 있었다. 그가 계단 밖으로 튕겨져 나가는 것도 시간문제였다.
파아아!!
무언가가 밖으로 분출되기 위한 것이라는 걸 알게 된 건 격렬한 진동이 갑자기 멈춘 후로부터 정확히 3초 만이었다. 강력한 열기가 느껴지더니 곧 상혁이 서 있던 계단 옆으로 거대한 불기둥들이 치솟아 올랐다. 엄청난 압력과 열기. 오랜 기간 억눌린 게 분명해 보이는 무언가가 다급하게 치솟아 오르고 있었다. 서 있기도 어렵던 상혁은 불기둥과 최대한 멀리 떨어지기 위해 난간의 손잡이 아래에 몸을 동그랗게 말았다. 뜨거움을 피하느라 긴박한 와중에도 상혁은 불기둥이 마치 커다란 용 같다고 느꼈다. 화가 잔뜩 난 용.
‘으.. 결국 여기서 통구이가 되는구나.’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1초가 1분 같던 마그마 분수쇼가 어느 순간 갑자기 멈췄다. 완전히 끝난 건지 아니면 다른 분출을 준비하기 위한 건지 알 수는 없었다. 다만 통닭구이가 되는 건 면했다는 것. 살짝 뜬 실눈으로 주위를 살피던 상혁이 갑자기 무언가에 홀린 듯 침을 꼴까닥 삼키며 일어섰다.
보이는 곳의 너비만 가늠해도 축구장 몇 십 개는 되어 보이는 거대 지하동굴. 천정과 맞닿아 자란 거대한 기둥들이 빽빽하다 못해 황토색 기둥 신전을 만들어 놓은 것 같았다. 군데군데 파인 구덩이들에서 작은 불기둥이 간간히 솟아오르고 그 붉은빛이 황토색 기둥과 벽을 비춰 마치 지하세계의 시뻘건 지옥불을 연상하게 했다.
입을 벌린 채 얼어있던 상혁은 혹시 자신이 와 있는 곳이 사후세계인가 하며 진지하게 고민 중이었다.
“.. 말도 안 돼.. 서울 한복판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