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나의 두 번째 퇴사 이야기 4
언젠간 퇴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후, 나는 마치 내 퇴사를 합리화하려는 듯 안정적인 직장을 때려친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퇴사를 하고 제빵사가 된 사람의 이야기, 직장내괴롭힘으로 공무원을 면직한 사람의 이야기, 퇴사하고 워킹홀리데이를 떠난 사람의 이야기 등등.
제각기 사람들의 이야기는 다 달랐지만 공통점이 하나있었다. 퇴사를 실행하는 힘은 아주 작은 계기에서 온다는 것이었다. 그 작은 계기는 나에게도 곧 찾아왔고, 나는 자연스럽게 회사를 나오게 됐다.
퇴사도 하나의 이별이다.
좋건 싫건 매일 함께했던 사람들은 다시 볼 일 없는 사람들이 된다. 하루의 대부분을 보냈던 내 공간은 다시 올 일 없는 공간이 된다. 나의 일상이었던 모든 것은 추억이 된다. 매일 신경썼던 '나의' 일을 뒤로하고 회사를 나오는 과정은 생각보다 후련하지 않다.
첫번째 회사를 나오던 날엔 눈물이 찔끔 났었다. 첫 회사는 첫사랑이라더니, 더이상 힘들어하지 않아도 된다는 후련함보다는 이 회사와 아무런 관계도 아니게 되었다는 아쉬움에 울컥울컥했다.
두번째 회사를 나오던 날엔 모든 감정이 무디게 느껴졌다. 후련함도, 아쉬움도 덜했다. 퇴사의 기쁨을 만끽하기 위해 평소에 가기 힘들었던 빵집에 들러 빵을 살 때도, 관광객이 가득한 도심 속에서 커피를 마실 때도 그냥 그랬다. 퇴사가 원래 이런건지, 뭔가를 느낄 새도 없이 난장판이 되어있는 내 집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퇴사를 하고 돌아와 본 내 집은 다소 충격적이었다. 1년이 넘도록 손도 대지 많은 수많은 물건들이 구석에 처박혀 먼지가 가득 쌓여있었고, 후추며, 고추가추며 부엌 찬장의 조미료들은 죄다 유통기한이 지나있었다. 이렇게 내가 내 일상도 돌보지 못하며 살았나, 하는 마음에 내 자신이 안쓰럽기도 했고, 놓아야할 것을 놓았구나 하는 마음에 더 늦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몇 년만에 집청소도 하고,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면서 알게된 점이 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내가 번아웃 상태에 있었다는 것이었다.
나에게는 퇴사 로망이 하나 있었다. 바로 단기 어학연수를 가는 것.
가난했던 대학생 시절 해외에 있을 때에는 어학연수라는 작은 핑계를 대고 넉넉한 하루하루를 보내는 직장인들이 너무 부러웠다. 그래서 나도 언젠가 퇴사를 하고 나면, 3달쯤은 어학연수를 떠나고 싶었다.
그런데 정작 나는 어학연수는 커녕, 가까운 해외로 여행갈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개인적인 작업을 해볼 생각도, 놀러다닐 생각도 들지 않았고 그냥 집에 있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
어쩌면 퇴사를 하게만드는 아주 작은 계기의 진정한 의미는, 작은 계기 하나 조차 넘길만한 여유가 없다는 뜻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대책없이 퇴사까지 한 마당에 마냥 쉴 수만은 없는 법이었다.
나는 집 근처에서 도보로 다닐 수 있는 단기 알바를 하나 찾았다.
지옥철을 탈 필요없이 아침에 일어나 어슬렁어슬렁 걸어가 출근했고, 퇴근 시간이 되면 누구보다 빠르게 나왔다.
바쁜 일도 없으면서 퇴근길엔 언제나 서둘러 집에 가곤 했는데, 이게 무의식적으로 시간을 아끼는 안좋은 습관에서 오는 행동임을 자각한 후로는 퇴근길도 여유롭게 다니도록 노력했다.
그러고나니 삶이 엄청나게 단순해지기 시작했다.
출근하고, 퇴근하고. 할 일이 쌓여있지도, 걱정이 계속되지도 않았다.
앞으로 뭐해먹고 살아야할지도 모르면서 걱정 하나 없었고, 그야말로 편안함에 이르렀다.
혹시, 다른 사람들은 이렇게 편안한 마음으로 살아가는건가?
나는 곧 그 편안함의 차이가 일에서 오는 차이가 아님을 깨달았다.
당연하게도 모든건 마음가짐의 차이였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뭐든, 창업이든 여행이든 난 그걸 언제든 할 수 있는 상태였다. 그걸 넘어서, 지금이 아니라면 언제? 라는 생각이 나를 안심시켰다.
회사를 다닐 땐 내가 하고싶은걸 언제 할 수 있다라는 기약이 없었다. 언제나 때가 아니었다. 심지어 퇴사하는 순간까지도 사람들은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했다. 그게 날 갉아먹었던 것이다.
이 글은 인스타툰으로 연재했던 시리즈 「사람 운명은 정해져있다는 걸 믿게된 이유」를 바탕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퇴사'라는 누구나 겪을 수 있지만 다소 무거운 주제를 인스타툰 형식으로 2달간 연재했었고, 많은 분들의 공감 속에 감사하게도 누적 조회수 32만을 달성하며 큰 관심을 받았습니다.
브런치에는 만화에 다 담지 못했던 경험과 고민, 감정들, 말풍선 밖의 이야기를 조금 더 솔직하게 풀어내고 있어요.
「사람 운명은 정해져있다는 걸 믿게된 이유」시리즈와 일상 만화들은 인스타 계정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jju_purin (클릭시 인스타로 이동)
→ 이번 화는 사람 운명은 정해져있다는 걸 믿게된 이유에 연재되지 않은 내용을 포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