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길은 생각해본적이 없는데

#3 디지털노마드로 살기를 포기하다

by 쭈프린

요즘 시대엔 시공간의 제약 없이 일하는 디지털 노마드로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내가 어렸을 땐 디지털 노마드라는 개념이 흔하지 않았고, 회사에 소속되어 9 to 6 라이프가 일반적이었다.

프리랜서로 살아갈 수 있는 직업군은 디자이너나 개발자 정도였고, 나는 프리랜서가 되기 위해 컴퓨터공학과에 진학했다.



난 학교에 적응하지 못했다.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서 고등학생은 국어, 영어, 수학 그리고 선택과목 2과목을 공부한다.

공부하다보면 재미있는 과목과 재미없는 과목이 있기 마련이라, 대학에 가면 재미있는 과목만 공부하면 된다는 생각에 나는 대학생활을 꽤나 기대했었다.

그러나 난 대학생활에 적응하지 못했다.

일단 컴퓨터의 구조나 운영체제를 배우는게 너무 재미없어서 대학 수업엔 전혀 관심이 없었고, 대학생활보다는 당시에 다니던 알바에서 만난 언니, 오빠들이랑 노는게 더 재밌어서 학교에 잘 안갔다.

대학은 고등학교랑 다르니 친구를 만들려면 동아리도 가입하고, 행사도 참여하면서 학교에서 시간을 많이 보냈어야 했는데 그러지 않았고, 나 빼고 점점 친해지는 주변 친구들을 보면서 혼자 수업을 듣고 집에 가는게 머쓱하기도 하고 그랬다.

더군다나 코딩은 아무리 노력해도 천재 앞에선 소용없는 영역이라며, 노력보다 재능을 심하게 탄다는 선배들의 조언을 들었고, 재능이 없을게 뻔한데 재미까지 못느끼는 코딩을 업으로 삼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사운정믿 4-4.PNG
사운정믿 4-5.PNG


애초에 프리랜서로 살고 싶어서 이 전공을 선택했다니. 바보같은 판단이었다는 생각이 들었고, 자퇴를 고민하던 어느날, 나는 과방에서 20만원이 넘던 과비를 안냈다는 이유로 눈치밥을 먹게 됐다.

과비를 낼지 말지는 자유였지만, 과비를 내지 않으면서 가끔 과방에 앉아 노는게 꼴보기 싫었나보다.

친한 친구도 몇 없어, 수업도 재미없어, 돈도 내기 싫어 3박자가 딱 맞아 떨어지니 나도 마음이 아예 떠버려서, 학교에 제대로 다녀보지도 않고 전공을 포기하기로 했다.

내 인생의 첫번째 전환점이었다.


사운정믿 4-6.PNG
사운정믿 4-7.PNG
사운정믿 4-8.PNG


그치만 난...
난 다른 길은 생각해본 적 없는데?


예체능에 재능없던 내가 프리랜서로 살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던 코딩.

호기롭게 입학한 컴퓨터공학과에 적응하지 못했으니 선택지는 단 하나였다.

현실을 받아들이고 직장인이 될 수 밖에 없는 운명을 인정하기.


그도 그럴것이 나에게 직업이란 회사에 나가거나, 회사를 운영하거나 딱 둘 뿐이었다.

부모님은 항상 공무원이 최고라 말할 정도로 안정 추구 성향이 강한 분들이셨고, 그 영향으로 나는 사업하면 언젠간 빚쟁이가 되는 줄 알았으니 결국 나에게 선택지는 단 하나였던 셈이다.


사운정믿 5-4.PNG
사운정믿 5-5.PNG


직장인이 되어야겠다고 생각만했지 딱히 하고싶은게 없었던 나는 그냥 상경계열에 입학했다.

반수를 하면서 나는 영어학원 데스크에서 알바를 했었는데, 시재를 맞추고 정산하는걸 재밌어했어서 은행원이 되면 좋겠단 생각이었다.

다행히도 입학해서 배운 경영학개론이라던지 경제학개론이라던지 하는 새로운 과목들은 꽤나 재밌었고, 이번엔 타지로 대학을 가게 되어 대학생활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성적이 좋은 학생은 아니었다.

다른 친구들에 비해 암기도 느렸고, 이해도 느렸다.

수학이나 과학은 이해를 바탕으로 계속 반복하면 자연스럽게 외워지는 것들이 많았지만, 경영학이나 경제학은 일단 외우고 봐야하는 것들이 대부분이었고 난 그걸 잘 못했다.

대학에 들어간 첫 해엔 처음 배우는 문과 과목이 생소해서 그런가보다 했지만, 두번째 해에도 성적이 좋지 않아 전과를 진지하게 고민할 정도였다.

4년 전액장학금을 받고 입학했기 때문에 매 학기 학점 3.5점을 넘겨야했는데 3.5점이면 B+에 해당하는 수준임에도 매 학기마다 3.5점을 넘지 못할까봐 가슴 졸여야했다.

' 이제 3학년인데 지금 전과해도 되는걸까, 괜히 전과했다가 3.5점 못넘으면? 근데 지금 전공으로는 취업해도 문제일 것 같은데.. '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걱정이 끊이지 않던 어느날, 가장 친했던 친구가 나에게 말했다.

" 언니. 나는 교환학생 가려고. "

친구는 취업 준비를 시작해야하는 4학년이 되기 전에 독일로 교환학생을 가고싶다고 했고, 교환학생을 가면 전공 과목을 좀 더 다양하게 들을 수 있다는 말*에 친구 따라 서류를 넣고, 면접을 보고 그렇게 갑자기 대학생활의 꽃이라는 교환학생을 가게 됐다.


* 한국의 대학은 커리큘럼이 어느정도 정형화되어있고, 수업 내용도 비슷하지만, 외국 대학은 전공 과목이 조금 더 다양한 느낌이었다. 예를 들면 한국에서 마케팅 수업이라하면 마케팅원론, 소비자행동론 정도가 있지만 내가 다녔던 프랑스 대학에는 럭셔리브랜드마케팅처럼 특색있는 수업들이 많았다.






이 글은 인스타툰으로 연재했던 시리즈 「사람 운명은 정해져있다는 걸 믿게된 이유」를 바탕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퇴사'라는 누구나 겪을 수 있지만 다소 무거운 주제를 인스타툰 형식으로 2달간 연재했었고, 많은 분들의 공감 속에 감사하게도 누적 조회수 32만을 달성하며 큰 관심을 받았습니다.

브런치에는 만화에 다 담지 못했던 경험과 고민, 감정들, 말풍선 밖의 이야기를 조금 더 솔직하게 풀어내고 있어요.

「사람 운명은 정해져있다는 걸 믿게된 이유」시리즈와 일상 만화들은 인스타 계정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jju_purin (클릭시 인스타로 이동)

→ 이번 화는 사람 운명은 정해져있다는 걸 믿게된 이유 4편과 5편 일부 내용을 포함합니다.




일요일 연재
이전 03화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시간에 일할 수 있는 직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