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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여행하기(7)

다시 떠날 준비를 한다는 건

by 옆집사람

혼자 하는 여행(7)

다시 떠날 준비를 한다는 건

해외로 여행을 갈 때는 국내 여행과 다른 점이 있다. 공항에 들어서는 그 순간부터 나를 불편하게 했던 일들이 생각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직장에서 속 썩이던 사람, 해내야 했던 일들에서 오는 스트레스, 해결해야만 하는 일들이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 머릿속에서 한꺼번에 사라진 것처럼 생각이 나지 않는다. 가만있어도 끊임없이 머릿속에서 시끄럽게 떠들던 모든 것들이 한꺼번에 조용해진다. 오로지 한 가지 생각뿐. 그곳에 가서 잘 다닐 수 있을까? 마치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듯 있었던 일들에 대해 잊어버린다.

사람들의 뇌 속의 언어영역에는 모국어 영역과 외국어 영역이 있다고 한다. 평소에는 모국어 영역이 우세하게 작용하면서 외국어영역을 누르고 있어서 활성화되지 못한다고 한다. 그래서 외국어를 하는 것이 어렵다고 한다. 그런데 외국에 나가게 되면 모국어 영역의 역할이 줄어들면서 외국어영역이 활성화되기 시작한다고 한다. 외국어영역이 활성화되면 평소에는 잘 안되던 외국어로 말하는 것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아니면 한마디라도 스스로 하지 않으면 물 한 병 얻어 마실 수 없는 현실의 생존본능인지는 모르겠지만 평소에는 잘 안되던 외국어가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 사실이다. 한 명이라도 외국어를 잘하는 사람과 같이 가면 여전히 아무 말도 못 하곤 하는 것을 보면 생존본능이라는 것이 맞는 말인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조용하던 머릿속이 여행을 마치고 인천공항의 입국장을 지나면 한꺼번에 휘몰아치듯 다시 생각이 나고 출근하고 30분이면 약발이 떨어진다고 할 만큼 여행 중에 느꼈던 평화로움이 사라져 버리곤 한다. 그러고 나면 바로 다음 여행지를 찾아 인터넷을 뒤진다.

실제로는 가지도 않을 비행기 좌석 여부를 찾아보고, 여행지의 여정을 계획하고, 여행지에 대한 책을 사서 읽고, 같은 곳을 가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인 카페를 들락거린다.

여행을 못 가는 대신 여행 가는 사람들의 여행루트를 짜주기도 한다. 여행루트를 짜면서 생각을 그곳을 빠르게 지나가고 있고 그곳에서 있었던 일들은 다시 살아나듯 떠오르곤 한다.

어디에서 버스를 타고 어디를 들러서 가는 것이 일반적으로 짧은 휴가를 내서 가는 사람들이 더 많은 곳을 더 편하게 다닐 수 있을지를 생각하고 조언한다.

시간이 빨리빨리 지나가기를 바라기도 했다. 다음 휴가를 기다리기도 하고 퇴직이라는 것을 하고 나면 날짜에 구애받지 않고 한두 달씩 다닐 수도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기도 한다. 그때가 되면 가고 싶었던 곳은 어디든지 갈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젊은 부부가 세계여행을 하며 살아가는 내용이 방송에 나왔다. 두 사람은 결혼 후 1년 만에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70여 개 도시를 여행했고 지금도 여행하기 위해 돈을 모으고 있다고 했다. 행복을 미룰 수 없어서 결혼 5년 후로 계획했던 여행을 1년 만에 시작했다고 한다. 집에는 꼭 필요한 것만 가지고 살고 있고 여행하는 돈을 모으기 위해 하루의 생활비는 만원으로 정해져 있는데 만원을 지출한 것이 어제의 먹을거리인지 오늘의 먹을거리인지를 규정을 정해야 한다고 했다. 오늘 저녁은 두부를 먹자는 남편에 말에 아내는 이제 두부는 그만 먹고 싶다고 투정을 부렸다. 부부의 행복은 여러 나라를 여행하는 것이 아니라 만원의 지출에 규정을 정해야 하는 것, 두부를 먹기 싫다고 투정을 부리는 것, 그것 자체였으면 좋겠다고 그 영상을 보면서 생각했다.

가끔 아침 출근길에 이대로 어딘가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어릴 때는 그렇게 아주 모르는 곳에 가서 새롭게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던 것 같다. 왜 낯선 곳에 가면 새로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는지 속해 있는 사회에서 무작정 도망치고 싶었던 건지 그건 잘 알 수 없지만 낯선 곳에서 전혀 다른 모습으로 살고 싶다는 것이 나의 여행의 이유였다. 사실 중요한 것은 어디에 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있느냐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갔다 올게"

모 기업의 광고 문구이다. 광고 내내 여러 명의 사람들이 이 말을 한다. 어린아이도 남편도 부인도 해녀도 말한다. 정신이 없어도 집은 찾아간단다. 술이 취해 기억이 끊어져도 집에서 깨어나며 말하기도 한다. 어떻게 집에 왔지?

귀소본능이란 가장 안전한 곳, 가장 편안한 곳, 그곳을 찾아가는 것이 생존의 본능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떠나고 싶다고 하는 말에는 다시 돌아오고 싶다는 말이 같이 있다. 어디든 갔다가 다시 돌아올 곳이 있다는 것, 그곳에 나를 기다리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은 우리를 묶어주는 삶이 아직 남아 있다는 것일께다.

돌아올 곳이 없는 사람은 떠날 수 없다. 갔다 올게라고 말할 수 있을 때 떠날 수 있고 그래서 일탈을 꿈꿔보기도 하고 다시 돌아 올 수도 있다.

어떤 일이든 내성이 생겨 조금 씩이라도 더 강한 것 더 자극적인 것이 아니면 금방 시들해져서 "재미없어"라고 간단하게 표현하지만 그 속에서 바라는 것은 좀 더 자극적인 것을 원하는 것을 느낄 때 다시 여행 짐을 싼다. 새로운 환경에서 낯선 모습으로 떠돌다가 다시 돌아오기 위해서 떠날 준비를 한다.

그리고 가방을 들고 대문을 나서며 말한다. “ 갔다 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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