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맘으로 찬사를 보내고 싶은 그분
“나를 찾아가는”이라는 얘기가 나왔다. 어떤 힐링 프로그램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저녁자리에서. 주제는 예전에는 시대적 상황이 여자는 현모양처를 강요받았기 때문에 장래 희망에 “현모양처”라고 쓰는 아이들이 많았고 그렇게 포기하면서 살아서 자기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이 그저 “엄마”로만 살았는데 이제 다 커서 결혼하는 자식들이 엄마가 할 수 있는 게 뭐냐는 소리를 한다는 것이었다. 그건 원망보다는 엄마를 두고 결혼해서 떠나가는 자식들이 안심되지 않아서 하는 말이라는 것도.
한 사람은 자신이 어머니께 했다는 얘기를 했다.
“엄마, 그렇게 산 게 억울하지? 그래서 자식들이 안 찾아가면 더 억울한 생각 들지? 그래도 할 수 없어. 이제 나는 나 자신을 찾아서 살 거니까.”
억울하냐는 질문에 어머니의 대답은 “그렇지 뭐” 였단다.
모든 일은 생각하는 것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다. 의무감으로 희생한다고 생각하고 하면 희생한 게 되는 것이고 좋아서 했으면 그것도 하나의 완성된 삶이 되는 것 같다.
우리네 어머니들에게 자식은 자신이 희생해서 키워낸 것이 아니고 온 마음이 쏠려서 키워낸 존재였고 그렇게 자식을 키우고 남편을 내조하는 것이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고 그런 자기 자신을 찾아서 살았던 것은 아닐까?
도대체 나를 찾아간다는 것은 무엇이고 그 찾은 나는 또 무엇일까?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무언가를 한다는 것만이 자기 자신을 찾는 것일까?
어릴 때 장래 희망이 뭐였냐는 질문에 “현모양처요.” 했다. 장래 희망을 적는 칸에 뭐라고 적었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진짜 그렇게 썼었던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그렇게 썼다고 해서 이상하지 않은 시대에 살아서가 아니라 그게 잘 못 된 것 같지는 않다.
온 맘으로 찬사를 들어야 하는 분은 그렇게 살아오신 어머니들인 것 같다. 험난한 세월을 견디며 자식을 키워내신 그분들의 삶이 존경받아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