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1)
난 하루에 수 도 없이 누군가를 죽이고 싶어진다. 그 들 중 나에게 직접적인 해를 끼친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냥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이다. 핸드폰을 하느라 길을 막아 20분에 한 대있는 출근길 버스를 놓치게 한 사람. 뛰어오는 것을 보고도 문 닫고 떠나버리는 버스기사. 공공장소에서 핸드폰을 크게 틀고 스피커로 노래를 듣는 할아버지. 가방을 자식인양 옆에 끼고 앉아 좌석을 차지하고 있는 아줌마, 다리를 꼬고 앉아 흔들며 신발이 계속 내 바지 아랫단을 건드리는데도 큰소리로 전화 중인 여자,
주위에 흔히 있는 그런 사람들에 난 끊임없이 분노한다. 그러나 진짜 사람을 죽이지는 않는다.
수사의 시작은 15 년 전 실종된 여고생 강윤지의 모친 방혜순의 자살사건에서부터였다.
방혜순은 얼마 전 유서를 남기고 아파트 옥상에서 투신해서 자살했는데 유서에는 15년 전 실종된 딸 강윤지에 대한 그리움과 그녀를 찾기 위해 했던 일들이 적혀있었고 이제 자신은 암으로 시한부의 목숨이 되어서 더 이상 딸을 찾을 수 없으니 자신을 대신해서라도 꼭 딸을 찾아달라는 절실함이 묻어나 있었다.
복수는 힘이 있는 사람이 하는 것일 뿐 힘이 없는 사람의 복수는 스스로를 부숴 버리는 것 밖에 없는데 실상 그것은 그들에겐 아무런 피해가 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런 선택을 하는 것이 안타까우면서도 오죽하면이라는 말을 안 할 수 없다.
그녀가 남긴 유서에는 딸의 실종에 자신이 찾아낸 자료가 가득했는데 용의자로 생각되는 사람의 이름과 함께 그에 대한 저주의 말도 빼곡히 적혀 있었다. 그리고 그 마지막에 쓰여 있는 글귀는 자식을 잃어버린 부모는 죽어서도 제대로 죽는 것이 아닌 것 같았다
"죽어 원혼이 되어서라도 네 놈의 정체를 밝히겠다"
강윤지. 실종당시 19살의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었다. 방과 후 집에 왔다가 같은 학교친구를 만나러 나가서 실종되었다. 강윤지는 하교 후 가방을 집에 두고 다시 밖으로 나간 흔적은 있었지만 집 앞에서 그녀가 찍힌 CCTV는 편의점 앞에서 전화를 받으며 어디론가 걸어가는 모습이 찍힌 것이 끝이었다.
강윤지는 집을 나가면서 행선지가 어디인지 아무에게도 말한 적이 없었고 친구를 만난다는 것도 아침에 등교하면서 엄마에게 지나가는 말로 한 것이 전부였다.
“ 엄마, 이따 학교 갔다 와서 친구 만나기로 했어. 걔가 자꾸 할 얘기가 있다고 해서”
“ 어디 가는데?”
“ 가긴 어딜 가. 집 앞으로 온대. 학교에서 해도 되는데 굳이 왜 집 앞까지 오는지 모르겠어 ”
“ 친한 친구야?”
“ 아니. 그냥 같은 반 친구야”
이게 강윤지와 방혜순의 마지막 대화였다.
밤 10시쯤 너무 늦는다고 생각한 방혜순이 강윤지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는 이미 전화가 꺼진 상태였고 최종 발신지는 집이나 학교 근처가 아닌 엉뚱한 장소였는데 전철로 1시간쯤 가는 거리에 있는 인천이었고 핸드폰은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
그때 만나러 나간 친구는 같은 학교 동급생이었다. 당시 수사에서는 한 남학생이 용의 선상에 오르긴 했지만 약속은 했지만 만나지 못했다는 남학생의 주장이 받아들여졌는데 만났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아무런 증거나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학교 선생님들의 증언 때문에 용의 선상에서 벗어났다고 한다.
그 남학생은 우등생이었고 평소에 말이 별로 없고 말을 할 때도 눈조차 마주치지 못할 만큼 수줍음도 많고 말을 할 때는 더듬기도 할 만큼 숫기가 없는 학생이라고 했다.
더군다나 여학생을 만나는 일을 할 만한 학생이 못 된다는 것이 공통적인 교사들의 증언이었다.
수사상황에서도 남학생이 강윤지를 만났다는 어떠한 정황도 찾아낼 수 없었는데 15년 전에는 지금같이 CCTV나 차량의 블랙박스가 많은 때가 아니어서 강윤지나 만나기로 했다는 남학생의 이동경로를 확인하는데 한계가 있었고 두 사람이 같은 학교를 다니고는 있었지만 강윤지의 집은 버스로 20분가량 떨어진 곳이었고 남학생의 진술은 숙제하는데 필요한 책을 빌려 달라고 해서 학교 앞에서 만나서 주기로 했다고 했는데 그 남학생이 강윤지를 만나기로 했다는 곳은 학교 정문에서 나와 골목으로 들어가는 길 안쪽이나 어떤 확인도 불가했다.
남학생의 존재를 알게 된 것도 강윤지의 통화내역 확인 시 집을 나선 오후 5시경 같은 반 남학생에게 한 것이 마지막이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만나기로 한 사실이 없다고 했는데 통화한 사실 확인 후에는 학교 앞에서 책을 빌려주기로 했었다고 말을 바꾸었다. 말을 바꾼 사실을 물어보니 착각이었다고 얼버무렸다. 모든 것은 그 남학생의 진술에서 나온 것뿐일 뿐 사실이라고 증명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것도 확인할 수는 없었다.
강윤지의 부친은 12살 때 이혼을 하고 미국으로 이민을 간 상태였는데 처음엔 부친이 강윤지와 연락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도 있었지만 부친은 이민 간 후 단 한 번도 국내에 입국한 사실이 없었고 통화조차 한 내역이 없었다.
15 년 전의 수사는 여기서 멈추었다. 처음에는 전화기까지 버리고 사라진 단순 가출 처리가 되었고 방혜순의 요구로 수사가 시작되기는 했지만 동선이 그려지지 않는 상황에서 더 이상의 진전 없이 미제사건이 되었다.
방혜순은 그 이후로도 끊임없이 강윤지의 행방을 찾아 헤매어 다녔고 조금이라도 강윤지의 동선으로 생각되면 몇 날 며칠을 그곳에 가서 행방을 찾았던 것 같다. 그렇게 15년을 찾아 헤맨 기록이 그녀의 유서와 함께 경찰서로 전달되었다.
처음 몇 년은 강윤지의 행적추적에 집중되어 있었다. 사라진 이유를 알 수 없었고 어디로 간 건지 알 수 없어서 수없이 많이 전단지와 광고를 냈고 전단지와 광고를 보고 연락해 오는 곳은 어디든지 달려갔다. 혹시 비슷한 사람이라도 본 사람이 있으면 몇 날 며칠을 기다려 그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도 찾을 수 없는 것이 오히려 이상 할 정도였다.
실종 당일 오후 5시경 집 근처 편의점 앞에서 전화를 하면서 움직이는 동선 이외엔 어디서도 볼 수 없었다. 사람들은 이미 사망했을 것이라고 했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최소한 왜? 어디서? 어떻게 사망했는지라도 알아내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