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
거의 30년 전, 대학에 입학하고 너도나도 읽던 ‘상실의 시대(노르웨이의 숲)’를 두어 번 읽었다.
이후, ‘해변의 카프카’,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을 어렵게겨우 읽었지만 ‘1Q84’, ‘기사단장 죽이기‘는 읽을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재즈와 위스키를 좋아하는 작가로 나에게 친근하게 다가왔지만, 나는 그의 세계로 들어가는데 애를 먹었다. 나의 세계가 정립되지 않은 상태로 다른 이의세계관에 들어갈 수 없었다.
이번 책,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도 한참을 읽으면서도 책 제목조차 기억이 나지 않아 계속해서 책 표지를 보곤 했다.
쉽게 읽히지 않을 거란 생각에 정말 긴장하며 시간의 공을 들여 천천히 읽었지만 역시 그의 세계로 들어가기란 쉬운 게 아니었다.
이 세계와 저 세계, 여기의 나와 그곳의 나, 여기의 너와 그곳의 너, 현재의 나와 미래의 나, 여기저기서 얽힌 인연들. 시간과 공간의 의미. 독자가 알아서 해석해야 하는 이야기였고, 작가는 친절하게 다 설명해주지 않는다.
하지만 작가의 세계관이 마냥 어렵게만 느껴지던 젊은 때와는 조금 다르게 이해가 되는 부분도 있었다.
누구나 나이를 먹으며 보편적이지는 않아도 스스로 깨닫는 시공간의 개념이 생긴다. 나에게도 그런 개념이 생긴 지몇 년 되지 않았다.
소설에선 시곗바늘이 없는 시계가 나온다. 내가 최근 깨달은 바로는 애초에 시간은 없다. 움직임, 그저 지구와 우주의 운동이 있을 뿐이고, 시간은 그 운동을 측정해 주기 위해 고안된 것일 뿐이다.
우리는 시간이 가고 달이 가고 해가 가고 나이를 먹어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움직임 때문에 몸이 닳는 것이다. 그렇게늙는 것이다. 이것이 시간에 대해 내가 내린 결론이다.
무언가 인생의 의미를 따지자면, 방금 지나가버린 과거도 의미가 없고, 다가오지 않은 나중의 시간도 의미가 없다. 지금 찰나의 시간만이 인생이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게진짜 나인지 과거의 나인지 미래의 나인지 나도 헷갈린다.
나도 나의 인생을 명확히 알고 살지 못하는데, 무라카미 하루키의 생각을 알 수 있을까?
여전히 어려운 숙제이고, 올해 노벨문학상은 좀 더 현실적인 글을 쓰는 작가에게 돌아가는 게 어떨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