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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콤불닭순한맛 Aug 16. 2022

무비토크 #10. 스틸 라이프

드라마, 영국/이탈리아, 2014 개봉, 감독:우베르토 파솔리니


죽음을 주제로 하는 영화는 많고도 많지만 

이렇게 담담하게 생과 사의 경계를 표현한 영화는 드물다고 생각된다. 극적인 서사나 드라마틱한 사건의 발생 없이 이토록 잔잔하게 스며드는 영화는 오랜만이다.


2014년. 꽤 예전에 개봉한 영화이지만 의외로 주변에 이 영화를 많이 본 사람이 없는 것 같아 추천해 본다. 

일단 이 영화의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주인공 존 메이(에디 마산)의 규칙적이고 정돈된 일상과 차분함을 넘어 무서울 정도로 고요한 그의 품성을 무채색의 톤으로 표현한 점이다. 


매일 같은 복장에 같은 가방, 같은 식사 메뉴와 같은 출퇴근 동선, 늘 정돈되고 각 잡힌 데스크의 키보드, 파일철, 문구류까지. 어쩌면 무심하거나 초연한 듯 보이는 그의 이런 반듯한 성품은 단조로운 그의 생활 속 무채색과 닮아있을 뿐만 아니라, 망자를 보내는 일을 하는 그의 직업과도 매우 닮아 보인다. 


존 메이의 매일의 식단, 빵 한 조각, 커피, 참치캔, 사과 한 개 


44세의 그는 런던 케딩턴 구청 소속 공무원으로서 고독사 한 사람들의 가족을 찾고, 무연고자의 장례를 치러주는 업무를 22년째 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단순히 어떤 직업의식으로 일을 처리하는 것을 넘어 자신이 맡았던 수많은 망자들의 마지막 길을 위해 진심으로 추도하고, 그들을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가 기울이는 노력은 애써 쥐어짜는 느낌이 없다. 오히려 그의 하루하루는 수도사나 성직자와 비슷한 느낌을 주는데, 망자들을 위한 추도의 노력은 그의 일상에 묻어있다. 

  


누군가의 죽음으로부터 자신의 일상이 시작되는 업을 가진 사람들의 마음가짐은 어떨까? 

한 번도 생각지 않은 질문이고 짐작조차 할 수 없는 대답이지만 이 영화를 통해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김없이 홀로 죽은 누군가의 소식을 듣고 달려간 곳은 존이 살던 빌라 맞은편 집이다. 매일 창을 마주 보고 지내던 집에 살고 있던 사람이 무연고로 죽었다는 사실에 조금은 착잡해진다. 그를 위해 존은 그의 집에서 발견한 여러 가지 단서를 찾아 그의 직장 동료, 전처, 딸을 찾아 나서게 되는데, 바로 그날 새로 온 직장 상사에 의해 그는 해고 통보를 받게 된다. 새로운 상사는 그의 업무 방식이 비효율적이며, 아무도 찾아오는 이 없는 무연고 망자를 위해 기울이는 시간적 노력과 매장을 위한 노력들이 모두 낭비라고 생각한다. 


삶의 마지막 절차에 대해 기울이는 그의 지나친 섬세함과 성실함이 자본주의 논리에서는 비효율적, 비생산적인 행위로 폄하되어 버린 점이 참 씁쓸하기도 하고, 산 사람들과 죽은 사람들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존 메이는 도대체 어느 경계에 있는 사람인지 알 수 없어지기도 했다. 


해고를 당했지만, 그는 자신의 마지막 고인이 된 빌리 스토크의 마지막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 하며, 결국 그의 딸을 찾아내고 장례식에 오도록 설득하는 데 성공한다. 그녀 또한 존의 따뜻한 마음에 감명하며 그와의 데이트 약속을 잡게 되는데... 

  


꼭 이렇게 섣부른 행복 뒤에 불행이 쫓아오는 건 불변의 법칙인가? 


무채색인 존의 일상에는 위 한 컷의 씬에서 극명하게 보여 주 듯 파스텔톤의 핑크와 블루의 매칭처럼 산뜻한 봄바람이 불어왔다. 행복이 시작되려 하는 그 순간, 그동안 너무나 과도하게 잔잔해서 어느 순간 존이 죽어버리지는 않을까 하는 조용한 공포감이 현실이 되어버린다.




죽음은 삶의 일부로 보아야 할 것인가.

아니면 생과 분리된 영역 너머로 규정되어야 할 것인가. 


죽음을 기점으로 그 이후에 대해서는 그 어떤 것도 우리는 알 수 없기 때문에,

심지어 무엇이 있다, 없다고도 볼 수 없기 때문에

미지의 세계에 문을 열고 들어가는 각양각색의 인간의 마지막 모습들은 섬뜩할 정도로 태연하기도 하고, 갑작스럽기도, 슬프기도, 편안하기도, 고통스럽기도 하다. 


사람들의 마지막을 배웅하던 존 메이. 그의 마지막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슬펐을까? 고통스러웠을까? 아니면 편안했을까? 아쉬웠을까? 


'중이 제 머리는 못 깎는다'라고 했던가. 

누구도 찾지 않아 고독사 한 독거인들의 장례를 위해 22년간 성실하게 온 마음을 다 했던 위대한 공무원은 결국 산 사람이 아닌 그가 배웅해줬던 수많은 망자들의 애도 속에 땅에 묻혔다. 


그의 마지막을 보며, 나의 마지막을 생각한다. 

나의 죽음의 모습은 과연 어떤 것일까?


태어난 모든 인간은 죽음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나 역시도 그 길의 한가운데쯤 일지, 아직 많은 날이 있을지, 거의 다 왔는지 모르겠지만

그 마지막 순간에 회한이 아닌 편안한 마음으로 살짝 미소를 머금으며 눈 감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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