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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콤불닭순한맛 Oct 03. 2022

읽고쓰다 #9. 작별인사

인간이란 무엇인가? 휴머노이드를 통해 인간을 찾다.


살인자의 기억법 이후 9년 만의 신작.

그동안 김영하 작가님 신작은 언제쯤이나 나오려나... 목이 빠져라 기다려 온 세월이 무려 9년이라니.

너무하셨어. ㅜㅜ


'작별인사' 신작 공개를 인스타로 접한 나는 주저할 것도 없이 바로 주문을 했고 벌써 작품을 읽는지는 꽤나 되었는데 이 복잡한 감상을 어떻게 글로 남겨야 할지 모르겠어서 머뭇거리다 개천절 연휴를 빌어 책을 다시 잡아들고 읽어 내렸다.


평소 미래의 세계관을 기반으로 펼쳐지는 SF영화 내지는 판타지 소설들은 딱히 내 취향이 아니라서 즐겨보지 않았는데 최근 들어 AI 로봇이나 휴머노이드, 가상현실을 소재로 한 영화나 드라마, 책들이 급증하는 것을 보며 ‘이런 세상이 머지않아 우리의 일상이 될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든다.


조금 놀랍지만 제목만 보아서는 전혀 미래지향적인 내용으로 보이지 않는 김 작가님의 '작별인사'도 지구상에 더 이상 '인간'이라는 종이 사라진 먼 미래 세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언젠가 이런 영화나 책들의 카테고리가 SF가 아니라 다큐멘터리 혹은 리얼리티로 바뀌는 세상이 올까?


이미 일정 부분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는 각종 인공지능 가전부터 앱과 연동되는 모든 것들이 매우 깊숙이 침투해 있다. 가정용 로봇, 상업용 로봇, 자율주행 자동차, 스마트 컨트롤 AIQ, 가상 화폐, 메타 버스 등이 바로 그것이다.


미래의 인간은 현재의 기술 수준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고도화된 인공지능에 완전히 의존하며 살게 되지는 않을까?

우리 인간은 과연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지 않는 최적의 임계치를 넘지 않는 수준에서 스스로의 욕망을 제한하며 과학기술을 발전시킬 수 있을까?

더 높은 곳으로 가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을 인간 스스로 제한할 수 있을까?


나도 모르게 줄줄  내려가게 되는 이러한 질문들은 가만히 생각해보니 불현듯 떠오르는 질문들이 아니다.

SF 절대 좋아하지 않았던 내가 이를테면 매드 맥스, , 엑스 마키나와 같은 자기 파멸적인 영화를 보고  이후 미래에 대한 막연한 기대와 두려움 속에 감상처럼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던 질문들이었던 것 같다.

  

더불어 이러한 세상이 도래했을 때 인간이 마주해야 할 도덕적인 갈등과 예상치 못한 사회적 위험성, 그리고 이것들로 말미암아 등장하게 될 사회의 각종 혼란을 줄이기 위해 미리 준비해야 할 사회 제도나 사법 체계의 변화에 대한 준비 태세를 어느 정도 키워 두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이 일기도 한다.

(늘 이 세상은 무슨 일이 터져야 그때부터 준비를 겨우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작가는 아직은 요원한 미래의 어떤 날들을 이러한 상상력을 동원해서 그려 놓고 아직 도래하지 않은 세상의 위험을 다양한 버전과 다양한 형태로 미리 경고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 사람이 아닐까?

물론 김영하 작가님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해석한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조금이나마 미래에 대한 경각심을 얻고 현실의 나를 각성하는 시간을 가졌다면 그 또한 의미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사설이 길었다.

그만큼 이 책을 읽고 난 다음에는 폭발적으로 뻗어 나오는 답도 없는 질문의 향연 때문에 아직도 글을 제대로 정선해서 쓸 수가 없다.

 


<작별 인사>는 자신이 인간인 줄 알고 살아온
휴머노이드 인공지능 로봇 '철이'의 인생을 다룬 책이다.



Next Generation

늘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을 보며 그들이 성인이 된 미래의 세상은 어떨 것인지 생각한다.

이 글에 등장하는 주인공 철이. 또한

미래의 우리 아이들과 함께 살아갈 수도 있을 존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니 책에 쉽게 몰입할 수 있었다.

나름 두께가 꽤 되는 책인데

단숨에 읽었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한줄평 소감:

 

<작별인사>는 휴머노이드로부터 발견한 인간에 관한 이야기이다.



다소 관념적인 내용이 많았지만

나름 철학을 공부해서인지는 몰라도

선이가 가지고 있는 인간 세계의 관념과 달마가 가지고 있는 세계관의 충돌 부분이 매우 흥미로웠다.

인문학 책도 아닌데  번이고 다시 곱씹고 싶은 구절이 많아 인덱스로 표시해  페이지가 많다.

 

그만큼 이 책은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몰랐던,

인간이면서도 인간에 대해  몰랐던 근본적인 물음들을 3 기계의 , 휴머노이드의 눈으로 낱낱이 파헤친다.





선이의 예상대로 제한 송전마저 중단되었다. 암흑의 수용소는 혼돈 속으로 빠져들었다. 에너지 레벨이 바닥에 가까워진 전투용 휴머노이드들은 눈에 띄게 초조해하기 시작했다. 다가올 '죽음'을 예감하고 기계답지 않게 감정적으로 행동하던 그 전투용 휴머노이드들의 모습에 강한 흥미를 느꼈던 기억이 난다. … 그것은 인간이 심한 굶주림이나 갈증으로 위기감을 느낄 때와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시야는 좁아지고, 마음은 급해지며, 극단적으로 이기적인 행동을 한다. 언젠가 나는, 인간 이외의 동물들은 누군가에게 공격을 당하지 않는 이상 담담하게 죽음을 받아들인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동물은 죽음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기에, 다만 자기의 기력이 쇠진해짐을 느끼고 그것에 조금씩 적응해가다가 어느 순간 조용히 잠이 들 듯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어간다고 한다. 그러나 다른 종과는 달리 인간만은 죽음을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기에, 죽음 이후도 필요 이상으로 두려워한다. … 설계자들이 휴머노이드에게 죽음에 대한 공포라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요소를 프로그래밍한 것은 단지 그것들이 더 잘, 문제없이 오래 작동하기를 바라는 의도에서였지만, 그 결과로 이들은 궁지에 몰린 인간들처럼 잔인하고 무정하게 자기 생존을 도모하는 데에만 몰두하게 되었고, 그럴 때 그들은 인간보다 더 인간적이 되었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어쩌면 이들도 인간이 심어놓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말미암아 신까지 믿게 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 생각했다. 저토록 삶에 집착하며 죽음을 피하고자 한다면, 어째서 그들이 사후 세계를 약속하는 초월적 존재에 대한 믿음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라 단언할 수 있겠는가.(p.105-107)

재미있는 상상을 펼치게 되는 구절이다.

인간보다 더 인간 같은 휴머노이드들이 죽음에 대한 공포와 필멸의 두려움, 삶에 대한 집착으로 종교를 믿는 세상. 내세에서의 삶의 태도가 사후에 영향을 미친다는 종교 윤리, 혹은 다시 태어날 것이라는 윤회 사상을 믿는 사이보그들.

더 이상 지구에 인간은 없지만 인간 사회와 같은 도덕과 규범, 종교 속에서 살아가는 로봇들의 세상.

역설적이면서도 너무 그럴듯하다. 인간의 습성을 그대로 옮겨놓은 이들은 유기체가 아닌 인공 회로와 수족을 달아 둔 분명한 로봇이지만 과연 인간과 다르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역으로 인간의 형체를 하고 있지만 인간이라고 과연 말할  있는가? 하는 철이의 생각을 덧붙여본다.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팔, 다리, 뇌의 일부 혹은 전체, 심장이나 폐를 인공 기기로 교체한 사람을 여전히 인간이라 부를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나는 인류가 이미 20세기 후반부터 이런 의문들을 품어왔다는 것을 고전 SF 영화나 소설 등을 보면서 어렴풋이 짐작하고는 있었다. 하지만 그게 내 문제가 될 거라고는 생각해보지 못했다. 내가 완벽하게 기계의 흉내를 내고, 그러다 언젠가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어떤 것들, 예를 들어 윤리 같은 것들, 그런 것들을 다 저버린 채 냉혹하고 무정한 존재로 살아가게 될 때, 비록 내 몸속에 붉은 피가 흐르고, 두개골 안에 뇌수가 들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대로 인간일 수 있는 것일까? (p.69)

 

'나'는 어디까지가 '나'일까?

"어디까지가 '나'라고 할 수 있는 거야? 네가 고모라고 불렀던 그 여자는 너의 장기를 이식할 생각이었잖아? 애당초 클론은 그런 목적으로 생산되는 경우도 많았다면서? 그럼 말이야. 예를 들어 새로운 몸을 가지고 다시 태어날 민이는 예전의 그 민이일까?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나'는 어디까지 '나'일까? 팔도 교체할 수 있고, 다리도 교체할 수 있고, 몸의 모든 부품을 교체할 수 있다면, 그 부분들은 '나'가 아닌 거잖아. 그게 없어도 나는 나일까?"

"그렇지 뇌가 그 경계일 거야. 의식은 거기서 생겨나니까."

"그런데 어떤 사건으로 기억을 모두 잃기도 하고, 사상이나 가치관이 완전히 뒤바뀌기도 하잖아. 또 약물에 중독되어 전혀 다른 사람처럼 되어버리는 경우도 있고. 그런데도 그것은 그대로 나일까? 나일 수 있을까? 언젠가 내가 그런 일을 겪어 너를 전혀 알아보지 못한다거나, 모습마저 예전과 완전히 다르다면 너는 나를 철이라고 생각하게 될까? 혹은 좀비라도 되어서 너를 미친 듯이 죽이려 든다면? … 의식이라는 건 쉽게 변하잖아. 안 그래?"

 

몸의 중요성. 신체에 대한 자각

일종의 순수한 의식으로 살아간다는 게 어떤 것인지 나는 짐작하지 못했다. 몸만 없을 뿐, 별 차이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몸 없이 정신만 있다는 것은 너무나 이상한 경험이었다. 마치 잠깐 동안 하겠다고 시작한 명상이 끝도 없이 계속되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이제 명상을 끝내고 뭔가 다른 것을 하고 싶지만 몸이 없기 때문에 다시 생각으로 돌아오지 않으면 안 되었다. 무슨 생각이 떠오르든 그 생각을 실행할 방법이 없었고, 그러자 생각을 계속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 울적해졌다. 생각, 생각, 생각. 생각에서 벗어날 방법이 전혀 없었다.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도 생각이었다.

막상 몸이 사라지고 나니 그동안 얼마나 많은 것을 몸으로 해왔는가 새삼 깨닫게 되었다. 몸 없이는 감정다운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볼에 스치는 부드러운 바람이 없고, 붉게 물든 장엄한 노을도 볼 수가 없고, 손에 와닿는 부드러운 고양이 털의 감촉도 느낄 수가 없는 것이다. 몸이 지칠 때 나의 정신은 휴식할 수 있었다. 팔과 다리가 쉴 새 없이 움직일 때, 비로소 생각들을 멈출 수 있었다는 것을 몸이 없어지고서야 깨닫게 된 것이다.


생의 유한성으로부터 얻게 되는 일상의 감흥들

죽음이 인간에게 주는 절실함

나의 의식이 인공지능 네트워크의 일부가 되고, 내가 원하기만 하면 영생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 나는 스스로를 인간이라고 여기고 있을 때 즐기던 것들에 흥미를 잃어갔다. 더 이상 소설을 읽지 않고 영화를 보지 않았다. 그것들은 모두 필멸하는 인간들을 위한 송가였다. 생의 유한성이라는 배음이 깔려 있지 않다면 감동도 감흥도 없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생이 한 번뿐이기 때문에 인간들에게는 모든 것이 절실했던 것이다. 이야기는 한 번 밖에 살 수 없는 삶을 수백 배, 수천 배로 증폭시켜주는 놀라운 장치로 '살 수도 있었던 삶'을 상상 속에서 살아보게 해 주었다. 그러니 필멸하지 않을 나로서는 점점 흥미가 떨어졌던 것이다.




네트워크 상에서 의식으로 떠돌아다니던 철이는 오래도록 선이를 찾아다녔고, 달마에 의해 새로운 몸을 얻게 되었다. 늙어버린 클론 선이의 마지막을 지켜주던 철이. 그리고 그녀의 임종을 맞이할 때 그 둘을 묘사한 부분은 인생의 황혼을 담담하게 맞이하는 인간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이 느껴졌다.


선이가 살던 동네에서 다소 충격적인 방식으로 철이도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하는데,

인간을 인간으로 규정하는 '의식'과 '기억'을 잃지 않기 위해 인간도 아닌 주제에 휴머노이드 철이는 '영생으로서의 구조'가 아닌 자발적인 '죽음'을 택한다.

인간이 아닌 휴머노이드가 인간의 방식을 택했다는 점에서 참으로 인간적인 결말이 아닐 수 없다.


모순적이지만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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