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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 Oct 17. 2024

받아치는 여자 받아주는 여자 2

영수와 현숙의 아웃렛 방문

          

영수와 현숙 아웃렛 방문     

오늘은 현숙과 오랜만에 아웃렛에서 데이트를 하기로 한 날이다. 

주말이라서 가는 길이 많이 막히지 않을까 염려가 되기는 하지만 그래도 차 안에서 음악을 들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가면 지루하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영수가 필요한 옷이나 다른 상품이 있는 건 아니지만 쇼핑을 좋아하는 현숙을 위해서 아웃렛에서 구경도 하고 점심식사도 푸드 코트에서 먹을 계획이다. 최근 백화점도 그렇지만 아웃렛도 고객 유치를 위한 마케팅 전략의 일환으로 유명한 맛 집들을 신규로 대거 유치하여 운영하고 있어 평소 블로그를 통해 가고 싶었던 맛 집 두 군데를 목록에 올려두고 현숙을 데리러 차를 운전하고 간다.   


화창한 4월이라서 옷차림은 시원하고 깔끔한 느낌으로 화이트 이너웨어 위에 스카이 블루 긴팔 마 셔츠를 입고 바지는 화이트 바지다. 

여유 있게 출발했고 길이 막히지 않아 약속시간인 11시보다 20분 일찍 현숙의 집 근처 약속장소에 도착한 영수는 기다리며 어제저녁에 드라이브 중 들으려고 준비한 음악 플레이 리스트를 체크한다. 

음악을 들으며 한참을 기다리고 있으니 약속시간 10분이 지나서 현숙이 노란색 브이넥 티셔츠에 옅은 주황색 바지를 입고 빠른 걸음으로 온다. 

“많이 기다렸지. 나오는데 엄마가 어제 온 우편물을 찾아달라고 해서 늦었어. 미안해.” 현숙이 늦지 않으려고 노력했다는 듯이 숨을 조금 헐떡이며 얘기한다. 

“아냐, 나도 방금 도착했어.” 영수는 데이트를 기분 좋게 시작하고 싶어서 오래 기다린 내색을 하지 않는다. 사실 영수가 예상보다 일찍 도착한 거지 현숙이 많이 늦은 건 아니다. 

“오늘 현숙 씨 옷 입은 것을 보니 완전 봄이 느껴지네.” 영수는 현숙의 옷차림을 칭찬한다. 

“영수 씨도 오늘 패션 내 마음에 들어. 센스 있게 입었어.” 현숙도 영수를 칭찬해 준다. 

“더 길이 막히기 전에 얼른 출발하자. 네비를 보니 지금 출발하면 1시간 20분 걸려.” 현숙이 차에 타자 영수는 네비를 통해 가는 길을 다시 한번 점검한 후 출발한다. 

상습 정체구간을 시속 20Km 정도로 지나고 나서야 제대로 고속도로를 탔는데 그래도 법적허용 최고속도는커녕 50Km 이하로 달릴 수밖에 없다. 

영수는 도로가 막혀서 짜증이 나지만 현숙이 있어 애써 참으며 음악을 튼다. 플레이 리스트는 그동안 현숙이 대화 중에 좋아한다고 언급했던 곡들로 채웠다. 창문을 닫고 달리는 차 안에 음악이 흐르자 바깥의 도로 정체를 조금은 잊을 수 있다. 

“어, 내가 좋아하는 곡들이네. 영수 씨 좋아하는 노래가 나와 비슷한가 봐.” 현숙은 평소에 자기가 얘기한 것을 모르고 영수와 음악 취향이 통한다는 생각에 기분 좋아한다. 

영수는 그런 현숙을 보며 평소에 현숙이 좋아한다는 곡들을 기억해서 오늘 준비해 온 자신의 센스에 스스로 칭찬한다. 준비한 플레이 리스트를 전곡 다 들었을 때쯤 아웃렛에 도착한다. 

주말이라서 방문객이 많은지 주차장도 빈자리가 많이 없어 지하 3층까지 가서 겨우 주차한다. 주차를 마치고 차에서 내려 시계를 보니 어느새 12시 50분이다. 영수는 어제저녁에 친구들과 술 한 잔 한 후 오늘 아침에 늦게 일어나 아무것도 못 먹고 나와서 배가 많이 고프다. 이제 푸드 코트에 가서 점심을 맛있게 먹고  현숙과 느긋하게 구경하면 화창한 봄날의 오후 데이트는 즐거운 시간이 될 것이다.      

“길이 막혀서 차 타고 온다고 힘들었지? 어서 점심 먹으러 가자.” 영수가 3층 푸드 코트로 현숙을 재촉한다. 

“어? 아웃렛 왔는데 옷 구경 안 하고 밥부터 먹자고?” 현숙은 눈앞에 옷가게들이 즐비한데 한 군데도 방문하지 않고 밥부터 먹자는 영수를 이상하다는 듯이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본다. 

“어? 나는 밥부터 먹고 여유 있게 보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영수는 배가 고파서 밥부터 먹자고 하는 게 왠지 부끄러워 강하게 의견을 밀어붙이지 못한다. 

“그래도 아웃렛 왔는데 옷가게부터 먼저 들러주는 게 예의 아니야? 한두 군데만 가볍게 구경하고 밥 먹자.” 현숙이 한두 군데만 구경한다는 데 그걸 거절하기는 힘들다. 

“그래, 그렇게 하자.” 영수는 바로 식당에 가려고 생각하여서인지 갑자기 배가 더욱 고파졌지만 내색은 하지 못하고 마지못해 벌써 저만큼 앞서가는 현숙의 뒤를 따른다. 


“영수 씨! 이 가게 들어가 보자. 봄여름 상품들이 많이 나와 있네. 색상들이 화사하고 디자인도 다 예쁘다.” 첫 번째 가게에 들어가니 따뜻해진 날씨에 맞춰 화려한 색상과 과감한 디자인의 옷들이 눈길을 끈다. 

현숙은 잔뜩 신이 나서 이리저리 살피느라 눈이 바쁘다. 행거에 걸린 옷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던 현숙은 민트 그린색 원피스를 고르더니 사이즈가 맞는지 확인한다. 

그때 가게 판매원이 달려와서 현숙에게 사이즈를 물어보고 옷을 직접 골라 입어보라고 권한다. 

현숙은 바로 피팅룸에 가서 옷을 갈아입고 나오는데 마음에 드는지 행복한 표정이다. “영수 씨, 이 옷 어때? 예쁘지? 나한테 어울려?” 빠르게 물어본다. “응, 예뻐. 어울려.” 밥부터 먹고 싶은 영수는 정해진 답을 건성으로 한다. 

현숙은 영수의 조금은 김 빠진 반응에 실망한듯하더니 ‘현숙을 위한 옷 같다’는 판매원의 칭찬에 다시 기분이 좋아진다. 

제품의 재고가 많이 없어 현숙의 사이즈 옷은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며 지금 구입하라는 판매원의 말에 잠시 망설이던 현숙은 그래도 첫 가게에서 바로 구매하기는 싫었는지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옷을 벗어 걸어두고 가게를 나온다. 


“마음에 드는 옷도 골랐으니 이제 점심 먹으러 가자.” 영수는 점점 더 배가 고파지고 사실 쇼핑에는 처음부터 관심이 별로 없어서 출발 전에 블로그로 살펴본 돈가스집과 태국음식점 중 어디를 갈까 하는 생각뿐이다. 

“이제 한 군데밖에 안 봤는데 한 가게만 더 가보고 밥 먹자. 저기 건너편 가게에 가보자.” 현숙은 언제 어디서나 먹을 수 있는 밥보다는 예쁜 옷들이 가득한 아웃렛을 방문하면 당연히 쇼핑이 먼저라고 생각한다. 

성큼성큼 걸어 가게로 들어가는 현숙을 영수는 할 수 없이 뒤따라 들어간다. 현숙은 마치 첫 가게에 들어간 것처럼 행거에 걸린 옷들을 꼼꼼하게 한참을 살펴보더니 이전 가게에서 본 것과 비슷해 보이는 원피스를 골라 들고 영수에게 물어본다. 

“이 원피스 어때? 아까 본 옷과 비교하면 어떤 게 더 예뻐?” 

“어, 예뻐. 그런데 똑같은 옷 아냐?” 영수는 메이커만 다르지 색깔도 디자인도 똑같아 보여 무슨 옷이 더 예쁜지 답을 할 수가 없어 당황한다. 

“무슨 얘기야. 정말 다르지. 색상도 아까 옷은 민트 그린, 이 옷은 브라이트 그린이고 칼라 디자인도 전혀 다른데.” 현숙은 두 옷을 제대로 구별하지 못하는 영수가 이해되지 않는다. 

“영수 씨, 빨리 밥 먹으러 가려고 내 옷에 관심이 너무 없는 거 아냐?” 현숙이 섭섭하다는 듯이 얘기한다. 

배가 많이 고파서 이제 다른 것은 관심이 떨어지긴 하지만 그래도 참으며 따라다닌 영수는 그런 얘기를 들으니 조금 화가 난다. 

“관심이 없는 게 아니고 내 눈에는 정말 그게 그거 같아서 그래. 그리고 이제 두 군데 봤으니까 밥 먹으러 가자. 벌써 2시가 다됐어.” 영수도 이제 참기가 힘들어진다. 

“알았어. 그런데 왜 짜증을 내고 그래. 가게 두 군데 보고 점심 먹기로 했잖아.” 현숙이 정색을 하며 따진다. 

옷을 사러 갈 때 처음 간 가게에 맞는 사이즈와 원하는 색상의 옷이 가격만 적당하면 대개의 경우 그 가게에서 그 옷을 구매함으로써 쇼핑이 끝나는 영수는 ‘두 군데 가게를 방문하는데 이렇게 시간이 오래 걸릴 줄은 몰랐어. 이럴 줄 알았으며 밥부터 먼저 먹자고 밀어붙일걸 그랬어.’ 하는 말을 속으로 삼킨다. “그래 밥 먹으러 가자. 뭐 먹을 거야?” 현숙이 양보하듯이 밥을 먹으러 가자고 한다. 

영수도 더 이상 이 문제로 다투기는 싫어서 화제를 점심 메뉴로 돌린다. 출발 전에 미리 검색해 둔 돈가스집과 태국음식점을 폰으로 보여주며 현숙에게 선택하라고 한다. 

현숙은 영수의 폰을 받아 블로그 평을 잠시 살펴보더니 “오늘은 두 군데 다 별로야. 한참 걸었더니 더운데 시원한 평양냉면 먹으러 가자.” 한다. 

스무 군데가 넘는 아웃렛 식당들을 전부 살펴보고 그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식당 두 군대를 심사숙고해서 고른 영수는 김이 샌다. 그렇지만 점심 메뉴로 현숙과 실랑이하는 것은 배려심이 없고 까다롭게 보일까 봐 영수는 같이 냉면을 먹으러 간다.      

유명한 냉면집을 어렵게 입점시켰다고 아웃렛에서 선전을 많이 하여서인지 가게는 웨이팅이 많아 대기번호 12번을 뽑고 한참을 기다려 마침내 자리에 앉아 주문을 할 수 있다. 식당에서 기다리면서 영수는 더욱 배가 고파졌는데 다행히 주문한 평양냉면은 금방 나온다. 동네에서 먹는 냉면보다 양이 적어 보이는데 급하게 다섯 젓가락을 먹고 육수를 마시니 냉면 그릇이 바닥을 보인다. 고개를 들어 현숙을 보니 아직 반도 안 먹었다. 더 이상 먹을 게 없는 영수는 급하게 주문하느라 만두를 같이 시키지 않은 것을 후회하지만 이미 늦었다. 

달리 할 일이 없어 영수는 폰을 보며 현숙이 다 먹을 때까지 기다리는데 이런 영수를 보는 현숙의 표정이 좋지 않다. 영수는 돈가스나 밥 종류를 먹고 싶었는데 양도 적게 나온 냉면을 먹어 포만감이 느껴지지 않는데 현숙은 먹고 싶다던 냉면을 반쯤 남기더니 젓가락을 놓는다. 

“어, 다 안 먹어? 양도 얼마 안 되는데 그걸 남기네.” 영수가 면이 많이 남은 냉면 그릇을 보며 얘기하자 현숙이 “됐어. 그만 먹을래. 배 불러.” 하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영수는 현숙이 먹는 거보다는 쇼핑에 더 마음이 끌린다 생각하고 얼른 일어나 현숙을 뒤따른다.      

“이제 어디로 갈까? 생각해 둔 가게 있어?” 영수가 물으니 “아냐. 그만 집에 가자. 길 막히기 전에 그만 돌아가자.” 한다. 

“뭐? 쇼핑하기로 했잖아. 왜 그래?” 영수는 당황한다. 

“아냐, 그냥 가자. 영수 씨도 쇼핑에 관심 없고 나도 쇼핑할 기분 아니야.” 황당해하는 영수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현숙은 벌써 주차장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영수는 현숙을 막아서며 “아까 점심 먹고 제대로 쇼핑하기로 했잖아. 막힌 도로를 한 시간 반 걸려 운전해서 왔는데 벌써 가자고?” 영수는 볼멘소리가 저절로 나온다. 

“영수 씨는 힘들게 운전해서 온 게 아까운 거지? 그렇지만 쇼핑은 기분 좋게 해야 하는데 오늘은 영 아니야. 미안하지만 그만 갔으면 좋겠어.” 현숙은 마음을 굳힌 듯하다. 

현숙이 이렇게까지 단호하게 나오면 어떠한 설득도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상 아는 영수는 포기하고 그만 집으로 돌아가기로 한다. 

주차장으로 와 차에 탑승하며 “아까 봤던 옷 마음에 들어 했는데 안 사도 돼? 그 가게라도 다시 가볼까?” 하자 “아냐, 오늘은 됐어. 며칠 내로 친구랑 다시 올 거야.” 한다. 

현숙이 이렇게까지 얘기하니 영수도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져서 말없이 시동을 걸고 출발한다. 돌아오는 길도 여전히 막히지만 그보다 오늘 일정이 엉망이 된 게 더 힘이 빠진다. 

길은 막히고 현숙은 창밖을 바라보며 별 얘기를 하지 않아 차 안은 어색한 공기만 흐른다. 영수는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음악을 켜는데 현숙이 조용하게 가고 싶다고 잠시 음악을 꺼달라고 하여 현숙의 집 근처에 도착할 때까지 대화도 음악도 없이 침묵 속에서 운전을 하고 온다. 

“운전하느라 수고했어. 잘 가. 가서 쉬어.” 현숙이 인사를 하고 서둘러 집으로 가려한다. 

“응, 현숙 씨도 수고했어. 잘 가.” 영수도 차에서 내리지 않고 인사를 하고 현숙이 돌아서 집으로 향하자 차를 돌려 출발한다.     

쇼핑을 좋아하는 현숙을 위해 길이 막 할 것을 감수하고 장시간 운전하여 일부러 아웃렛을 갔는데 냉면만 먹고 온 셈이다. 

오늘 데이트를 준비하며, 그리고 아웃렛에 도착할 때까지만 해도 즐거운 시간들을 많이 상상했었는데 이렇게 이른 시간에 감정이 상한 채로 집으로 가게 될 줄은 몰랐다. 

‘배가 고파도 참고 현숙이 밥을 먹자고 할 때까지 옷 구경을 더 오랫동안 하게 했어야 했나? 냉면도 배고프다고 급하게 먹지 않고 현숙의 속도에 맞춰 먹었어야 했나?’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릿속에 떠오르지만 영수는 지키고 피곤하여 내일 다시 생각해 보기로 하고 오늘은 그만 집에 가서 쉬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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