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나의 진심, 그것이면 충분하다

by 야옹이


우리는 종종 말한다.
"있는 그대로 보고 싶다"고.
그러나 그 말에는 이미 모순이 숨어 있다.
나는 '있는 그대로'라는 상태를 본 적이 없다.
내가 보는 세상은 항상 ‘나의 필터’를 통과한 결과일 뿐이다.

생각해보면 모든 인식은 나의 경험, 상처, 기대,

감정의 색깔이 덧입혀진 이미지다.
나는 사물을 사실로 보지 않고, 믿는 대로 본다.
그러니 결국 ‘있는 그대로’ 본다는 말은
‘믿고 싶은 대로 본다’는 말에 가까워진다.

사람 간의 관계는 더욱 어렵다.
상대방도 자기 자신을 온전히 보지 못한 채 살아간다.
그러니 나는 ‘상대가 이해하는 자기를’,

내가 이해한 방식으로’ 받아들일 뿐이다.
이중의 왜곡, 겹겹의 해석.
그 사이에 ‘진짜’라는 말은 설 자리를 잃는다.

게다가 우리는 고정된 존재가 아니다.
나도 나를 모른다.
내 기분, 감정, 태도, 신념은 하루에도 몇 번씩 바뀐다.
고정된 나란 없다.
나는 흐르고,
흐르는 동안 잠시 멈춘 나를 스냅사진처럼 포착할 뿐이다.
그리고 그 사진은 이미 과거다.
누군가 나를 안다고 말하는 순간,
그들이 아는 것은 벌써 지나간 나일 것이다.

사물은 변하지 않는다고 믿지만,
우주는 끊임없이 변화한다.
모든 분자와 원자는 진동하고,
존재는 흐름 속에 있다.
그렇기에 정지된 실체란 없다.
그저 인간의 느린 인지 능력이 그것을 고정된 것처럼 느낄 뿐이다.

그렇다면 ‘안다’는 것은 무엇일까.
완벽하게 이해한다는 말은 얼마나 자만한가.
나는 너를 모른다.
너 역시 나를 모른다.
그리고 나도 나를 잘 모른다.
이 사실은 차갑게 느껴지지만,
사실은 여기에서 따뜻함이 시작된다.

알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더 조심스럽게 바라보고,
더 진심으로 대하려 노력한다.

그건 하나의 윤리다.
알 수 없음을 인정한 뒤에도 손을 뻗는 일.
완전한 이해 없이도 서로를 품으려는 노력.
그 진심이야말로 우리가 서로를 알아간다는 증거일 것이다.

나는 오늘도 흐르고 있다.
너도 그러하겠지.
그러니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흐름 속의 한순간,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만큼은 진실되게 만드는 것.
그것이면 충분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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