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TI는 나를 설명해줄까,아니면 나를 가두고 있을까?

by 야옹이


사람들은 자신의 성격을 설명해 주는 단어를 만나면
이상하리만큼 안도한다.


예전에는 사람들을 혈액형으로 나눴고 혈액형이 그 단어 역할을 해줬다.
A형은 소심하다, B형은 자유롭다, O형은 쿨하다, AB형은 특이하다.
그 말도 안 되는 일반화에 우리는 고개를 끄덕이곤 했다.
이해하고 싶은 마음은 늘 있었지만,
조금은 방법이 부족했던 시절의 방식이었다.

그러다 어느새 MBTI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지금은 너도나도 “너 MBTI가 뭐야?”로 시작하는 대화가 자연스럽다.
어떤 이는 농담처럼 즐기고, 어떤 이는 너무 깊이 빠진다.
하지만 그 안에 있는 본질은 단순하다.
우리는 여전히, 사람을 이해하고 싶은 거다.
그리고 이 시대는, 그 욕구에 MBTI라는 이름을 붙여주었을 뿐이다.


“나는 INFP야.”
너는 ESTJ라 그래.”
MBTI를 각자의 정체성처럼 말하고 교환하는 것이

서로를 대변해 주는 것처럼 느껴지고,
때로는 나와 상대의 단점조차 정당화해 주는 변명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이 편안한 구분이
자신을 단단히 규정짓는 틀이 되기도 한다.

"나는 원래 그래."
"나는 그런 스타일이 아니야."
이런 말들은 나를 이해하기 위한 시도라기보다는,
변화하지 않아도 된다는 핑계가 될 수 있다.

MBTI의 시초라 할 수 있는 칼 융은

인간의 성격을 고정된 것으로 보지 않았다.
그는 개별화(Individuation),
즉, 평생에 걸쳐 자신을 발견해 가는 과정을
인간 존재의 본질로 보았다.

그러니 MBTI는
현재 나의 성향을 파악하기 위한 도구일 뿐,
완성된 나를 증명하는 증서는 아니다.

우리는 MBTI를 통해
내가 잘하는 것’뿐 아니라
‘내가 잘 못하는 것’도 자각해야 한다.
그리고 그 약한 부분을 천천히 채워가야 한다.
그래야 한쪽으로만 기운 인간이 아니라,
균형 잡힌 방패형 인간으로 거듭날 수 있다.

예를 들어,
생각이 빠르고 직관에 강한 사람이라면
때로는 신중함과 세심함을 배우려는 노력이 필요하고,
감정에 민감한 사람이라면
논리적 사고를 훈련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MBTI는 '나는 이런 사람입니다'라고 말해주는 것이 아니라,
'나는 여기에서 출발합니다'라는 시작점이어야 한다.

성장은, 나답지 않았던 것들에 익숙해지는 과정이다.
그 낯섦 속에서
우리는 더 단단해지고, 더 유연해진다.

MBTI는 그래서
나를 더 잘 살아가기 위한
지도이자 나침반이지,
영원한 주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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