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어도 괜찮은 존재

by 야옹이


살다 보면
가끔은 이유도 모른 채 울고 싶어질 때가 있다.
문제는 울음이 아니라,
그 울음을 받아줄 누군가가 없다는 사실이다.

아무렇지 않은 척 하루를 버티고,
다 괜찮다고 말하면서
혼자 조용히 무너져야 할 때
문득 깨닫게 된다.

“나는 어디에서 울어도 괜찮은 사람일까.”


그리고 또 하나,
“나는 누구 앞에서 울 수 있는 사람일까.”

세상엔 ‘괜찮은 사람’이 많지 않다.
사실, ‘괜찮지 않은 사람’들이 각자의 역할을 견디며 살아가고 있다.
말을 잘해서가 아니라,
침묵을 잘 견뎌서.
흔들리지 않아서가 아니라,
무너져도 다시 돌아오는 법을 알아서.

그런 사람들이 어딘가에 있다.

그런 존재는 이런 사람이다.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곁에 있으면 울어도 괜찮은 사람.
슬픈 얼굴로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어도
그 자체로 위로가 되는 사람.

그 존재는 우리 안에서 기억된다.
정대만에게 안 감독이 그러했듯.
스스로 무너지지 않기 위해
불량한 모습으로 버텼던 소년이
조용히 눈물을 흘릴 수 있었던 건
“괜찮다”고 말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느껴지는 품이 거기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품이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어떤 삶은 다시 시작될 수 있다.
어떤 마음은 다시 열릴 수 있다.

살면서 그런 존재를 만나는 일은 드물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스스로 그런 존재가 되려 애쓴다.
누군가의 울음을 받아주고,
기댈 곳 없는 사람에게
“여기 있어도 돼”라는 눈빛을 건네고.

하지만 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나도 인간이라는 사실이다.

누군가를 안아줄 수 있는 사람이 되려면
내가 먼저 안겨본 경험이 있어야 한다.
내 울음이 무례하지 않았던 기억.
내 고백이 부담이 되지 않았던 순간.
그 기억이 있어야
누군가의 아픔을 진심으로 받아줄 수 있다.

나는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였다.
그리고 여전히 그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나 역시 울고 싶다.
무너져도 되는 사람이 필요하다.
침묵 속에서도 나를 믿어주는 존재.
힘들다고 말해도 아무것도 무너지지 않을 그런 자리.

지금은 아직 만나지 못했을지 모르지만
그 존재가 세상 어딘가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어떤 하루는 견딜 수 있다.

그리고, 나는 믿는다.
그 존재는 아마,
내가 품어준 어떤 사람의 마음 속에서
조용히 자라고 있을 것이다.

그 사람은, 언젠가 나에게도
이렇게 말해줄 것이다.

“너를 만나기 전과 후는 달라.
마치 B.C와 A.D처럼.”

그 말은 어떤 위로보다 깊다.
어떤 조언보다 온기 있다.
울음을 허락하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
그건 그 어떤 철학보다도
진짜 인간적인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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