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을 끊어낸 결단, 티베트의 향방은?

엄마의 눈으로 읽는 세계

by 왕만보

1995년 티베트에서 6세의 한 소년이 가족과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를 납치한 건 중국 정부였고, 여전히 그의 행방은 오리무중이다.


도대체 그 소년이 누구길래 중국 정부가 납치까지 감행했을까?



티베트를 통제하고자 하는 중국



그의 이름은 게둔 최키 니마, 티베트의 11대 판첸 라마로 지목된 아이다.


티베트의 지도자는 전통적으로 달라이라마였다.


달라이라마가 사망할 시 티베트인들은 윤회사상에 따라 달라이라마의 환생을 찾고, 그 환생을 최종적으로 확인해 주는 역할을 판첸 라마가 맡는다.


반대로 판첸 라마의 환생한 이를 확인해 주는 건 달라이라마로, 그 둘의 상호연계는 티베트의 오랜 전통이자 그들의 종교적 정통성을 대변한다.


게둔 최키 니마는 11대 판첸 라마로 선정된 지 3일 만에 중국 당국에 의해 납치됐다.


그리고 1995년 11월 중국 정부가 금병추첨 제도를 이용해 기얀차인 노르부를 판첸 라마로 임명했다.


기얀차인 노르부는 공산당원의 아들로 중국 측 사람인 데다가, 금병추첨은 청나라가 티베트를 통제하기 위해 도입한 추첨제도로 당시에도 티베트인들의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중국은 통제를 강화하기 위해 종교적 색채가 강한 티베트의 지도자 선정 과정에 개입함으로써 그들의 정통성을 약화시키려 한 것이다.


이는 국제사회에서도 많은 비난을 받았고 3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티베트는 중국 정부에게 게둔 최키 니마의 석방을 요구하고 있다.


중국 측은 게둔 최키 니마가 평범하게 살고 있으며, 방해받고 싶지 않아 한다고 주장한다.



아시아의 물탱크 티베트



중국은 왜 저런 행위까지 벌이면서 티베트를 통제하고자 하는 걸까?


이는 티베트의 전략적 가치 때문이다.


티베트는 인더스강, 브라마푸트라강, 갠지스강, 양쯔강 등 수많은 강의 발원지다.


티베트의 물줄기는 남아시아 수억 명의 생명줄이다.


중국이 이 물을 통제한다는 것은 방글라데시, 인도, 네팔 등 주변국들에 대한 강력한 정치적 압박 수단을 쥐는 것이다.


중국 내에서도 물 부족 문제가 대두되고 있기 때문에 티베트는 더욱 중요하다.


티베트 내에 상당수의 댐이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일대일로의 핵심축



티베트는 중국의 일대일로 프로젝트에서 남아시아로의 진출 경로로 설정되어 있다.


실제로 실크로드가 지나는 길목이었을 만큼 여전히 티베트 지역은 남아시아로 진출하기 위한 통로의 역할을 한다.


현재 중국은 라싸 > 카트만두 > 델리로 이어지는 철도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며, 티베트를 통해 네팔, 부탄, 인도로 이어지는 도로를 확장하고 있다.


그렇기에 군사적 요충지로도 티베트는 가치가 있다.


현재 중국은 인도와 라다크, 아루나찰프라데시 등에서 국경 분쟁을 벌이고 있는데 티베트는 중국의 서쪽 방어선이자 남아시아로의 진출 관문이다.


이에 중국은 티베트 전역에 걸쳐 군사기지를 구축하고 전투기를 배치하는 등 군사적 인프라를 강화하고 있다.


중국이 남아시아로 뻗어 나가는 건 특히 중요한데 현재 중국 원유 수입의 80%가 말라카 해협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말라카해협은 동아시아 국가들의 에너지 수급에 필수적이며, 세계 해상 물동량의 25%가량을 담당한다.


이런 중요한 말라카해협이기에 미국은 싱가포르에 해군 기지를 두고 해상 안보를 책임지고 있다.


만약 중국과 미국 사이에 군사적 충돌이 일어난다면 미국은 말라카해협을 봉쇄할 가능성이 높고 이는 중국이 매우 두려워하는 부분이다.


그렇기에 중국은 말라카해협을 지나지 않는 항구를 개발 중으로, 파키스탄의 과다르항과 미얀마의 짜욱퓨항에서 중국까지 이어지는 경제회랑을 건설하고 있다.


티베트는 이 회랑의 직접적인 통로는 아니지만 남아시아로 넘어가는 교두보로써의 역할과 이 일대의 군사적 영향력을 위해 필수적인 장소이기 때문에 중국은 티베트를 절대로 놓을 수 없다.



중국에 동화되기 어려운 티베트



하지만 티베트의 입장에서도 중국의 병합은 억울하다.


원나라, 청나라 시절 티베트는 속국이긴 했지만 완전히 병합된 상태는 아니었다.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원나라-고려관계와 비슷할 것 같다.


이후 청나라가 망하면서 티베트는 독립해 수십 년간 독립국을 유지해 왔지만 마오쩌둥 시절 강제로 병합당했다.


티베트는 여전히 인도의 다람 살라에 망명 정부를 두고 티베트의 종교적 자유와 자치권 보장을 위해 비폭력 저항을 하고 있다.


현재 티베트의 달라이라마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자치권을 보장해 주면 중국의 통치권을 인정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중국으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이다.


중국은 티베트뿐만 아니라 신장위구르, 내몽골, 홍콩 등의 지역에서 독립과 관련해 여러 문제를 겪고 있어 티베트에 자치권을 부여할 경우 다른 지역에서도 자치권을 요구할 확률이 높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은 티베트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자 본인들이 원하는 사람을 판첸 라마로 세웠다.



달라이라마의 전략



하지만 진짜 문제는 이제 시작이다.


현 14대 달라이라마는 1935년생이다.


달라이라마의 환생을 찾는 일은 판첸 라마의 확인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게둔 최키 니마의 실종으로 그 연결고리가 끊겨버린 것이다.


14대 달라이라마는 다음 후계자가 중국이 아닌 곳에서 환생할 수도 있다고 했는데, 환생한다고 한들 판첸 라마의 확인이 부재한 상황에서 티베트 내에서도 정통성 문제가 제기될 수밖에 없다.


게둔 최키 니마가 나타나면 이 문제가 해결될까?


게둔 최키 니마는 죽었을 가능성이 높고, 설사 죽지 않고 나타난다 해도 30년 넘게 중국 손에 있었는데 그가 어떤 세뇌를 당했을지 알 수 없다.


게다가 중국은 다음 달라이라마 선정도 금병추첨으로 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지금의 티베트는 오랜 전통의 달라이라마 계승문화가 종료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그렇기에 달라이라마는 수백 년 이어온 전통을 끊어내는 결단을 내렸다.


2011년 그는 정치적 권한을 티베트 망명정부에 이양하여 정교분리를 이루어냈다.


이제 티베트 망명정부는 민주적으로 선출된 지도자가 이끄는 정치조직으로 달라이라마의 계승문제와 거리를 두게 됐다.


티베트는 종교색이 강한 곳으로 달라이라마라는 존재가 그들에게 너무도 중요하다.


하지만 지금의 14대 달라이라마와 훗날 지정될 15대 달라이라마는 많이 다를 것이다.


티베트의 방식으로 해도, 중국의 방식으로 해도 달라이라마의 영향력은 티베트 내에서 약해질 가능성이 높다.


아마도 달라이라마는 1995년 판첸 라마가 납치된 이후로 긴 시간 동안 고민 끝에 정교분리라는 답을 내놓은 것 같다.


달라이라마의 결단이 티베트의 운명을 바꿀 수 있을까?


안갯속에 가려진 티베트의 미래는 그의 시간이 끝날 때 그 윤곽을 드러낼 것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독립했지만, 독립 못했습니다 - 방글라데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