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작가가 된 후 나는 웬 종일 글쓰기만 한다. 어린 시절 장난감을 얻은 후 하루 종일 그 장난감을 가지고 놀던 때와 똑같다. 아침에 상쾌한 기분으로 시작해 본지도 꽤 오래된듯한 아침. 내가 사는 시청 부근엔 까마귀가 산다.
내가 눈으로 확인을 한 것만 정확히 두 마리였다. 까마귀가 시청 부근에 자리를 잡은 것은 꽤 오래된듯하다. 나보다 먼저 자리 잡은 터줏대감인듯해 보인다. 아무튼 그 까마귀는 아침이면 깍 깍 깍 거린다. 예부터 가치가 소리를 내면 반가운 소식이 올 것이라고 했고 까마귀가 울면 흉한 소식이 전해진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내가 사는 도시는 잘만 돌아간다.
어느 날, 까마귀가 안 울었다. 창밖을 힐끗힐끗 바라보며 괜히 집 나간 아이가 돌아오지 않은 양 나는 점심 끼니 소식이 올 때까지도 까마귀소식에 귀를 기울였다. 그날 결국 까마귀가 울지 않았다. 매미가 한창 밤늦도록 울던 여름날, 까마귀가 무척 다급한 울음소리를 내며 계속 울어댔다. 한 번은 왼쪽 빌딩 위에서 한 번은 오른쪽 빌딩 위에서 아침에 계속 울어댔다.
나는 문득 오래전 군 근무 시절, GOP 경계 근무를 마치고 새벽 철수를 막 마칠 무렵, 소대장이 오셔서 이 이병! 에이급 복장 갈아입고 내방으로 와라! 소대장은 어깨를 두 번 두드리고는 맨 끝에 있는 소대장실로 들어갔다. 나는 막내 병사였기에 다른 선임들은 큰일이 났구나라는 것을 직감하고는 총기를 반납한 후 나의 준비를 도와주었다.
잠시 후 나는 채비를 마치고 소대장실로 갔을 때 소대장은 내게 아버지의 임종 소식을 전했다. 난 순간 왜!라는 생각과 아마 아닐 겁니다. 아버지는 제가 입대할 때 건강하셨습니다. 라며 소식받기를 거부하는 나를 안아주며 지금 대대장님이 지뿌차를 보냈으니 타고 연대까지 가서 사촌 형님을 만나라고 하셨다.
나는 정신없이 지푸차에 올라타고 연대까지 가는 동안 아무 생각도 나질 않았다. 마치 시간 이동을 하듯 김포공항으로 가서 부산행 티켓을 끊었고 형과 나는 집에 도착했다.
그렇게 까마귀가 양쪽에서 울어대는 것이 혹시 어미 까마귀가 죽은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에 한참 동안 생각에 빠졌다.
그렇게 도착한 후 나는 완장을 차고 군복을 입은 채 기다리던 손님들을 맞았다. 울지 않았다. 그때는 아마 강한 모습을 보이고 싶어서 그랬는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와 이별하지 못한 채 사는 것 같다.
까마귀는 아침나절 부산하게 울다가 잠잠해졌고 나도 장례식을 마치고 부대로 복귀했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내 삶은 온통 뒤죽박죽이 되었고 7년 후 엄마까지 돌아가시며 나는 혼자가 아닌 혼자가 되었다.
그게 벌써 삼십 여전 전이니 참 세월도 빠르게 흘러간다.
브런치를 먹어야겠다는 생각에 아침이 상쾌하다.
냉장고의 있는 것들을 생각하니 피식 웃음이 나온다.
그래도 나는 오늘 브런치 먹으며 오랜만에 상쾌한 아침을 맞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