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내가 그 애를 처음 본 것은 옥교동의 어느 작은 빵집이었다. 가게 안에는 빵 굽는 고소한 냄새가 은은하게 퍼져 있었고, 가을 햇살이 창문을 통해 따뜻하게 들어오고 있었다. 친구는 여자친구를 소개해주겠다며 나를 이끌었고, 호기심 반, 설렘 반으로 따라나섰다. 그때는 일요일만 휴일이었으니, 주말마다 입을 수 있는 사복은 우리에게 조금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평소 교복을 입고 다니다가, 그날만큼은 자신을 조금 다르게 표현할 수 있는 날이었으니까.
나는 시내와 꽤 떨어진 곳에 살고 있었고, 버스를 타고 한 시간 정도를 달려야만 시내에 닿을 수 있었다. 약속 시간에 조금 늦은 탓에 친구와 그의 여자친구는 이미 빵을 먹고 있었고, 그 옆에 앉아 있던 또 한 명의 친구도있었다. 처음 소개를 받았을 때는 긴장이 되었지만, 그녀의 작은 체구와 귀여운 웃음소리가 모든 어색함을 잊게 했다. 경상도 사투리가 섞인 말투로 연신 웃음을 띠며 대화를 이어가던 그녀의 모습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나는 원래 어색한 분위기를 참지 못하는 성격이어서 먼저 분위기를 풀기 위해 소탈하게 말을 걸었다. ‘우리 그냥 말 놓자!’는 나의 제안에, 친구들과 그녀는 가볍게 웃으며 받아들였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 자리에서 오빠, 동생이 되었다. 그날 오후, 우리는 태화강 주변을 함께 걸었다. 낙엽이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가을의 서늘한 공기가 코끝을 스쳤지만, 우리 사이의 대화는 점점 더 따뜻해졌다.
그 후 우리는 학성공원까지 가서 밤이 깊어갈 때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가을밤의 차가운 공기를 마시며 함께 걸었던 그 시간이 어찌나 좋았는지,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그리고 헤어질 때, 우리는 다시 만나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정확히 언제, 어디서 다시 만났는지 기억은 흐릿해졌다. 그때의 설렘과 기쁨은 지금도 선명하지만, 그 후의 일들은 점점 더 흐릿해졌다.
그러나 하나 분명한 것은, 그날 이후 내 여자 친구가 친구의 여자 친구였다는 사실이다. 참 기막힌 상황이지 않은가? 어쩌다 그렇게 되었는지, 그 시작이 어땠는지는 아무리 생각해도 잘 떠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생생하게 남아 있는 것은, 그녀와 함께 했던 즐거웠던 사랑의 기억뿐이다.
그렇게 우리는 풋사랑을 시작했다. 그때 나는 중학교 시절 여자친구라고 믿던 친구가 나에게 “헤어집시다”라는 편지를 보내며 끝냈던 가슴 아픈 이별을 겪고 있던 차라 그녀와의 만남은 너무도 행복했다. 우리는 주말마다 만났다. 그리고 그녀를 여러 사람들에게도 자랑을 했다. 지금 생각하니 그때 소개를 시켜줬던 그 친구가 얼마나 나를 미워했을까 생각하면 참 미안해진다. 하지만 나의 첫사랑은 그렇게 시작이 되었고 우리는 경주로, 부산으로 기차를 타고 참 많이도 다녔다. 우리가 만났을 때는 내가 고 2 때였던 것 같다. 아니 고 3초였나? 사실 잘 기억나질 않는다. 그렇게 순수한 낭만을 즐기며 한 해가 지나갔다. 경주 보문단지에 갔을 때 우리는 배를 탔다. 나는 노를 저으며 그녀의 얼굴을 계속 바라보았고 그녀는 바라보지 말라며 나에게 물을 끼얹었다. 난 그 물을 맞고 싶어서 그녀를 더 쳐다보았다. 우리는 그때 사진을 찍어주는 사람에게 사진 한 장을 찍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지금도 행복하다. 그렇다 그때는 그렇게 행복했다.
그렇게 화살처럼 시간은 흘러갔고 나의 고3 시절은 끝났다. 우리 때 하향지원 붐이 일면서 대학마저 실패를 하고 나는 재수를 위해 혼자 상경을 했다. 얼마나 철없고 순수한 사랑이었으면 그냥 재수하러 간다고 인사만 하고 왔다. 이듬해 학력고사를 다 치르고 그녀의 집 앞에 찾아갔지만 나는 문을 두드리지 못하고 돌아왔다. 그렇게 나는 인천의 대학교에 입학을 했고 그 녀 생각에 한 해를 보냈다. 하지만 그녀 집의 주소를 모르는 탓에 편지를 모낼 수는 없었고 여름 방학이 되자 그녀의 집을 찾아갔다. 문을 두드렸지만 아무도 나오질 않았고 나는 그냥 돌아와야 했다. 다음 날 나는 다시 그녀의 집으로 갔다. 전 날은 낮에 갔지만 이 번엔 저녁에 갔다. 가서 문을 두드렸는데 그녀의 언니가 나왔다. 그녀의 언니는 놀라면서 동생이 지방 어느 대학을 갔다고 말했다. 하지만 언니의 말은 이제 공부 열심히 하고 너의 인생을 살라고 충고해 주었다.
그렇게 버스를 타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슬픈 건지 시원한 건지 모르게 가벼웠다. 그렇게 우리는 헤어졌다.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내가 수배를 당하고 잠시 떠돌이 생활을 할 때 나는 울산의 한 모처에서 지낼 때가 있었다. 그때 나는 문득 그녀가 떠올라 그 녀 집 앞으로 갔는데 가는 길이 많이 달라져서 헤맸다. 다행히 도로와 바로 붙어 있던 기억을 살려서 찾아가 보았는데 왠지 낯익은 한 사람이 한 아이의 손을 잡고 나오고 있었다.
지금도 나는 그녀가 손을 잡고 나오던 애가 누구였는지 궁금하지만 이상하게 직감적으로 더 이상 그녀의 곁으로 가선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은 계속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뽀뽀만 해서 애를 낳을 수는 없는데...
지금도 그녀의 모습이 떠오른다. 마치 오로라처럼 떠오른다. 그녀의 이름과 그녀의 웃는 모습도 모두 떠오른다. 첫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고 누가 말했던가! 나는 이 첫사랑의 기억을 안고 산다. 내가 사랑에 목마르고 외로움에 지칠 때면 더 그때의 아름다웠던 공원의 밤을 기억한다. 바람은 서늘하고 낙엽이 떨어지던 그 밤, 우리는 뜨거운 마음으로 서로의 입술로 마음을 나누었던 첫사랑의 기억은 40여 년이 지나도 여전히 바위 암각화처럼 새겨져 이 가을 나를 추억에 잡히게 한다. 지금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던 순간의 만남이 내게는 사랑으로 남아 있다는 것이 아마도 첫사랑이 아니었을까?
첫사랑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그저 멀리서 그 녀 모습만 바라보다가
길 모퉁이 후미 진 곳 돌아갈 때면
마음 바빠 잰걸음에 뒤를 쫓았네.
별이 무성히 반짝이는 어느 가을날
어둠 속에 흘러가는 구름을 보면
내 마음이 저 구름을 따라 흘러가
그대 가슴속 그 대 방안에 향기 되고파
먼발치서 그대 모습 바라보다가
나도 몰래 흘러내리는 눈물 닦으며
멀어지는 그대 모습 가슴에 안고
쓸쓸하게 미소 지으며 돌아오던 길
희미하게 남아 있는 그녀의 모습
마음속에 다시 한번 그려 보려고
아주 오랜 수첩 속에 고이 간직한
작고 낡은 사진 한 장을 꺼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