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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백 TV

여백의 시간

by 이문웅

'여백'이라는 단어는 듣기만 해도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편안함이 밀려온다. 글의 여백, 그림의 여백, 그리고 마음의 여백까지. 그 단어 안에는 쉼과 여유, 그리고 새로운 가능성이 담겨 있다. 우리는 때로는 바쁘게 달려가면서도 그 여백을 찾기 위해 숨을 고른다.

30년 전, 나는 한 친구를 만났다. 그때의 우리는 한창 꿈을 꾸고, 미래를 이야기하던 시절이었다. 그는 음악을 좋아했고, 그 음악 속에서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을 찾았다. 나는 그의 곁에서 그가 들려주는 노래를 들으며, 그 음악이 주는 따뜻한 여백을 느꼈다. 시간은 흘러갔지만, 그의 음악 속 여백은 여전히 나에게 작은 위로가 된다.


지금, 그 친구는 ‘여백’이라는 이름으로 유튜브 여백 TV 에서 노래를 부른다. 그 이름은 그의 음악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닮아 있다.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잠시나마 숨 쉴 수 있는 공간, 잠시 멈춰 설 수 있는 시간. 그의 음악을 들으면, 그가 전하는 그 여백이 나를 감싼다. 30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건 바로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음악, 그리고 그 음악 속에서 찾을 수 있는 여백이다.

삶은 늘 바쁘고, 우리는 여전히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여백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그 친구의 음악은 내게 다시금 여유를 찾아준다. 그 소리 속에서 나는 잠시 멈춰 서고, 마음 한편의 빈 공간을 채운다. 오늘도 그의 음악을 들으며, 나는 그가 만들어준 여백 속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우리는 사는 동안 그리 서로가 필요하지 않았던 것일까. 3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한 번도 만나지 않았으니 말이다. 각자의 삶 속에서 바쁘게 살아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멀어졌고, 언젠가부터는 서로의 존재조차 희미해졌다. 하지만 어찌 보면 그 친구가 유튜버가 되지 않았다면, 나는 그를 평생 다시 만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 친구의 노래를 처음 유튜브에서 들었을 때, 마치 오랜 시간 잠들어 있던 기억이 깨어나는 느낌이었다. 잊고 지냈던 추억들이 그의 목소리를 타고 떠올랐다. 그때의 우리는 젊었고,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믿었다. 그러나 삶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우리는 각자 다른 길을 걸어왔다.


어쩌면 그 긴 시간 동안 서로에게 연락하지 않았던 건, 그리 서로를 필요로 하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그의 음악을 통해 다시 연결된 우리 사이에는 예전과는 또 다른 의미가 담겨 있다. 그의 노래 속에서 나를 반기는 것은 그저 오래된 친구의 목소리가 아니라, 함께 지나온 시간의 흔적들이다.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나는 우리가 놓쳤던 시간을 천천히 되찾아 가는 듯한 기분이 든다.


30년 전, 나는 방황하고 있었다. 늦은 20대의 나는 무엇을 할지, 어떤 길을 걸어야 할지 알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주변 사람들은 하나둘씩 각자의 길을 찾아 나섰고, 나만 홀로 길을 잃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세상은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지만, 나는 그 흐름에 끼지 못하고 정처 없이 떠돌고 있었다.


당시의 나는 세상에 대한 불만과 막연한 불안 속에서 자주 좌절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발만 동동 굴렀다. 친구들 역시 하나둘씩 각자의 자리에서 꿈을 찾아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만 뒤처지는 것 같아 초조했다. 그때 그 친구를 만났다. 나와 비슷한 나이대였지만, 그는 음악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려는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삶에도 어려움이 있었겠지만, 그는 음악을 놓지 않았고, 그 안에서 자신만의 길을 찾고자 했다.


그 친구의 모습은 나에게 한 줄기 빛처럼 다가왔다. 그의 음악은 삶의 방향을 잃은 나에게 작은 위로와 용기를 주었고, 그와의 대화는 나를 잠시 현실의 무게에서 벗어나게 했다. 하지만 그때도 결국 나는 나의 방황을 끝내지 못했고, 그는 자신의 길을 찾아 떠나갔다. 그렇게 우리는 각자의 길을 걸으며, 서로의 삶에서 멀어졌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우리가 서로를 필요로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아마도 서로가 각자의 삶을 찾아가기 위해 잠시 떨어져 있어야 했던 시간들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긴 시간이 지나, 그가 유튜버가 된 지금에서야 다시 그를 만나게 된 건 우연이자 필연이 아닐까 싶다. 그의 음악 속에서 나는 30년 전의 나와 다시 마주하고, 방황하던 그 시절의 기억을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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