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었다. 엉엉 울었다. 가슴속 돌멩이가 깨지고 있었다.
큰 어머니가 주절주절 옛날 얘기를 하실 때 내 안의 그동안 응어리진 것들이 다 깨지면서 오랜만에 소리 내어 울었다.
오늘은 사촌 형과 요양원에 계신 큰 어머니를 뵈러 가기로 한 날이었는데 아침 10 시가 넘어도 전화가 오질 않기에 오늘도 바쁜가 보구나 생각하고 늦은 아침을 막 먹었는데 전화가 와 있었다.
나는 얼른 다시 전화를 했는데 형은 다급한 목소리로 지금 큰 어머니 모시고 나에게로 오고 있다고 했다.
순간 나는 당황해서 잠시 망설이다가 얼른 채비를 하고 다시 전화를 했는데 벌써 집 앞 큰 길가에 정차하고 있다고 해서 부랴부랴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다.
맞은편에서 기다리고 있는 형이 바깥으로 나와서 손짓을 했고 나는 신호등이 바뀌길 기다렸다가 건너가 차에 계신 큰 어머니를 뵈었다. 많이 늙으셨지만 모습은 그대로셨다. 나는 잠시 손을 잡아 인사를 건네고는 뒷좌석으로 탔다.
큰 어머니는 이제 너 길에서 만나도 못 알아보겠구나. 라면 평소 느끼던 톤으로 반가움을 전해주셨다.
큰어머니는 올해 아흔두 살이시다.
큰어머니의 삶은 한 편의 드라마라고 해도 100 부작은 나올법한 산전수전공중전 우여곡절을 다 겪으시며 지내 인생이셨다. 그런 분이 1990년 중반 여러 가지 기업 간 전쟁으로 인해 큰 피해를 입으시고 파산을 하셨는데 그 여파가 사촌 형 두 명이 죽게 되었고 오늘 함께 만난 형 한 명은 대표이사로 있다가 한순간에 거지가 된 기가 막힌 아픔을 가진 분이셨다.
그 당시 나는 아직 어렸고 나는 재수를 하며 가수의 꿈을 안고 열심히 한량처럼 살고 있었는데 하루는 내 방에 소금이 뿌려져 있었다. 집에 돌아가보니 방안에 굵은소금이 뿌려져 있는 것을 보고 가정부 누나에게 이유를 물었더니 나의 띠가 문제가 돼서 장사가 잘 안 된다는 얘기를 듣고 나는 그 길로 집을 나왔다.
아버지는 내 말을 들으시고 집을 따로 얻으라고 하셨고 그 당시 큰 누나도 함께 큰 집에서 살았는데 우린 그 길로 나왔다. 하지만 그 후에 나는 운동의 과정에서 더 집안에서 눈밖에 났고 아버지, 어머니가 작고하신 이후에는 더 그랬다.
그리고 나는 집도 사고 안정이 되어갈 무렵 큰 어머니 소식을 듣고 부산인지, 강원도였는지 기억은 희미해졌지만 큰 어머니를 모실 마음에 집으로 모셔왔다. 하지만 그 일은 우리 부부의 사이를 갈라놓은 촉진제가 되었고 한 달이 채 못돼서 다시 강원도로 가셨고 그 후 나는 바빴고 모질게 살았다.
그러나 세월은 나에게 기회를 주지 않고 인생은 더 힘들어져 갔고 얼마 전 사촌 형이 큰어머니를 요양원으로 모셔왔고 큰 어머니가 너에게 많이 미안해하신다는 얘기를 전하면서 너를 위해서라도 빨리 찾아뵈면 좋겠다는 충고를 해줄 때 이제 됐다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나 역시 돌아가시기 전에 뵙고 싶었지만 기회가 닿지를 않았다.
오늘 큰 어머니를 만나서 우리는 꼬리곰탕집으로 가서 맛있는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요양원에 복귀하실 때 홍시 몇 박스와 붕어빵을 사서 넣어 드렸다.
큰어머니와 다시 오겠다는 작별의 인사를 나누고 악수를 하고 나왔을 때 마치 영세받고 거듭났던 그 순간처럼 마음이 가벼워졌다. 지금은 냉담 중이지만.
그리고 돌아와 사유한다. 나의 짐을 덜어주셨구나.
어른께서. 이제 시간 내서 또 찾아봬야겠다.
얼마나 더 대화를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