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축구를 보다가 별안간 시금치가 생각났다. 김밥에서 없어선 안될 시금치지만 언젠가부터 시금치가 없는 김밥을 먹게 된 탓이었는지 나는 시금치를 주문했다. 참 세상 좋아졌다를 머릿속으로 양자역학의 파장처럼 되뇌며 주문을 했는데 새벽에 배달이 되어 있었다. 우리나라! 좋은 나라!
시금치를 냉장고에 넣으면서 나는 아련한 시금치의 추억에 젖는다.
소풍 가는 날이면 엄마는 새벽부터 김밥을 싸고 계셨다. 소풍의 설렘에 잠을 설친 나는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엄마의 부엌으로 간다. 엄마는 테이블에 앉아 김밥을 싸고 계셨고 나는 엄마가 남겨놓은 꼬다리를 집는다. 그리고 초록색 나물을 슬쩍 빼내고 입에 넣는다. 엄마는 다 먹어야 키가 큰다고 하셨지만 그 말씀이 끝나면 더 본격적으로 시금치를 빼고 먹었다.
그렇게 나는 시금치를 싫어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는 시금치를 내가 좋아하는 고추장에 참기름과 함께 무쳐 내어 놓으셨다. 나는 억지로 입에 한 줄기 넣고 눈가를 찌푸리며 밥과 함께 먹었는데 그 순간 나는 이게 왜 이렇게 맛있는 거지? 라며 혼잣말로 중얼거렸고 나는 그때부터 시금치 마니아가 되어 버렸다.
고등학교 시절엔 저녁 자율학습 시간 전 저녁 도시락을 먹을 때 우린 아욱국을 사서 먹기도 했는데 나는 그때마다 아욱국을 먹으며 시금칫국을 상상하곤 집에 와서 내일 아침 시금칫국 끓여달라고 했었다.
그렇게 나는 어른이 되었고 결혼을 했을 때 나의 아내는 시금치를 참 잘 무쳤다. 나는 어린 시절에도 그랬지만 시금치를 좋아한 후로는 시금치를 잘 무치는 사람이 김밥도 잘 싼다는 공식을 발견했었고 나의 아내의 김밥은 일품 김밥이었다.
냉장고에 두 봉지의 시금치를 넣으며 어떻게 먹을까를 고민한다. 그리고 다시 찾아올 행복한 날을 그리워한다.
이 번 주말은 시금치와 맛김으로 맛있는 아침을 먹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