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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16)

시리다

by 이문웅

길 끝에 멈춘 발걸음,

얼어붙은 아스팔트 위에

홀로 선 그림자가 떨린다.

세상은 침묵으로 메말라

누군가의 눈길조차

차가운 바람 속에 그립다.


식탁 위에 놓인 빈 그릇처럼

홀로 보낸 밤도 텅 비었다.

함께했던 시간은 먼지처럼 흩어지고,

식어버린 손길은 돌아오지 않는다.

사랑은 메말라 비명처럼 사라지고,

검은 우주 속으로 소멸되어 간다.


골목 끝 작은 불빛 아래,

손수레를 끌던 노인의 걸음은

어디로 향하는지 모른다.

노동에 익숙한 가난은 더 깊어지고,

가진 것 없는 몸만이

시린 법


시리다, 이 세상 모든 것이.

살아 있는 듯, 살아 있지 않은 듯,

외로움 속에서 서로를 잃어가는 도시.

그 속에서 다가오는

겨울을 녹이는 생명 같은

훈훈한 손길


각박한 세상,

끝나지 않겠지만,

너의 그 따뜻한 마음 하나

움츠리고 옹색한 세상

거리엔 천사들

작은 그 마음 모아

생명은 또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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