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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에 관하여

by 이문웅

나는 늘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이 누구인지조차 모르는 막연한 기다림이었다. 기다림은 내 삶의 일부분처럼 자리 잡고 있었고, 나는 그 기다림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다. 내가 기다리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 정말로 어떤 특정한 사람일까, 아니면 단지 마음속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만들어낸 환상일까?

그러던 어느 날, 페이스북에서 우연히 스쳐 지나간 한 광고가 그 오랜 기다림에 작은 변화를 가져왔다. 광고는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것이었다. 한 웹사이트를 소개하는 내용이었고, 주제는 ‘음악’이었다. 광고 속 이미지는 단조로웠고, 문구는 심플했다. 그러나 묘하게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어쩌면 그 광고가 내가 그동안 간직해 온 막연한 기다림과 어떤 방식으로든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처음에는 그저 스쳐 지나갈 생각이었다. 요즘 세상에 이런 사이트가 과연 얼마나 주목받을 수 있을까? ‘지금 같은 시대에 이런 웹사이트를 만든다고?’라는 의구심이 들면서도, 이상하게도 마음 한편에서는 묘한 흥분이 일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광고 하나가 내 마음을 이렇게 흔들어 놓을 줄은 나 자신조차 예상하지 못했다.

결국 나는 용기를 내어 광고에 나와 있던 사람에게 페이스북 메신저로 문자를 보냈다. 사실 메시지를 보내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보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였다. 내 메시지가 귀찮은 스팸으로 느껴지지는 않을까? 내가 괜히 오지랖 넓게 끼어드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나도 모르게 손가락이 움직였다. 그리고 메시지는 전송됐다.

잠시 후, 예상보다 빠르게 답장이 왔다. 답장은 간결했지만 친절한 느낌이 들었다. 몇 차례 문자를 주고받은 후, 우리는 자연스럽게 서로의 번호를 교환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늘 그랬듯, 참지 못하고 먼저 전화를 걸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생각보다 앳되고 부드러웠다. 낯설었지만 동시에 묘한 친근함이 느껴졌다. 나는 정중하게 나를 소개하며 대화를 시작했다. 그리고 대화는 의외로 길어졌다. 짧게 인사만 나누고 끝날 줄 알았던 전화가, 점점 더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누는 대화로 이어졌다. 마치 오랜 친구와 이야기하듯 자연스럽고 편안했다.

전화기를 내려놓고 나서야 나는 스스로에게 묻기 시작했다. ‘너무 주책 부린 건 아니었을까?’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꺼내도 되는 걸까?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아무것도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마치 오랜 기다림 끝에 운명의 사람을 만난 것처럼, 나는 마음껏 내 이야기를 쏟아냈다.

그렇게 우리는 만날 약속을 잡았다. 전화기를 끊고 난 후, 나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진심으로 기도했다.
“그가 내가 기다려온 그 사람이길. 그리고 이 만남이 내가 꿈꿔온 마지막 희망 프로젝트의 시작이길.”

사실 이런 감정을 느껴본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십여 년 전, 함양 가는 버스에서도 나는 비슷한 기다림과 설렘을 경험한 적이 있다. 그때의 나는 마치 정해진 운명처럼 어떤 ‘누군가’를 기다려야 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 ‘누군가’가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인지, 아니면 내가 만들어낸 허상인지조차 분명하지 않았다.

버스 안에서 나는 창밖을 바라보며 묵묵히 생각에 잠겼다. 기다림은 내게 있어 너무 익숙한 감정이었지만, 동시에 설명할 수 없는 혼란을 불러일으켰다. 나는 정말 누구를 기다리고 있었던 걸까? 그저 나 자신이 만들어낸 이상 속의 인물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러던 순간, 옆좌석에 앉아 있던 스님이 조용히 말을 건넸다.
“인연이란 기다리는 게 아니라 만들어가는 겁니다. 다가갈 때가 되면 스스로 움직여야 해요.”

그 말은 너무나도 평범했지만, 내 마음속 깊은 곳에 날카롭게 꽂혔다. 그동안 나는 기다리는 동안 얼마나 많은 인연을 스쳐 보내버렸을까? 얼마나 많은 기회를 놓쳤을까? 나는 처음으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나는 정말 누구를 기다리고 있었던 걸까? 그리고 기다리는 동안 나는 무엇을 놓치고 있었던 걸까?”

그날의 질문은 오랜 세월 동안 내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었다. 그리고 오늘,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조금이나마 알 것 같았다.

오늘의 전화를 통해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희망과 인연은 하늘에서 저절로 내려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기다림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그래, 희망은 이렇게 만들어가는 거야. 그리고 인연도.
기다림은 끝났다. 이제는 내가 다가갈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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