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꺾인 가지에도 생명이 있다.

by 이문웅

바람이 분다.
거센 바람이 분다.
서 있으려 애쓰던 나무가
힘없이 그 바람에 쓰러진다.

쓰러지며 꺾인 가지들,
일어날 힘조차 없다.
바람이 잦고 날이 밝으면,
한숨짓는 아버지가
톱을 꺼내 꺾인 가지를
손수 잘라낸다.

"이대로 컸으면
내년엔 탐스런 사과가
주렁주렁 매달릴 그 가지를
아버지의 손으로 직접
썰어내 버린다."

톱질을 마친 아버지는
심사가 뒤틀린 듯,
괜히 엄마를 부르고
막걸리를 달라고 한다.
짜증이 묻어난 말속에
한숨이 서럽다.

잘린 가지는 못내
남은 수액을 흘리며,
아버지 눈물을 아는 듯
붙은 새싹이 빛난다.

흔들린 가지들이
끝내 꺾인 자리에서
아버지의 손길이 떠나고
보내버린 미련으로
자르고 또 자르고,
이젠 영원히 보내주려 아예
작정을 하셨나 보다.

톱질하다 찔린 손,
짧은 고통 속에서도,
어찌 네가 아버지의
가슴을 알랴!
넌 그냥 죽어 길가에
거름이나 되겠지.

막걸리 한 잔에
무심한 눈빛이 담기고,
어머니의 손길에
김치 한쪽 전해지면,
비로소

아버지도,
바람 속에서 지친 나무도
햇살의 미소를 본다.

그 햇살 머금고
잘린 그 자리가 시커멓게
상처 아물어 가고,
다른 가지들
하늘 향해 손을 뻗어,
아버지 기다리던 사과를
주렁주렁 매달겠지.

https://youtu.be/BgC6cUIBD4A?si=G8WszQq7G3NVX7t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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