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을 본다.
비도 오지 않고, 햇살도 강하지 않다.
지나가는 사람들도, 건너편의 나무도,
모두 어제와 같다.
그러니까
아무것도 일어날 것 같지 않은 날인 것이다.
그런 날이 있다.
기억에 남을 만한 말도 없고,
심장이 세게 뛴 순간도 없고,
무언가를 결정하거나 바뀌거나,
꿈에 한 발 더 가까워진 것도 없는
그저 그런 하루.
예전엔 그런 날이 싫었다.
무의미하게 지나가는 시간 같고,
세상이 나만 두고 움직이지 않는 것 같고,
나는 어딘가에 머물러 있는 것 같았다.
그저 살아 있다는 이유만으로
내가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이상한 압박 속에서
평범한 하루를 실패처럼 느낀 적도 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알게 되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하루가
사실은 가장 큰 축복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마음이 크게 흔들리지 않고,
불안이 몰려오지 않고,
누군가를 잃지도 않고,
아프지도 않으며,
그저 숨을 쉬고 있는 하루.
그 하루가 쌓여
‘평범한 삶’이 되는 것임을.
세상은 늘 우리에게 묻는다.
“오늘 무엇을 했느냐”고.
우리는 늘 무언가를 해냈다는 말을 하려 한다.
기억에 남을 무언가.
변화, 진보, 성과, 성취.
하지만 삶은
기억보다 훨씬 더 많은 잊혀지는 시간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그 잊혀지는 시간들이야말로
우리의 진짜 체온이다.
오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해서
그 하루가 가치 없는 건 아니다.
오히려 그 하루는
내가 평온함을 견딜 수 있는 사람인지를 묻는 날이다.
변화는 없지만
그대로 유지하는 것조차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오늘도 일어났고,
밥을 먹었고,
잠시 졸았고,
몇 마디 말을 했고,
해가 지는 걸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리고 하루가 저문다.
하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오늘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말하면서도,
나는 오늘 아침
스스로 일어났다.
몸을 일으켰고, 눈을 떴고, 세상과 다시 연결되었다.
따뜻한 물에 손을 담갔고, 커피를 내렸고,
나에게 말을 걸지 않는 세계를
다시 견디기 위한 준비를 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의 하루는 늘 그렇게 ‘일어나는’ 것으로 시작된다.
우리는 잠이라는 작은 죽음에서 매일 부활하듯
조용히 눈을 뜨고, 이불을 젖히고, 두 발로 바닥을 딛는다.
그 단순한 동작은
하루라는 우주의 첫 움직임이다.
어떤 거대한 은하도,
누군가의 의지도 아닌
오직 나 자신이 그 우주의 중심을 다시 작동시키는 순간이다.
그래서 아무 일도 일어날 것 같지 않은 날에도,
적어도 하나의 일은 일어났다.
내가 일어났다는 사실.
그리고 그 시작이 모든 가능성을 열어둔다는 사실.
비록 하루가 조용히 흘러가더라도,
내가 스스로를 다시 일으켰다는 그 한 가지로
오늘은 존재의 의미를 충분히 품고 있다.
우리는 매일 깨어난다.
그러나 그 깨어남이
어떤 거대한 의미나 감동을 주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아무도 보지 못한 그 ‘일어남’ 속에
가장 조용한 용기와 가장 단단한 의지가 담겨 있다.
하루의 의미는
무엇이 ‘일어났는가’에 있지 않고,
내가 그 하루를 시작했다는 데에 있다.
그리하여,
‘아무것도 일어날 것 같지 않았던 오늘’에도
나는 일어났고, 살아냈다.
그 하나로 충분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