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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는 그렇게 무너지지 않는다

by 이문웅

민주주의는 탱크가 아니라 미소 속에서 무너진다. 그것은 더 이상 계엄령도, 총칼도 필요하지 않다. 오히려 '민주'라는 이름을 앞세우고, '정의'를 외치는 자들의 손에 의해 서서히, 조용히, 그러나 철저하게 무너진다. 우리는 과거를 내세우며 현재를 왜곡하는 이중적 정치의 시대에 살고 있다.


어떤 이들은 자신들이 거리에서 외쳤던 기억을 '민주주의의 승리'라 믿는다. 실제로 수많은 국민이 광장에서 목소리를 낸 것은 의미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이후다. ‘계엄이 곧 내란’이라 단정하고, 사법 판단조차 ‘정치적 탄압’으로 간주하며, 민주주의의 모든 제도적 과정을 자신의 정치적 입장에 따라 뒤틀어 해석하는 태도는 결코 민주적이지 않다.


민주주의는 그렇게 무너지지 않는다.

탱크와 헬기가 등장하지 않아도, 스스로 법 위에 군림하려는 정치는 민주주의를 조용히 부식시킨다. 책임져야 할 이들이 오히려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고, 사법적 판단을 ‘쿠데타’라 몰아가는 순간, 민주주의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이 과거에 들었던 구호는 현재의 권력을 정당화하는 장식으로 전락했다.


정치학자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은 『민주주의는 어떻게 무너지는가』에서 "현대의 독재는 전통적 무력에 의한 방식이 아니라, 합법의 외피를 쓴 권력의 오남용으로 이뤄진다"고 경고했다. 그들은 민주주의의 붕괴 징후로 법의 경시, 언론의 적대화, 정적의 악마화를 들었다. 지금 우리는 그 모든 조건을 갖춘 듯한 시대를 지나고 있다.

한때 정권을 몰아낸 것을 민주주의의 '절정'이라 자부하던 이들이, 이제는 같은 방식으로 법과 제도를 무력화하려 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과거에 대해선 끝없이 관대하고, 타인에 대해선 끝없이 냉정하다. 과거를 혁명으로 포장한 정치 감성은, 현재를 독선으로 변질시킨다.


한나 아렌트는 "전체주의는 비상한 폭력이 아니라, 진실의 붕괴에서 시작된다"고 했다. 지금 우리의 민주주의가 위태로운 이유는 제도의 결핍이 아니라, 그 제도를 악용하려는 의지 때문이다. ‘검찰’은 언제나 ‘정치적’이라 매도되고, ‘법원’은 언제나 ‘기울어져 있다’고 비난받는다. 그렇게 공공 기관의 신뢰가 무너지는 동안, 진영은 더욱 공고해지고, 법의 이름은 더 이상 공정하지 않다.


정치이론가 존 킨이 말한 ‘감시 민주주의’는, 권력이 선거 후에도 끊임없이 견제되고 평가받아야 비로소 민주주의라 했다. 그러나 지금의 현실은 어떠한가. 언론의 비판은 ‘조작’, 시민의 고발은 ‘정치공작’, 판결은 ‘정적 제거’로 해석된다. 감시는 적대가 되고, 진실은 음모로 뒤바뀐다.

민주주의는 선택의 과정만이 아니다. 그것은 책임의 시스템이며, 감정이 아닌 원칙 위에서 작동하는 질서다.


자신이 불리해졌을 때 제도를 비난하고, 유리할 때만 법을 강조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파괴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내가 지지하지 않는 권력도 존중할 수 있어야 하고, 내 편의 잘못에도 책임을 물을 수 있어야 한다.

계엄은 내란이 아니다. 적법한 절차 안에서의 대응일 수 있으며, 그것조차도 헌법과 법률의 해석 안에서 다투어야 할 사안이다. 그것을 정치적 프레임으로 단정짓고, 모든 반대자를 '악'으로 몰아가는 순간, 진짜 내란은 그들의 입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민주라는 이름 아래, 그 본질을 훼손하는 권력이야말로 지금 우리가 경계해야 할 독재다. 탱크는 없지만, 허울뿐인 깃발 아래 자유는 죽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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