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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사랑한 소년

by 이문웅

별을 사랑한 소년

어느 바닷가 작은 마을에 엄마와 단둘이 사는 소년이 있었습니다. 소년은 매일 밤 별을 보기 위해 마을 뒤편 뒷동산에 오르곤 했어요.

ChatGPT Image 2025년 5월 29일 오전 09_15_41.png 별을 보며 아버지를 기다리는 엄마와 아들

소년이 별을 보기 시작한 건 아버지가 고기잡이를 나간 후 돌아오지 않은 어느 날부터였습니다. 아버지는 평소처럼 배를 타고 나갔고, 언제나처럼 돌아올 거라 믿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날이 지나고 바람이 거세졌고, 마을에선 며칠째 아버지의 배가 돌아오지 않았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어요.

ChatGPT Image 2025년 5월 29일 오전 09_38_10.png 아버지의 무사 귀환을 바라는 마음


엄마는 매일 아침 정한수를 떠놓고 아버지가 돌아오기를 기도했어요. 마당 한켠, 항아리 옆에 놓인 물그릇 위로 햇살이 비치면 엄마는 두 손을 모으고 고요히 중얼거렸죠. 소년은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아버지가 문을 열고 들어올 상상을 하곤 했습니다.

ChatGPT Image 2025년 5월 29일 오전 09_19_27.png 엄마의 기도

그 상상은 점점 간절해졌고, 밤이면 뒷동산에 올라 별을 보며 "아빠, 거기 계세요?" 하고 속삭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동네 사람들이 웅성거렸고, 경찰이 마을로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경찰차가 천천히 골목길을 지나 소년의 집 앞에 멈췄을 때, 이웃들은 이미 무언가를 알아챘던 눈치였습니다. 누군가는 눈물을 훔쳤고, 누군가는 아이를 품에 안았어요. 공기조차 낯설게 느껴질 만큼 마을은 정적에 잠겼습니다.

경찰은 조심스럽게 엄마에게 다가가 무언가를 속삭였고, 그 순간 엄마는 마당에 털썩 주저앉아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통곡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울음소리는 마치 오랜 바람처럼 마을 골목을 타고 퍼져나갔고, 닫힌 창문들조차 조용히 떨리는 듯했어요. 엄마의 어깨는 들썩였고, 흐느낌은 끝이 없었습니다. 그 소리는 슬픔을 넘어 절망처럼 들렸습니다.

ChatGPT Image 2025년 5월 29일 오전 09_38_02.png 엄마의 슬퍼하는 모습


소년은 그 순간 아무도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돌아올 수 없다는 걸, 이제 더는 기다릴 수 없다는 걸. 그의 눈동자엔 어른들도 말하지 못한 진실이 고요히 담겨 있었어요.

그는 조용히 엄마에게 다가가 품에 안겼고, 엄마는 흐느끼는 소년을 꼭 끌어안았습니다. 둘은 한참을 그렇게, 서로의 어깨에 기대어 울었습니다. 소리 없는 눈물이 흘렀고, 시간이 멈춘 듯한 저녁이 그렇게 흘러갔습니다. 바닷바람이 집 담장을 스치며 지나갔고, 하늘의 별들은 마치 아무 말 없이 그들을 내려다보는 듯했습니다.


ChatGPT Image 2025년 5월 29일 오전 09_47_15.png 엄마와 소년이 슬퍼하는 모습

장례 후, 엄마는 수건으로 머리를 질끈 동여매고 말없이 바다로 나갔습니다. 어깨에는 작은 바구니를 메고, 손에는 작은 칼 하나를 들고 있었죠. 마을 어귀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고개만 살짝 숙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바다는 여전히 잔잔했고, 바람은 지난 계절처럼 불어왔지만, 엄마의 표정은 이전과 달리 굳어 있었습니다. 물때를 맞추어 바위 틈에 발을 디디며 소라를 따고, 미역을 뜯고, 손에 감긴 밧줄을 힘겹게 잡고 낙지를 건져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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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손등은 어느새 햇볕에 그을려 거칠어졌고, 발은 늘 젖어 있어 상처가 나기 일쑤였지만, 그날 그날 시장에 내다 팔 물건을 꼭꼭 채워 갔습니다.

시장에서 돌아올 땐 늘 손에 무엇인가 들려 있었습니다. 달걀 몇 알, 떡 한 조각, 작은 고등어 한 마리. 그리고 그것으로 소년을 위해 따뜻한 저녁을 지었죠.


소년은 언제나 그 길목에서 엄마를 기다렸습니다. 그림자가 기울고 어둠이 내려올 무렵,저 멀리서 엄마의 발걸음이 들리면 제일 먼저 달려가“엄마!” 하고 외쳤죠. 그때 엄마는 웃으며 말했어요. “많이 기다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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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어느 날, 그 기다림은 끝없이 길어졌습니다. 해는 졌고, 별이 하나둘 떠올랐는데도 엄마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소년은 초저녁부터 새벽까지 두 손을 꼭 움켜쥐고 문 앞에 앉아 있었습니다. 눈은 점점 감기고, 몸은 떨렸지만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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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바다로 나가던 어부들이 소년을 발견하고 경찰에 연락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분주히 움직였고, 며칠 뒤, 마을로 날아온 한 통의 소식.

엄마가 도시에 장을 보러 나갔다 돌아오는 길, 도로에서 트럭과 부딪히는 사고를 당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병원에서는 이미 손쓸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소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눈도 깜빡이지 않고 하늘만 바라보았어요.

그 후로도 며칠간, 소년은 마치 투명한 유리병 속에 갇힌 것처럼 조용히 지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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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한 번, 동네 사람들의 도움으로 조용한 장례가 치러졌습니다.

소박한 제단 위에 엄마의 사진이 놓였고, 그 앞에 앉은 소년은 고개를 깊이 숙인 채 소리 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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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소년은 정말로, 완전히 혼자가 되었습니다.

며칠 후, 동사무소에서 사회복지과 직원이 찾아와 소년을 조용히 불렀습니다. "이제 고아원으로 가야 해요. 혼자 살 수는 없잖니. "직원은 친절하게 말했지만, 그 말은 소년의 가슴에 차갑게 박혔습니다. 소년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그날 밤 혼자 방 한 켠에서 조용히 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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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동네 마을회관에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었습니다. 허리가 굽은 노인에서부터 젊은 부부들까지, 모두들 굳은 표정으로 앉아 있었어요. 말없이 앉아 있던 언덕 위 양씨가 입을 열었습니다. "아니, 언제 우리가 우리 아이를 고아로 만들었소? 전쟁통에도 우리 아이는 우리가 다 키웠는디."

그 말에 마을은 잠시 정적에 잠겼고, 이내 김씨가 이어 말했습니다. "양씨로 살면 어때요? 박씨로 살면 어때? 우리한테 소중한 건, 그 아이가 사랑받으며 자라는 거 아녀요?"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맞구먼, 맞구먼..."

그때, 아직 장가도 가지 않고 홀로 사는 칠득 아저씨가 조심스레 손을 들었습니다. "내가 한 마디 해도 되겄는지유... 나 혼자 살고, 각시도 없응게 괜찮겄어요? 뭐, 인자 장가는 틀린 것 같응게..."

그 말에 사람들은 웃음을 터뜨렸고, 누군가는 말했어요. "칠들이! 암만, 괜찮고말고!"

하지만 이장님은 진지한 얼굴로 말했어요. "그려도 엄마가 필요할 것인디... 우덜 자식들은 다 서울로 가붕께, 우리 부부가 낫지 않겄소?"

그러자 마을 어귀에 살던 할머니가 일어나 말했어요. "애야, 하나도 둘도 아닌디. 우리 마을에선 다 같이 키우는 거여."

사람들은 박수를 쳤고, 그날 밤 마을은 오랜만에 따뜻한 공기로 가득 찼습니다. 결국, 칠득 아저씨가 현재를 입양하기로 결정했어요. 그가 부모가 된다는 사실에 마을 사람들은 박수를 쳤고, 눈시울을 붉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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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은 자라며 마도로스를 꿈꿨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바다, 그곳에서 별을 보고 싶었습니다.

그날 밤도, 소년은 뒷동산에 올랐습니다. 별을 보며 엄마와 아버지를 떠올렸어요.

세월이 흘러, 소년은 어른이 되었고 목포에 있는 한국해양대학교에 장학생으로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소년은 열심히 공부했고, 마을 도서관에서 책을 읽거나, 칠득 아저씨가 해주는 고구마를 까먹으며 별을 바라보는 밤을 사랑했어요. 시험을 볼 때마다 아저씨는 된장국을 끓여주며 "배가 불러야 머리가 돌아가는겨" 하고 말하곤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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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커가면서, 마을 사람들도 늘 그를 따뜻하게 챙겨주었습니다.김씨 할머니는 비 오는 날 우산을 들고 찾아왔고, 이장님은 책가방을 사주며 말했어요. "이건 네가 나중에 먼바다 나갈 준비여."

그렇게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자란 소년은 점점 단단해졌고, 언제나 감사함을 잊지 않았습니다.

마을을 떠나기 전날 밤, 소년은 칠득 아저씨와 함께 뒷동산에 올랐습니다.

바람이 조용히 나무 사이를 스치고, 별은 그 어느 때보다 또렷하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 하늘 아래, 둘은 나란히 앉아 말없이 밤하늘을 올려다보았죠.

아저씨는 주머니에서 낡은 담배갑을 꺼냈지만 피우지 않고 다시 넣었습니다. "형님, 형수님. 현재가 인자 잘 커서 해양대 댕기러 갑니다. 걱정 놓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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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끝나고 한참 뒤, 아저씨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현재를 바라보며 웃었습니다. 그 웃음은 땀과 바람, 세월이 섞인 웃음이었고 눈가엔 젖은 빛이 어른거렸어요.

조심스레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습니다. 그 손엔 수많은 고단한 세월과 다정한 온기가 함께 담겨 있었습니다. 소년은 별을 보며 조용히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별들 속엔 늘 그리운 얼굴들이 살고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칠득 아저씨를 꼭 안으며 말했어요. "고맙습니다,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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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득 아저씨도 눈물을 흘리며 현재를 꼭 안아주었습니다. 그날 밤, 하늘에는 별빛이 총총히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별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소년의 이야기를 알고 있었던 것처럼 따뜻하게 깜빡이고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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