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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정심과 부동심

by 이문웅

삶은 끊임없이 흔들린다. 사람의 말 한마디, 예기치 못한 사건 하나가 우리의 하루 전체를 바꿔놓기도 한다. 마음이란 본래 유동적인 것이다. 감정은 사소한 자극에도 솟구치고 가라앉는다. 우리는 기쁘기도 하고 분노하기도 하며, 외면받으면 아프고, 사랑받으면 다시 흔들린다. 이러한 감정의 파도 속에서 인간은 때로 삶을 붙잡기도 하고, 때로는 자신을 잃어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똑같이 휘둘리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외부 상황이 어떻게 변해도 중심을 잃지 않고, 어떤 사람은 단 한 마디의 말에도 무너진다. 이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단순한 기질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자기 자신을 다스리려는 의지의 유무, 그리고 오랜 시간 수련하고 연마해온 내면의 질서와 관련되어 있다. 그것이 바로 ‘평정심(平靜心)’과 ‘부동심(不動心)’이다.


평정심은 말 그대로 고요한 마음이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고요함은 감정이 없는 무표정한 상태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평정심은 감정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휘둘리지 않는 힘이다. 슬픔이 오면 그것을 알아차리고, 분노가 밀려오면 그것을 직면하면서도, 그 감정에 함몰되지 않는 상태. 그것이 바로 평정심이다. 불교에서는 이를 ‘우페카(Upekṣā)’, 즉 사무심(捨無心)이라 부른다. 사랑, 연민, 기쁨과 더불어 사무량심(四無量心)의 하나로 여겨지며, 세상의 모든 변화를 받아들이되 집착하지 않는 자세를 의미한다. 불교의 근본 교의인 ‘무상(無常)’은 모든 것이 변한다는 진리를 전한다. 감정도 변하고 상황도 변한다. 기쁨도 머물지 않고, 고통도 영원하지 않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것들을 움켜쥘 필요가 없다. 떠오르는 감정을 억제하거나 회피할 필요 없이, 그냥 그것이 지나가도록 두는 것. 그리하여 감정의 흐름 위에서 자신을 잃지 않는 태도. 그것이 바로 평정심이다.


반면 부동심은 감정의 수용을 넘어서는 또 하나의 차원을 지닌다. 그것은 흔들림 없는 중심이자, 외부의 자극에도 요동하지 않는 결단의 마음이다. 마치 거센 바람이 불어도 제자리를 지키는 바위처럼, 부동심은 감정이나 환경, 사회적 압력 앞에서도 자신의 방향을 잃지 않는 단단한 정신을 뜻한다. 불교에서는 이를 ‘정견(正見)’과 ‘정정진(正精進)’으로 설명한다. 세상의 무상함과 집착의 본질을 꿰뚫어 본 사람은, 집착에 휘둘리지 않고 바른 길을 따라간다. 부동심은 바로 그 바른 길을 끝까지 걷겠다는 다짐이자 실행이다. 삶은 언제나 불확실하고, 선택의 순간은 고통스럽다. 그러나 그 불확실함 속에서도 내가 무엇을 믿고 따를 것인지 끝까지 흔들림 없이 붙잡는 태도, 그것이 부동심이다.


오늘날 우리는 과잉 감정의 시대를 살아간다. 타인의 감정이 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전염되고, 분노와 불안이 사람들 사이에서 빠르게 확산된다. 자극적인 사건에 이끌리고, 감정적 반응이 곧 판단처럼 여겨진다. 이런 시대일수록 우리는 더욱더 내면의 평형을 되찾아야 한다. 평정심은 우리로 하여금 감정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게 만들고, 부동심은 흔들리는 시대 속에서 우리만의 좌표를 지키게 해준다. 하나는 감정을 다스리는 지혜이고, 다른 하나는 신념을 지키는 용기다. 그리고 이 둘은 서로를 완성시킨다. 평정심 없는 부동심은 고집이 되고, 부동심 없는 평정심은 무기력해진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두 마음을 함께 길러야 한다.


그렇다면 왜 인간은 이런 마음을 가지려 해야 하는가?

그것은 단지 자기 수양이나 감정 조절의 문제가 아니다. 바로 그 과정을 통해 우리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위대함과 고결함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단지 진화의 산물이 아니다. 물론 우리는 생물학적 존재이며, 유전자의 설계 아래에서 태어난다. 하지만 인간을 단순히 생존과 번식의 도구로만 이해하는 관점은, 인간 정신의 깊이를 가로막는다. 우리는 본능만으로 살아가지 않는다. 인간은 사유하는 존재이며, 반성하는 존재이고, 의미를 찾는 존재다. 우리는 고통을 시로, 절망을 철학으로, 두려움을 신념으로 바꾸는 힘을 지녔다. 이런 능력은 결코 유전자 속에만 담긴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정신이 자발적으로 성장하고, 자신을 넘어서는 것을 향해 나아가는 존재만이 지닐 수 있는 특징이다.


결국, 인간이 도(道)를 따른다는 것은 바로 평정심과 부동심을 갖추려는 끊임없는 노력 그 자체다. 왜냐하면 그런 마음이 생겨날 때야말로, 우리는 비로소 인간 존재의 고결함과 위대함을 실감하게 되기 때문이다. 인간이 위대한 것은 육체의 진화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꿰뚫고, 자신의 길을 의지로 지켜내며, 더 나은 존재로 살아가려는 마음을 가졌기 때문이다.


철학은 인간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지금 당신은 흔들리고 있는가? 그리고 그 흔들림 속에서 무엇을 지키고 있는가?” 삶은 매 순간 흔들리지만, 우리는 그 안에서도 중심을 세울 수 있다. 평정심은 감정의 파도 속에서 균형을 잡는 지혜이며, 부동심은 방향을 잃지 않는 결단의 힘이다. 두 마음은 우리가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요구되는 고귀한 훈련이자, 존재의 품격을 완성시키는 영혼의 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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