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톤치드라는 단어는 한국 사회에서 자연과 환경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알고 있는 용어다. 이 단어는 원래 영어 Phytoncide에서 유래했으며,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학술 용어다. 서구권에서는 일반적으로 파이톤사이드또는 화이톤사이드로 발음한다. 한국에서 흔히 쓰이는 발음은 일본을 거쳐 들어온 형태로, 발음과 표기 모두 일본어식 표현의 영향을 받았다.
이는 한국 사회에 깊숙이 남아 있는 일본 근대화의 흔적 중 하나다. 한국의 근대 학문 체계는 일제 시대 또는 그 이전 일본을 통해 상당 부분 도입됐다. 국어, 영어, 수학, 과학 등 기초 학문뿐 아니라 많은 용어와 개념이 일본어를 통해 한반도에 전파됐다. 음식문화에서도 비슷한 사례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대표적으로 김밥과 오뎅이 있다. 김밥은 일본의 '노리마키'(김말이)에서, 오뎅은 일본의 '오뎅'(어묵탕) 문화에서 영향을 받았다.
'민족'이라는 단어 역시 이와 같은 흐름 속에 있다. 이 개념은 본래 독일의 Volk(민족·민중·국민) 개념에서 유래했다. 독일의 Volk는 단순한 혈연이나 지리적 공동체를 넘어 문화적·정치적 공동체를 아우르는 의미였다. 일본 근대화 과정에서 이 개념이 변형되어 도입됐고, 이를 대표적으로 확산시킨 인물이 바로 이토 히로부미다.
이토 히로부미는 메이지 유신의 핵심 인물로, 일본의 국가 통합과 근대화를 주도했다. 그는 일본 내부의 단결을 강조하며 '민족' 개념을 정치적 통합의 도구로 활용했다. 특히, 혈연·지연 중심의 공동체 의식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해석했고, 이는 이후 일본의 군국주의 및 팽창 정책의 사상적 토대로 자리 잡았다.
그 군국주의는 결국 약소국인 조선 한반도를 식민지화했고, 동아시아 전체를 일본 중심의 질서로 재편하려는 시도로 이어졌다. 이 과정은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비극으로 귀결됐고, 그 상처는 오늘날까지도 아시아 각국에 깊이 남아 있다.
문제는, 그러한 민족주의의 폐해가 과거에만 머무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반도의 북쪽 국가인 북한 역시 '민족'이라는 개념을 정치적 수단으로 활용해왔다. 북한은 '민족보위'를 내세우며 핵무기를 개발했고, 이는 한반도와 동아시아는 물론, 전 세계의 평화를 실질적으로 위협하는 요소가 됐다. 민족의 이름으로 인민을 억압하고, 안보라는 명분으로 무력을 강화하는 구조는 과거 일본 군국주의와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다.
사실상, '민족'이라는 개념은 사람을 묶는 틀로서 기능할 수는 있지만, 사람보다 상위에 존재할 수는 없다. 민족은 사람이 만들어낸 것이며, 결국 사람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 그러나 역사는 그러지 못했다. 민족이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생명과 자유가 희생됐고, 결과적으로 그 모든 행위는 평화를 파괴해온 역사로 기록됐다.
이제 시대는 변했다. 우리는 4차 산업혁명의 전환기에 있다. 인공지능, 로봇, 자동화 기술은 기존의 산업 구조뿐 아니라 정치와 사회 구조까지 근본적으로 흔들고 있다. 더 이상 혈연과 지연, 국경 중심의 공동체에 집착할 이유가 없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특히, 중앙집권적 제도와 소수 엘리트 또는 1인의 의사결정에 의해 폭력과 전쟁이 결정되는 구조는 기술 발전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4차 산업혁명은 분산형 의사결정, 자율적 협력, 개방성과 투명성을 요구한다. 과거의 민족주의적 폐쇄성과 권위주의는 이러한 흐름을 심각하게 저해할 뿐이다.
따라서 새로운 시대에는 민족이라는 틀을 넘어서는 더 유연하고 포용적인, 그리고 무엇보다 생명 중심의 평화질서가 요구된다. 공동체는 더 이상 국경과 혈통이 아니라, 인류 공동의 과제와 가치로 연결돼야 한다. 그것이 21세기, 그리고 기술과 정보가 중심이 되는 새로운 시대에 부합하는 공동체의 모습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