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인생의 비밀

by 이문웅

부자로 태어나든, 가난하게 태어나든

우리는 모두 결국 같은 목적지를 향해 간다.

태어남의 조건이 어떠하든,

죽음 앞에서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


누군가는 백 년을 살고,

누군가는 스무 해도 채우지 못한 채 떠난다.

하지만 시간의 길이보다 더 본질적인 것은,

그 시간 동안 무엇을 하며 살았는가다.


그런데 사람들은 대부분,

그 무엇이 '돈'이라고 믿으며 살아간다.


특히 가난한 사람일수록

돈에 대한 집착은 절실하고,

그 절실함은 때로는 생존이기도 하다.

그래서 꿈조차도 자연스럽게

돈을 많이 버는 것으로 수렴된다.


'나중에 돈 많이 벌어서 행복해지겠다'는 말은

이 사회의 통과의례처럼 누구나 말한다.

하지만 진짜 행복은,

돈이 아니라 내가 지금 무엇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가에서 비롯된다.

이 단순하지만 깊은 진실을 알게 되기까지

나 역시도 많은 시간을 돌고 돌아야 했다.


나는 지금 혼자다.

정확히 말하자면,

법적 부부이지만 실질적으로는 혼자다.

홀아비가 되었고,

어쩌면 이제 ‘독거노인’이라는 단어도

나를 향해 천천히 다가오고 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하루하루가 즐겁다.

돈이 많아서가 아니다.

외롭지 않아서도 아니다.


어쩌면 외롭고,

가난하다고 볼 수도 있을 나의 삶.

그런데도 이상하게 가볍고 자유롭다.


물론, 나를 오랫동안 알아온 사람들은

때때로 염려의 눈빛을 보내기도 한다.

특히 가족이나 가까운 지인들은

내가 너무 자유롭게 사는 걸 보며

이상하다는 듯 말하곤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이렇게 말한다.


"보이는 대로만 생각하다가는

정작 중요한 건 하나도 못 보고,

장님이 되는 거야."


나는 어릴 적부터 음악을 좋아했다.

사실 나의 진짜 첫 꿈은 가수였다.

노래를 부르면 세상이 멈춘 것 같았고,

악보 한 장이 내 하루를 설레게 했다.


하지만 나는 무대 공포증이 있었다.

이 아이러니는 내 유년기의 정체성을 만든다.


사람들 앞에 서면 심장이 터질 듯 뛰었고,

그들의 호응 없이는 제대로 노래를 부를 수 없었다.

누군가 나를 불러주고,

박수를 쳐 주고,

나를 ‘괜찮다’고 인정해 주어야

비로소 나는 나를 노래할 수 있었다.


결국 내가 직접 부르는 음악은 내 삶에서 멀어져 갔다.

대신 나는 '현실'이라는 이름의 세계 속에서

사업도 했고,

팔자에도 없던 정치까지 꿈꾸며 살았다.


그렇게 치열하게 살아온 날들.

그런데 어느 날,

아내로부터 ‘추방 명령’을 받았다.


어쩌면 그건 경고였는지도 모른다.

삶이 보내는 신호.

혹은 신의 개입.


나는 현재 '시베리아 유배 생활' 중이다.

이혼이라는 단어가 눈앞에 어른거리며,

삶은 조금씩 나를 밀어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나는 점점 더 나은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나는 마침내 깨달았다.

내가 지금껏 해온 수많은 일들이

사실은 허무함에 기반하고 있었다는 것.


그 깨달음은 나를 ‘창작자’라는 새로운 정체성으로 이끌었다.

글을 쓰고,

생각을 표현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울릴 수 있다는 사실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깊은 만족을 주었다.


나는 『동아시아 오디세이』를 썼고,

『행복의 공식』과 『진보주의』를 펴냈으며,

지금은 인천일보와 경기신문에

칼럼도 연재하고 있다.


무대 위의 가수는 되지 못했지만,

나는 문장의 무대에서

노래를 하고 있는 셈이다.


뿐만 아니라,

내가 오랫동안 흥미를 가졌던

인공지능, 블록체인, 미래 문명이라는 주제들이

이제는 나의 ‘직업’이 되었다.


이전엔 단순한 호기심이었지만,

지금은 매일같이 그 흐름을 읽고,

그 안에서 나만의 해석을 써내는

삶을 살고 있다.


그리고 지금도 나는 여전히 혼자다.

하지만 나는 혼자라는 사실이

전처럼 외롭지 않다.


왜냐하면,

이제 나는 ‘내 삶의 길’을 걷고 있고,

그 길 끝에 누가 있어주지 않아도

나는 흔들리지 않는다.


지금 나는,

비록 세계 최고는 아니지만,

내 자손들이 더는 굶지 않아도 될

부를 하나씩 형성하고 있다.


단 한 푼의 유산도 받지 못한 내가

이제는 미래의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남겨줄 수 있다는 사실.

그것이 오늘 나를 행복하게 한다.


그리고,

아직도 나를 원망하고 있을 아내에게

직접 이 마음을 전하고 싶지만,

그러지 못한다.


서로의 엠비티아이처럼

삶의 방향이 다르다는 걸

이제는 이해하게 되었다.


그래도 괜찮다.

나는 원망하지 않는다.

그 시절은 그 시절대로 소중했고,

지금은 지금대로 충분하다.


왜냐하면 나는 알고 있다.


인생은 결국 모두

죽음을 향해 가는 여정이라는 것을.


누군가는 돈을 잠시 누리며

그것이 행복이라 믿고 살겠지만

그 모든 것은 결국 사라질 일이다.


남는 것은 단 하나!

내가 무엇을 하며 살았는가!

그리고 그 삶으로 무엇을 남겼는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인생을 너무 오래 고민하며 살지 마라.

그럴 시간에,

내가 진심으로 원하는 곳으로 나를 옮겨라.


그곳이 척박한 아프리카의 불모지든,

사람의 온기를 찾기 힘든 툰드라의 혹한지대든 상관없다.

나의 뜨거운 열망을 모른 척하며 사는 것,

그게 진짜 죽음이다.


‘내가 지금 살아 있다’는 느낌.

그것이야말로

인생의 비밀이자,

인생을 여는 열쇠인 것이다.


keyword
화, 목, 토, 일 연재
이전 18화고구마로 여는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