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바꾼 경험은 무엇이었을까?
2015년에 제주도에서 5년동안 살았다. 제주도에 내려간 계기는 중학생이었던 딸의 눈물 때문이었다.
나를 바꾸게된 최대의 사건이었다. 딸의 행복을 위해 나는 나를 바꾸기로 했다.
제주도에 내려가기전 부산에 살았다. 법조타운 근처, 아이들 교육열이 대단한 학군으로 유명한 동네였다. 실제로 그곳 엄마들은 유명하다는 영어 유치원부터 시작해 초등 저학년부터 여기저기 학원을 보내고 있었다. 주산학원, 웅변학원, 영어, 수학, 논술, 피아노, 태권도, 무용, 발레, 과학학원 등이었다. 주말이 되어도 아이들은 쉴 틈이 없었다. 경쟁속에 살다보니 나는 나도 모르게 그 속에 스며들었다. 딸을 일반 유치원에 보낼때 알게된 한 언니가 있었다. 내 아들과 동갑인 그 언니 딸은 영어 유치원을 보내고 있었다. 아이에 대한 교육열이 넘치고 열정이 가득한 언니였다. 그 언니 소개로 내 아들을 영어유치원으로 입학시켰다. 1년 남은 유치원생활을 영어 유치원에 다녀보는것도 좋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딸은 일반 유치원을 졸업하고 아들은 영어 유치원을 졸업했다. 그 언니와 난 어느새 친한 사이가 되었다. 언니 딸과 내 아들은 같은 초등학교 같은 반이 되는 해가 많았다. 언니는 잘 가르친다는 학원이 있으면 그곳을 소개해 주었다. 내 딸이 초등1학년때 그 언니가 소개한 주산 학원을 보냈다. 내 딸보다 한 살 어린 그 언니의 딸도 함께했다. 전국 주산 암산 대회때 둘 다 상을 받았다. 같은 점수였지만 내 딸이 한 살 위라서 금상을 받고, 한살 어린 언니 딸이 대상을 받았다.
내 딸이 초등학교 1학년때 영어 스피치 대회에 참가했다. 초등1학년부터 6학년 아이들이 참가하는 대회였다. 그곳에서 내 딸이 고학년 언니 오빠들을 제치고 1등을 했다. 영어 유치원을 다니지 않았어도 딸은 엄마인 내가 시키는대로 잘 따라와 주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딸은 수학에 대한 재능을 보였다. 교내 수학 경시대회에서 항상 금상, 은상을 받았다. 시험이 어려워 다른 반에서 상 받는 아이가 없을 때에도 딸은 혼자 상을 받았다. 어느날 초등 4학년때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딸 수학공부를 어떻게 시키는지 궁금하다는 전화였다. 나는 특별한건 없다고 말씀드렸다. 그저 타고난 재능인것 같았다. 담임선생님 추천으로 교육청 영재원에 합격해 다니게 되었다. 중학교1학년이 되자 수학경시대회반을 다니게 했다. 학교, 학원, 집이라는 반복되는 생활을 딸은 잘 따라 주었다. 중학교에 들어가 첫 기말시험이 있었다. 딸은 수학 경시대회반 학원공부와 학교 기말 시험을 준비하면서 늘 시간이 부족했다. 가정 과목을 당일치기 공부했다. 시험 점수가 엉망이었다. 나는 다른 과목 잘 받아놓고 가정 과목이 엉망인 것을 보고 딸을 다그쳤다.
아이는 그때부터 울기 시작했다. 그동안 억눌러 있던 설움들을 눈물로 호소하고 있었다. 딸의 눈물은 그칠 줄 몰랐다. 3일동안 울고 또 울었다. 나는 그때서야 뒤통수를 한 대 얻어 맞은 사람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동안 엄마인 나를 말없이 잘 따라주었기에 착하다고만 생각했다. 아이의 마음을 들여다보지 못했던 나를 자책했다. 나도 모르게 완벽을 원한 건 아니었는지 딸에게 진심으로 미안했다. 아이가 그저 행복하기만을 바라던 때가 있지 않았던가? 아이를 위해 나의 욕심과 완벽함, 조급함을 내려놓기로 했다.
학부모 모임에서 알게된 한 언니의 소개로 제주도 국제학교에 대해 알게 되었다. 딸은 국제학교에 가고 싶어했다. 마침 서울에서 시험이 있다하여 딸을 데리고 갔다. 수학, 영어 필기시험과 영어 인터뷰, 적성검사등이 있었다. 이번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한번 쳐보자고 본 것이 합격하고 말았다. 딸이 원했기에 학교 선생님 추천서와 학교 생활기록부등을 준비해 입학하게 되었다. 딸은 기숙사 생활을 했다.
입학 후 한달 뒤 학부모 참관수업이 있어 가게 되었다. 복도에 들어서자 선생님과 대화하는 딸의 모습이 보였다. 웃음꽃이 활짝 핀 얼굴이었다. 미국인인 담임선생님은 딸이 적응을 잘하고 있다고 했다. 교우관계도 좋다고 했다. 딸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니 안심 되었다.
딸의 눈물 사건으로 나는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엄마의 욕심으로 키운 아이는 절대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을. 지금도 아이들에게 지나친 욕심과 집착을 하지 않는다. 그 덕에 아이들은 스스로 하는 힘이 커진 것 같다. 지금까지 각자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모습이 대견스럽다. 아이들이 어른인 나를 성장하게 했다. 아이들이 한없이 고맙고 사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