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편한 공간은?
[마음의 창을 여는 곳 식탁]
아침에 일어나 거실 창문을 열었다. 차가운 공기가 얼굴에 닿는다. 놀이터에 햇살이 내려 앉아 있다. 바닥에 떨어진 낙엽이 햇살에 비쳐 반짝이고 있었다.
시끌벅적 뛰어놀던 아이들은 어디로 갔는지 놀이터가 조용하다. 두 개의 텅빈 그네만이 왔다갔다 흔들거리고 있다.
전기포터기에 물을 담아 끓였다. 잠시 뒤 '촤아'소리를 내며 하얀 수증기를 내뿜는다. 보이차를 내렸다. 은은한 차향이 부엌에 퍼진다. 투명한 잔에 담은 보이차 갈색 빛깔이 가을 분위기를 냈다. 따뜻한 보이차 한 모금을 마시며 식탁에 앉았다.
이곳에 앉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잠시 멍때리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나서 식탁위에 놓여있는 필사노트에 손이 갔다. 연필을 쥐고 필사를 했다.
박완서 산문 <흔들리지 않는 전체>
저 나무가 하루도 같은 날이 없이 변화무쌍하던 그 나무일까. 만개했을 때는 온 동네를 바람나게 할 것처럼 향기롭고 화려하던 꽃, 누런 살구를 한가마도 더 떨구던 그 다산성, 미풍에도 오묘하게 살랑이던 무성하고 예민한 잎새들, 느릿느릿 물들다가 우수수 서글픈 소리를 내며 서둘러 지던 낙엽, 그런것들이 과연 저 나무가 한 짓이었을까, 믿기지 않으니 혹시 저 나무가 꾼 꿈이 아니었을까. 살구나무 옆에 올망졸망한 작은 나무들도 흔들림이 없긴 마찬가지다. 한때는 제각기 영화로웠던 나무들이다. 한때의 영화는 속절없이 가버렸고, 속절없이 가버린것은 나의 군더더기일 뿐 전체는 아니라고 주장이라도 하듯 마지막 남은 전체는 한점 흐트러짐도 흔들림도 없다. 나무를 닮고싶다. 《두부》. 창비. 2002, 98~99쪽
필사를 마치는 동시에 아침 햇살이 거실에 쏟아져 환하게 비추었다. 보이차 한 잔에 온 몸이 따뜻해지고 햇살이 내려앉은 거실엔 따뜻한 온기가 내려 앉았다.
오늘도 나는 20년 된 6인용 식탁에 앉았다. 오래되어 흔들거리는 의자도 있다. 하지만 함께한 시간들이 많아 나에게는 정겨운 의자들이다.
박완서 산문 <흔들리지 않는 전체>를 필사하며 왠지 공감이 갔다. '저 나무가 하루도 같은 날이 없이 변화무쌍하던 그 나무일까. 한때는 제각기 영화로웠던 나무들.' 창밖 나무를 보며 생각에 잠긴다. 잎이 떨어져 앙상한 나무가 한점 흐트러짐도 흔들림도 없이 서 있다. 나무를 보며 나도 나무를 닮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오늘도 나는 이 식탁 앞에 앉아 나의 이야기를 쓴다. 세상의 소음이 닿지 않는 이 작은 공간에서, 차향과 햇살이 만들어주는 평온함 속에서 글을 쓰는 시간이 좋다. 이 식탁은 나에겐 단순히 밥을 먹는 곳이 아니다. 마음이 쉬어가는 곳이다. 생각이 피어나는 작은 작업실이다. 이곳에 앉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내가 사랑하는 공간, 마음 편한 공간, 오래도록 함께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