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작가 21일 챌린지 4일차/어릴적 나의 꿈

어릴적 되고 싶던 건 뭐였을까?

by 복기령 I can do it

[어릴적 나의 꿈, 그리고 지금의 나]​

어릴적 나는 시골에서 자랐다. 흙냄새 속에서 뛰놀던 아이였다. 초등학교 중학교도 십리길을 걸어가야 나왔다. 아카시아 꽃이 필때면 지금도 옛 고향길이 떠오른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친구와 함께 아카시아 꽃을 따먹었던 때가 아직도 선명하다. 줄기를 따서 가위바위보 하면서 잎을 하나씩 따서 버리는 놀이도 생각난다. 비가 온 다음날 냇가에 발을 담그며 물장구치며 놀았던 기억도 생생하기만 하다. 시골의 봄은 늘 바빴다. 논두렁이를 따라 노란 유채꽃이 피고, 그 사이로 아버지와 엄마의 구부린 허리가 있었다. 나는 그 곁에서 부모님의 농사를 도우며 자랐다.


새벽 4시가 되면 아버지는 양말을 주섬주섬 신으시고 방문을 나섰다. 논두렁을 걸으며 하루를 시작하셨다.


엄마도 아침일찍 일어나 불을 지피고 밥을 하고 우리의 도시락을 싸주셨다. 1남 5녀인 자식들을 등교시키며 하루를 바쁘게 시작했다. 하루도 허리 펼날이 없는 부모님을 보며 얼른 커서 부모님께 효도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보름달이 뜨면 항상 소원을 빌곤했다.


'빨리 어른이 되어 효도할 수 있게 해주세요. 부모님이 농사일을 벗어나 편히 살수 있게 해주세요.' 라며 늘 부모님에 대해 소원을 빌었다. 그게 어린 나의 가장 간절한 꿈이었다. 학창시절 친구들의 꿈은 다양했다. 한 친구는 선생님이 되고 싶어했고, 다른 한 친구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했다. 하지만 나는 부모님의 굳은 손을 펴드리고 싶었다. 커가면서 그 꿈은 점점 더 커져만 갔다.


부모님의 고통을 덜어주는 일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따뜻한 효도라 믿었다. 아픈 사람을 돌보는 일, 간호사가 되어 빨리 취업하고 싶었다.


​간호사가 되어 병원근무를 시작했다. 부모님은 간호사가 된 나를 자랑스러워 했다. 수술실에서 근무를 이어가던 중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부모님 곁에서 효도할거라 생각했던 나의 계획이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지금의 남편과 결혼을 하면서 친정집과는 멀리 떨어진 경남으로 시집을 오게 되었다. 그때부터 효도의 꿈은 손끝에서 멀어졌다.


부모님 얼굴을 자주 뵙지 못했고 전화속 부모님 목소리에 눈물이 나기도 했다. 아이 둘을 낳고 정신없이 보내다 보니 잊고 지내는 날이 많았다. 그게 늘 마음의 빚으로 남았다. 바쁜 농사일 하면서 1남 5녀를 어떻게 키우셨을까? 부모님의 주름진 얼굴, 굽은 허리, 굳은 손마디가 가슴을 파고들때가 많았다.


나의 어릴적 꿈은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몸은 떨어져 있지만 글로써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을 전하고 싶다. 교통사고로 갑작스럽게 하늘나라로 간 아버지도 내가 전하는 글을 읽어보고 계시리라 믿는다.


​오늘도 나는 따뜻한 햇살아래 시골에서 자라던 그 마음으로 글을 쓴다. '늘 그리운 부모님, 멀리서 건강을 빕니다. 여전히 부모님의 자랑스런 딸로 열심히 그리고 나답게 살아가며 효도를 다하겠습니다. 부모님 사랑합니다!'


간호사로 못다한 효도, 부모님의 마음을 돌보는 작가로 효도할 수 있도록 하루하루 멋지게 살아가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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