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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왜 지금 크뤼드너인가

박경리, 여행, 시, 크뤼드너, 메테르니히, 러시아, 붕괴, 초월, 존재

by 감각의 풍경

행선지도 있었고 귀착지도 있었다

바이칼 호수도 있었으며

밤하늘의 별이 크다는 사하라 사막

작가이기도 했던 어떤 여자가

사막을 건너면서 신의 계시를 받아

메테르니히와 러시아 황제 사이를 오가며

신성동맹을 주선했다는 사연이 있는

그 별이 큰 사막의 밤하늘

- 박경리, 유고 시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2008)의 '여행' 중


프롤로그


세속은 여전히 눈부시다. 성공을 이야기하고, 속도를 찬양하고, 삶을 성취의 서열표처럼 늘어놓는다. 그러나 이 화려함 뒤편에서, 우리는 모두 어떤 이름 없는 허무를 느낀다. 삶이 외면하는 그 어둠 속에서, 우리는 자신에게 묻는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정말 살아 있는가?


크뤼드너(Baroness Barbara Juliane von Krüdener, 1764 – 1824)는 이 질문 앞에 가장 정직하게 무너졌던 사람이다. 귀족 사회의 빛나는 무대 위에서, 그녀는 사랑과 성공을 모두 얻었지만, 그 모든 것 뒤에 펼쳐진 심연을 외면하지 않았다. 그녀는 무너졌고, 다시 일어섰다. 그리고, 존재를 초월하는 길을 발견했다.


오늘, 우리가 다시 크뤼드너를 읽어야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삶이 무너지는 순간에,

인간은 진정한 탄생을 준비하기 때문이다.


박경리는 생의 말미에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고 말했다. 크뤼드너의 여정은, 바로 그 무욕의 삶 이후에 찾아오는 새로운 생의 서광을 보여준다.


붕괴와 초월, 존재 혁명의 모델


이 책은 단순한 전기가 아니다. 크뤼드너의 생애를 따라가는 것은, 곧 하나의 존재가 붕괴하고 재탄생하는 신비로운 과정을 목격하는 일이다. 그녀의 사랑, 상실, 고독, 회심, 그리고 새로운 사명의 수용까지—모든 순간은 “어떻게 인간은 다시 살아날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통한다.


크뤼드너는 패배하지 않았다.

그녀는 무너졌지만, 그 폐허 위에,

고요한 불꽃처럼 자신만의 존재 혁명을 일으켰다.


그녀의 여정은, 우리가 쉽게 소비하는 자기 계발서의 낙관적 재구성과는 다르다.

이것은 “더 나은 성공”을 위한 여행이 아니라,

더 깊은 존재를 위한 침잠과 초월의 기록이다.


이 책의 구조


『존재 혁명의 신비가: 크뤼드너』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크뤼드너의 삶 — 붕괴, 침묵, 회심, 회심 이후의 삶, 몰락과 침묵

현대 심리학과의 대화 — 트라우마 이후 성장, 융, 로고테라피

교육, 리더십에의 적용


먼저 크뤼드너의 실제 생애 사건들을 따라가고, 이후 심리학, 철학, 영성학의 렌즈를 통해 그 의미를 확장해 나간다. 독자는 단순히 한 여성의 과거 이야기를 읽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과 존재를 다시 묻는 여정에 함께 서게 될 것이다.


이 책은 빠르게 읽는 책이 아니다. 이것은 한 걸음 한 걸음, 무너진 땅을 밟으며 걸어야 하는 여행이다. 박경리의 유고시집 중 '우주 만상 속의 당신'에서 그녀가 이야기 한 것 처럼 “내 영혼이 생사를 넘나드는 미친 바람 속을 질주하며 울부 짖었을 때 당신께서는 여전히 풀숲 들꽃 옆에 앉아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는 말을 믿는 이들에게, 크뤼드너는 조용히 손을 내밀 것이다.


당신이 무너졌던 그 자리에서,

비로소 이 책은 시작된다.


1장. 붕괴의 서곡

세속적 영광과 내적 허무


1.1 세속의 정점: 귀족 사회의 빛과 그림자


18세기 후반, 유럽 귀족 사회는 그 찬란한 정점에 있었다. 프랑스혁명의 광풍이 몰아치기 전, 베를린, 파리,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궁정들은 여전히 위엄과 화려함을 뽐냈다. 베르사유 궁전에서는 실크 드레스를 입은 귀부인들이 황금 촛대 아래서 댄스를 췄고, 프로이센의 샤를로텐부르크 궁전에서는 군복을 입은 장교들과 시인들이 희미한 촛불 속에서 철학을 논했다.


크뤼드너도 이 세계의 딸이었다. 그녀는 1764년, 발트해 연안의 독일계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부유한 집안, 탁월한 교육, 우아한 사교 기술을 갖춘 그녀는 태어나면서부터 정해진 궤도를 달리는 운명을 지녔다. 베를린의 궁정에서는 그녀의 미모와 지성이 칭송받았고, 당시 왕비 프레데리카 샬로테와의 교류를 통해 왕실 내에서도 눈에 띄는 존재로 부상했다.


그러나 귀족 사회의 빛은, 오히려 더 짙은 그림자를 드리웠다. 이 세계는 화려했지만 동시에 공허했다. 사람들은 미소 속에서 음모를 꾸미고, 춤과 연회의 뒤편에서는 끊임없는 이익 다툼이 벌어졌다. 사랑은 진심이 아니라 신분과 재산을 위한 계산이었고, 우정은 권력관계에 의해 규정되었다. 귀족 여성들은 아름답고 교양 있는 장식품이 되어야 했으며, 남성들은 끊임없이 가문과 명예를 위해 자신을 희생해야 했다.


크뤼드너 역시 이 세계의 규칙을 몸으로 배웠다. 그녀는 궁정 예법을 완벽히 숙지했고, 화려한 복장과 세련된 대화술로 주변을 사로잡았다. 그러나 이 모든 성공은 내면의 공허를 채워주지 못했다. 그녀가 어느 날 친구에게 쓴 편지에서 고백한 말은 그 시대의 이중성을 여실히 드러낸다.


“나는 황금으로 짜인 베일 속에 살고 있어요. 그러나 그 베일 너머에는, 한 줌의 외로움과 무게를 알 수 없는 허무만이 있을 뿐이에요.”


이 고백은 그녀가 이미 귀족 사회라는 ‘무대’의 허상을 직감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녀는 무대 위에서는 이상적인 배우였지만, 무대 뒤에서는 무너지고 있었다.

크뤼드너 다시.png © 휘각(揮珏). CC BY 4.0. 출처 표기 필수

한 에피소드로, 1780년 베를린 궁정에서 열린 한 무도회 장면이 전해진다. 그 무도회는 프리드리히 대왕의 생일을 기념하는 자리였고, 유럽 각국의 외교관들과 귀족들이 대거 참석했다. 크뤼드너는 파란색 벨벳 드레스를 입고 나타났고, 이국적인 아름다움과 지적인 대화로 모든 이의 주목을 받았다. 그날 밤, 그녀는 스웨덴 대사와의 대화 중, 스스로도 알지 못한 채 다음과 같은 발언을 했다.


“당신들이 숭배하는 이 모든 것이, 만일 내일 붕괴한다면, 무엇이 남을까요? 우리는 과연 스스로 존재할 수 있을까요?”


이 발언은 곧 궁정 사회 내에서 “이상한 철학적 농담”으로 회자되었지만, 그녀 자신은 농담이 아니라 진심이었다. 화려한 외양 아래 움트던 불안과 의문, 바로 그것이 향후 그녀를 붕괴와 초월의 길로 이끄는 최초의 씨앗이었다.


귀족 사회는 영광의 척도였지만, 동시에 존재를 속박하는 철창이었다. 그리고 크뤼드너는 이 화려한 감옥 속에서, 이미 자신도 모르게 탈출구를 찾기 시작한 것이었다.



1.2 사랑과 결혼의 불협화음: 삶의 균열 시작


크뤼드너의 삶에 찾아온 사랑은, 처음에는 한 편의 서정시처럼 보였다. 1782년, 그녀는 프랑스 대사관에서 근무하던 바론 드 크뤼드너(Baron de Krüdener)와 결혼했다. 바론은 귀족 사회 내에서도 품위 있고 신뢰받는 인물로 알려졌으며, 크뤼드너에게 안정된 미래를 약속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모든 조건이 완벽했다. 가문, 지위, 재산, 그리고 사회적 명성까지. 그들의 결혼은 궁정 사회에서도 “성공적인 결합”으로 찬사를 받았다.


그러나 진정한 사랑은 계산될 수 없는 것이었다.

결혼은 곧 크뤼드너 내면의 균열을 빠르게 드러냈다.


남편은 전통적인 귀족적 가치—위계질서, 명예, 의무—를 중시했지만, 크뤼드너는 그 틀 안에 갇히기를 거부했다. 그녀는 대화와 영혼의 교감을 원했다. 그러나 바론 드 크뤼드너는 이런 요구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의 눈에 아내는 훌륭한 귀부인, 사교계의 꽃이어야 했다. “당신의 사색은 사회적 어울림에 해로울 수 있다”는 그의 말은, 당시 귀족 사회의 분위기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크뤼드너절망.png © 휘각(揮珏). CC BY 4.0. 출처 표기 필수

결혼 초기에 있었던 상징적 에피소드 하나가 전해진다.


결혼 후 첫해, 크뤼드너 부부는 파리 근교 베르사유에서 열린 정원 파티에 초대받았다. 고요한 저녁, 손님들은 정원의 인공 호수 주변을 산책하며 대화를 나누었다. 그 자리에서, 크뤼드너는 부드럽게 남편에게 이렇게 속삭였다.


“우리 둘만의 길을 걸을 수는 없을까요? 저 의전과 체면에서 벗어나, 진짜 삶을…”


그러나 바론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우리는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에서, 우리의 역할을 해야 해. 개인적 욕망은 귀족의 의무를 뛰어넘을 수 없어.”


이 짧은 대화는, 둘 사이에 놓인 심연을 상징한다. 크뤼드너는 관계를 통해 ‘존재’를 확장하고 싶었지만, 남편은 ‘역할’을 지키는 것으로 사랑을 정의했다. 이들은 같은 길을 걷고 있었지만, 서로 다른 세계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내면의 갈등은 점점 심화되었다. 크뤼드너는 외적으로는 완벽한 부인 역할을 수행했지만, 내면에서는 절망과 고독을 키워갔다. 그녀는 일기장에 이렇게 적었다.


“나는 그의 아내가 아니다. 나는 그가 믿고 싶은 환영(phantom)이다.”


결혼 생활은, 그녀에게 있어 하나의 연극이 되었다. 매일 웃어야 했고, 손님들을 맞아야 했고, 화려한 모임을 빛내야 했다. 그러나 무도회의 음악이 꺼진 밤, 침실의 거울 앞에서, 그녀는 혼자 눈물을 삼켰다.


이 시기의 크뤼드너는 이후 심리학적 관점에서도 흥미롭게 분석될 수 있다. 그녀는 외부로부터 주어진 '역할(identity)’과 내면적 ‘존재(authentic being)’ 사이의 긴장 속에서 점차 소진되어 갔다. 이는 오늘날 ‘역할 충돌(role conflict)’ 또는 '실존적 분열(existential split)’로 설명할 수 있는 상태다.


크뤼드너는 점점,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감옥에 갇힌 자신을 자각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사랑은 구원의 통로가 아니라, 존재적 붕괴를 앞당기는 촉매가 되었다.


결혼은 끝내 그녀를 파괴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 불협화음 속에서, 그녀는 서서히 “다른 삶”을 갈망하기 시작했다. 한때 세속적 영광의 축복처럼 보였던 결혼은, 이제 존재 혁명을 향한 어두운 예고편이 되었다.



[표지사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겨울궁전, 출처: i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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