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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든 문구점이 사라지다

-사라지는 오프라인 매장들

by breeze lee Mar 24. 2025

  3월부터 바빠지는 분들이 많겠지만 그중에 한 분이 바로 문구점 가게 주인이실 거라는 데 모두 동의하실 겁니다. 저희 집 주변 비교적 큰 문구사도 3월 초만 되면 아이들 손을 잡고 온 부모님들이  담임 선생님이 적어 준 준비물 목록을 보고 물건을 사느라 발 디딜 틈이 없었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3월 초 문구사의 분주함은 봄에 움트는 새순처럼 희망과 활기를 주는 3월의 대표적인 모습이었다고 생각되네요.


  

저희 집 주변에도 이런 중형 문구사가 있었는데 얼마 전 가게를 들어가 보니 무언가 물건이 정리된 듯 한산한 모습이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필요한 물건을 집어 계산할 때 사장님께서는

"저희 이번 달 20일까지만 영업합니다. 필요한 게 있으시면 그때까지 구매하세요."

라고 하셨고 현금으로 사면 70% 카드로 하면 50% 할인이라는 말도 덧붙이셨습니다.


  이 문구점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자면 우리 아파트 입주 시기인 15년 전 즈음에 맞춰 한 젊은 부부가 시작하셨습니다. 아이들과 농담 따먹기를 즐겨하시는 아저씨와 이런 아저씨를 흐뭇하게 쳐다보는 인자한 꼼꼼하신 안 주인의 케미가 돋보였던 곳이었어요.


  아이들이 즐겨 찾는 슬라임부터 겨울이면 눈오리, 눈썰매 등 택배가 오길 기다리지 못하는 아이들을 가진 부모님에겐 단비 같은 곳이었답니다.


또 우리 아이들 어린이집 시절, 알림장에 친구생일 선물 2000원 내외로 준비하라고 적혀있을 때면 여기서 한참을 고민하다 양말 미니색연필 등등 그 적은 금액으로 산 물건도 정성껏 선물 포장해 주셨답니다.


 또한 주변 미술학원의 준비물도 여기에 갖추어져 있었고, 유아들 한글 떼기 책부터  초등학생 실내화, 중고등학생을 위한 여러 종류의 펜 및 고급 만년필까지 갖추어  있어야 할 건 다 있는 비교적 큰 문구사였답니다. 게다가 할인과 적립을 동시에 받을 수 있어 우리 동네 주민들에게는 참으로 보물 같은 곳이었답니다.


  또한 근처 직장에 근무할 때 직장에서 대량으로 필요한 물건을 의뢰하면 구해 주시거나, 무거운 물건은 배달까지 직접 해 주셔서 엄청 요긴하고 감사한 곳이었지요. 당연히 저는 무언가에 얻어맞은 듯 충격이 컸습니다.


3월 20일까지 아쉬운 마음에 저도 두어 번 정도 문구사를 방문했습니다. 그 사이 물건을 사러 온 많은 분들도 목격했습니다. 세일하는 물건을 이 참에 득템 하려는 마음과 함께 아쉬워서 인사라도 하려는 분들이 섞여 있었지요.


 그중 어떤 분이 "이제 저희들은 어디서 물건을 사나요?"라고 하셨고 아저씨는 대답할 마땅한 말을 찾지 못하신 듯 옅은 미소를 지으며 침묵하셨습니다. 아마 저와 함께 많은 분들이 " 내가 그동안 쿠*에서 문구제품을 많이 구입해서 그런가?" 하면서 죄책감이라는 동질감을 느꼈다면 너무 과장한 것일까요? 그래도 물건을 이 문구점에서 많이 구입했다고 자부했던 저도 살짝 그랬답니다.


  쿠*의 장점이라면 아이가 실내화를 잃어버렸을 때 이미 밤 9시를 넘겼고 화장은 이미 지웠으며 나가기도 귀찮고 할 때 다 있으시잖아요. 검색해 보니 내일 새벽배송이 된다는 것 얼마나 반가운지... 모든 분들이 그렇겠지만 물건을 빨리 받아보고 원하는 디자인을 고를 수 있는 데다가 내 집 앞까지 배송해 주는 이런 (외국에서도 드문) 최고의 서비스 때문에 위 사이트를 이용하는 것이겠지요?


  이것이 그래도 동네에서 비교적 중형급이었고 유일하던 문구사를 넘어뜨리고 만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코로나가 화상회의나 수업을 자연스럽게 이끌었듯 변화의 바람이 좋고 나쁘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을 거 같습니다 이 또한 시대의 흐름인 걸 지켜보는 시대의 산 증인이 된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마음 한 구석에 드는 찬바람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네요. "어릴 함께 뛰놀던 골목길에서 만나자 하네 내일이면 멀리 떠나간다고~"

(동물원의 혜화동 노래가 갑자기 귓가에 들려오는 거 같았습니다)


3월 22일 토요일 오전, 우연히 문구사 앞을 지나다 보니 사장님과 인부들이 팔고 남은  물건을 정리하고 계셨습니다. 저는 재빨리 옆 마트로 들어가 커피와 주스 4개를 사들고 카운터 근처에 쪼그리고 앉아 정리하시는 아저씨에게 다가갔습니다.  조심스럽게 사장님~하고 부르며 카운터 위에 음료수들을 내려놓았고 일하는 분들과 함께 드리시라고 했습니다.

 

문구사 사장님께서는 함박웃음으로 고맙다 하셨고 저는

"너무 아쉬워요. 사장님 어디가 시든 건강하시고 또 뵈었으면 좋겠어요. 이제 어디로 가세요?"라는 말을 전했습니다. 전에는 다음에 무슨 일을 하실지 궁금해하며 슬쩍 물어보던 손님들의 질문에 절대 대답하지 않으셨지만


"아내와 함께 피자 가게에서 일할 생각이에요. OO0 피자 00점에 한번 놀러 오세요"라고 웃으며 말씀하셨어요. 3여 년 전부터 여사장님의 모습이 안 보이셔서 물었을 때 피자가게를 여셨다고 하더군요. 아마 이제 합류하시려나 봅니다.

 이렇게 마지막으로 문구사 사장님과 작별 인사를 하게 되어 아쉬우면서도 마음 한편이 따뜻해지는 토요일이었습니다.


  집에 오는 길에 남편이 "이제 문구용품을 어디서 사지?" 하길래 "당신이 물건을 많이 안 사서 문 닫는 거잖아. 그동안 좀 많이 사지 그랬어?"라고 농담을 하니 남편도 농인 줄 알고 피식 웃으며 "그럴걸 그랬나?" 하네요.


  부디 작은 문구사라고 좋으니 바통 터치할 좋은 분이 나타나기를 바라봅니다. 이것도 제 욕심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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