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지도 못하는 꽃이라 하는 분도 있지만

-꽃이 주는 힘-

by breeze lee

꽃 좋아하는 분 많으시리라 생각됩니다. 특히 여성분들이요. 저도 남편이 결혼기념일에 돈을 주는 게 좋으냐 꽃을 주는 게 좋으냐 하나만 선택하라면 꽃을 선택하는 아내입니다.

어릴 적에는 제가 꽃을 그리 좋아하는 줄 몰랐는데 시간이 점점 지날수록 꽃이름도 저절로 외워지고 처음 보는 꽃의 이름을 알아내려고 모야* 앱에도 물어보고 하는 것을 보고 제가 꽃을 정말 좋아한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지난번 식물원을 찾은 중년의 여성분들에게 기자가

"왜 우리 어머님들 프로필에 꽃사진이 많을까요?" 질문하니

"젊었을 때 아이 키우고 사느라 바빴지 그런데 이제 여유가 생기니 꽃이 눈에 들어오는 거 같네요."라고 하시더군요.

그러고보니 저도 쬐금 여유가 난 것 같기도 하네요.

꽃을 좋아하면서 생긴 몇 가지 일화가 있는데요.


결혼기념일 첫해부터 한 3주년 정도까지는 남편이 꽃을 사 가지고 왔습니다. 그러다 시간이 흐르다 보니 어느 날은 난 화분을 사 왔더라고요. 난 화분의 꽃도 좋았지만 왠지 남편이 꽃다발을 사 오는 게 아까웠던 거 같아 조금 서운하더라고요. 그러자 폭삭 속았수다의 금명의 엄마처럼 딸 표정만 봐도 딸의 마음을 아는 우리 어머니가 "아고 우리 딸은 꽃다발을 좋아하는데" 조용히 읊조리시다가 꽃다발을 사 오셨지 뭐예요.

이번 겨울에 남편이 직장에서 연수로 유럽을 갔는데 하필 제 생일이었지 뭐예요. 남편이 미안한 마음에 생일기념 용돈을 부쳐주긴 했으나 축구선수 안정환처럼 꽃배달 같은 건 생각지 못하는 그런 남자입니다. 친정엄마께서 꽃을 사 주고 싶다고 하시며 어떤 꽃을 사줄까 하시길래 봄도 다가오니 난 화분 하나 사달라고 했지요.(이제 저도 실용주의가 살짝 가미되었어요)

친정어머니가 점심을 한정식 집에서 사주시고 같이 화원에 들러 좋아하는 난을 고르라고 하시어 진분홍 난을 골랐고 센스 있는 화원가게 사장님이 '사랑해 큰딸'이라는 리본도 달아주셨습니다.



이건 정말 두고두고 비밀이었는데 영원한 비밀은 없다지요?

저희 아버지는 다른 아버지들처럼 자식들을 위해 칸트처럼 일정한 시간에 출근하시고 퇴근하시며 성실한 남편이자 아버지로서 직장생활을 하셨고 교장으로 정년 퇴임하신 분이셨습니다.

다만 아쉬운 점이라면 평소 아내에 대한 고마움이나 사랑 표현만 한 숟갈 덧붙이시는 다정한 분이셨다면 완벽한 남편이셨을 텐데라는 점입니다. 결혼기념일에 남편들이 아내에게 선물하는 모습을 드라마에서 보시면 왜 남편만 아내에게 선물해야 하는지 의문이라고 하시는 아주 고지식한 분이셨지요.

대학생 때였나 해서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결혼기념일에 한 번도 꽃을 못 받으셨을 어머니를 위해 화원에서 예쁘게 포장한 꽃다발을 내밀며 아버지께서 갖다 드리라고 했다고 했습니다. 평생 꽃선물 받을 일 없는 그런 어머니가 안쓰러웠나 봅니다. 그런 작전을 무작정 실행한 것을 보면요. 근데 얼마 전 아버지께 서운한 일이 있으셨는데 "그래도 그때 꽃 선물 했잖아" 하시는 거 보고 제가 깜짝 놀랐답니다. 어머니께 그때 그 기억이 커다란 행복으로 자리 잡았나 봅니다.

이제와 이실직고를 할 수도 없고 그냥 그렇게 어머니의 좋은 기억으로 남겨두렵니다.

지금 보니 어머니와 저는 그렇게 꽃으로 서로를 위해주며 살고 있었네요.



이번 겨울에 저는 우연히 홈쇼핑에서 한 달에 4회 꽃을 배달해 주는 상품을 보았습니다. 요일은 정할 수 있고 주마다 다른 색깔의 꽃을 플로리스트가 엄선해서 보내준다고 하더군요. 꽃병도 서비스로 주고요. 9만 9천 원 즉 10만 원이라는 꽃이 적은 돈은 아니었으나 저는 3월 시작이라는 긴장과 스트레스를 완화하려고 신청하고 말았습니다.

화요일마다 커다랗고 기다란 택배 상자가 도착하였고 열어볼 때 설렘은 또 다른 즐거움이었습니다.

분홍색 상자에 싱싱한 꽃들이 담겨 있고 마르지 않도록 초록색 물젖은 스펀지에 꽂혀 있었습니다. 설명에 따라 가지를 비스듬히 잘라내고 화병에 정수기 물을 담고 보존제도 넣고 꽃을 요리 저리 바꿔가며 꽂으면 거실이 환해지는 거 같았습니다. 또 생화에서 뿜어 나오는 싱싱하고 꽃마다 독특한 향기는 겨울 동안 움츠렸던 저의 마음이 기지개 켜듯 살아나게 하는 듯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거실에 앉아 커피 한 잔을 하며 꽃을 바라보는 행복한 마음으로 한 달을 잘 보낸 거 같습니다. 3월이 끝나고 또 마켓컬*같은 곳에서 저렴한 가격에 튤립이 나오면 사고 며칠 전 비가 와서 울적한 날에는 가까운 화원에서 프리지어를 사 오며 꽃사치를 좀 누렸습니다.


집 앞 상가에 화원이 하나 있는데 아이들 졸업식이나 입학식, 가족의 생일 등에 꽃을 자주 구입했더니 이제는 사장님과 친해졌고 저희 취향도 잘 아십니다. 여사장님이신데 자신도 꽃을 좋아해서 꽃가게를 시작했다고 하시더군요. 그런데 저 같은 여자들만 있는 게 아니었어요. 가끔 남자분들이 오셔서 꽃을 사시는데 아내가 꽃을 사 오면 차라리 돈으로 달라고 해서 서운하다는 말씀을 한다고 하시더라고요. 세상에 그런 로맨티시스트 같은 남자분이 있다니... 그런 남자분과 저는 연결되지 않았네요. ^^ 그 아내분도 내심 좋으시지만 그렇게 말씀하시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3월에 교실 창가가 너무 허전한 거 같아 화원을 찾아 수선화 2개, 수국 2개, 프리지어 2개, 달리아, 폼폼국화를 샀습니다. 여분 흙도 사고 인심 좋은 사장님이 좀 깎아주셔서 많은 꽃을 6만 3천 원에 구입하여 기분 좋게 돌아왔습니다. 남편이 집에 있는 화분에 분갈이를 해 주었고 거실에 있는 테이블에 올려놓으니 비밀의 화원에 들어온 소녀처럼 행복해졌습니다. 그날 거실에 이불을 펴고 자는데 머리맡에 꽃들이 있으니 왜 이리 행복한지 그 순간만큼은 비싼 호텔방에서 잔다 해도 이런 기분일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포근하고 향기로운 밤이었습니다.

저에게 꽃이란 행복 기쁨이라는 말로는 표현하기에는 2% 부족한 거 같아요. 꽃을 보고 있노라면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고 내향인으로서 말 못 할 마음의 긴장과 스트레스를 이완시켜 주고 가끔 심연으로 가라앉은 듯한 날에는 저를 수면 가까이로 이끌어주는 그런 존재. 내가 잘하는 게 뭘까라고 풀이 죽어있는 날 너는 너 자체만으로 빛나라고 우아한 자태와 향기로 힘을 주는 그런 존재입니다.

사람 많은 곳에 가는 것을 조금 부담스러워 하지만, 연중행사인 벚꽃구경도 지난번 토요일 다녀와서 좋았습니다. 예쁜 사진도 남기고 이번 주 퇴근길에 벚꽃이 날리는 모습도 아쉬웠지만 아련한 아름다움이었어요. 꽃이 지는 건 너무 아쉽지만 조화처럼 영원히 그 상태로 피어 있다면 이런 기쁨도 적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는 지난번 화실에서 장미꽃을 완성하고 이번에 유칼리툽스를 그리고 있는데 쉽지 않네요. 잘 완성

해서 거실에 두며 또 힐링할 생각입니다. 물론 생화도 가끔 사고요. 이렇게 제 공간은 일 년 동안 꽃을 벗 삼아 충만할 거 같습니다.

여러분도 기분이 안 좋은 일이 있거나, 긴장되거나 이유 없이 울적할 때 꽃에게 도움을 얻어 보세요. 누가 꼭 사줘야 하나요? 내가 나에게 주는 선물로 꽃선물만 한 게 없을 거 같습니다. 꽃이 주는 힘을 믿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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