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의 사춘기와 함께 넘기
눈이 내린다. 함박눈이다. 반은 위에서 내려오고 반은 아래서 올라온다. 바람 탓일까. 내려가다 보니 올라가 보고도 싶었나.
한참 후 보니 올라오는 눈은 없고 펑펑 아래로만 내린다. 하늘이 눈으로 가득 찼다. 올라가던 눈들까지 다 쓸고 내려간 건가. 괜히 감상적이 되고 싶은 날이다.
사십대가 언제 되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삼십대가 될 때는 참 시무룩했던 것 같다. ‘서른 즈음에’라는 노래가사 때문이었나, 그 노랠 부른 가수 김광석이 덜커덩 가버렸기 때문이었을까. 서른이 된다는 건 내 청춘하고 영영 이별하는 느낌에 가슴이 싸아해졌던 느낌이 생생하다.
반면에 사십이 될 때는 딱히 청춘이 간다는 느낌도 없었고 삼십 대나 비슷한 느낌으로 다가와 특별한 가슴 시림이 없었던 듯하다. 그렇게 준비 없이 맞이했기 때문일까. 완연한 인생중반을 달리는 사십 대는 더 힘들게, 힘겹게 지내야 할 듯하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복병들이 사방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오고 전사처럼 칼을 휘두르며 내달려온 느낌이다. 그래도 다행이다. 이렇게 숨 고르며 뒤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와 줘서.
남들은 다 평온하게 평탄하게 하루하루를 잘 보내고 있는 것 같은데 왜 나만 이렇게 힘든 시간이 쓸고 지나가는 건지, 예상치 못한 작고 큰 사건들에 울며, 새삼 노인들에 대한 존경심이 생겨나기도 했다. 어찌 됐던 인생을 저리 살아낸 부모님과 어르신들 노고의 고단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 돌이켜보니 내게 나타났던 그 복병들은 나의 하루, 내가 거둔 성공들조차 행복한 느낌을 받지 못할 정도로 지루해질 때, 그 지루함을 없애주느라 인생여정에 숨겨놓은 신의 선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삶이 엉망진창이란 생각이 들 때, 마음이 아파도 얼굴이 찌그러진다는 걸 알게 되는 인생의 우울한 시기를 보내며 삶의 의욕을 잃고 방황하는 순간에, “이 세상에 완전히 잘못된 건 없다. 멈춰서 있는 시계조차 하루에 두 번은 시간이 맞잖니”라는 누군가의 말로 마음을 북돋우며 신의 선물을 음미해 본다. 그러고 보니 멈춘 시계처럼 나도 인생중반에 스르륵 멈춰서 있는 듯하다.
참 별거 아니다, 지나고 보니.
엄마 말이라면 무조건 낚아채 난도질을 하듯 달려들던 무섭기만 하던 딸아이도 이제는 중3 자기 생일이 와야 끝난다는 중2 병을 건너 대학생도 안 됐는데 앞서서 제법 말도 통하는 딸이 되어 있고, 학교에서 걸려온 아들 담임선생의 전화에 손 떨며 운전하고 가던 날도 이젠 추억이 되어 주었다.
학교 가는 길에라도 말 한마디 건네 보려는 엄마의 안간힘조차 외면하겠다는 의지로 운전석 옆자리 창 쪽으로 뚫고 나가겠다는 듯 앉아 있던 딸아이가 이제는 쿨하게 엄마의 말에 “그런가?”하며 씩 웃어도 준다. 개그콘서트를 보다가 어느 개그맨 얘기를 날 보며 해주기도 한다. ‘어, 얘가 지금 날 보고 환하게 웃고 있는 거야.’ 눈물이 날 것만 같다.
하루가 멀다 하고 전쟁을 치르는 집으로 돌아오는, 세상살이에 지친 남편도 한계에 다다랐는지 덩달아 날 시험에 들게 했다.
중2 지나면 중3인 것을 왜 그때는 그다지도 어느 집 누구도 그리 못되게 굴더니 좀 커서는 세상 누구보다 착한 딸이 되었다는 말이 못 미덥던지.
“이번 시험 저번보다 잘 보면 아빠가 파카 사 준대.”
“정말? 근데 그건 좀 그래. 작년에 파카 샀잖아. 다른 거 사던가.”
“그래? 그럼 공부할 필요 없겠네.”
아직 대학생이 되지도 않았고 철이 든 건 아니지만 조금 후 들어가서는 공부를 하고 있다.
남자는 여자랑 데이트를 해 봐서 날 좀 봐 달라고 투정 부리는 사춘기 여자아이를 받아 줄 수가 있는데, 엄마라는 사람은 여자가 처음이라 그게 안 된 거라는 깨달음을 얻었노라며 다음날 남편과 교회 가는 길에 고백하고는 당신 잘 자라고 있다고 칭찬도 받아 본다.
인생 꼭 다 살아야 덧없음을 느끼나. 지금 벌써 알아 버렸다. 이렇게 창가에 서서 날리는 눈을 보며 맛보는 평온함이 자식에 대한 절실함으로 힘겨워하던 지난날의 덧없음과 함께 온다.
인생에 고난은 꼭 쌍으로 온다던가. 무슨 일이 생길 때 평상시 깊은 내공이 쌓여 있는 사람이 아닌 한 평정심을 갖고 맞이하기란 쉽지 않다. 우왕좌왕하다 보면 다른 사건에 연루되고 그게 또 하나의 시한폭탄이 되기 십상이다. 그래서 여느 집에선 봄바람처럼 지나가는 아이의 사춘기가 다른 집에선 기폭제가 되어 살짝 덮어져 있던 문제가 드러나는 순간이 되기도 한다. 우리 집처럼.
어쨌든 우리 집도 그 시간들을 헤쳐 나왔다. 이 정도면 제법 내공을 기르고 있는 중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매 고비고비를 넘겨야 한다는 걸, 인생 어느 한순간 방심하여 허투루 보낼 수 없다는 걸 아이를 키우며 같이 배우면서 성장해 간다.
3월에 내리는 눈발은 겨울과 봄을 그라데이션하는 붓터치 같다. 내려가기만 하니 올라가고도 싶어지는 눈송이들처럼 한 번쯤은 인생 굽이굽이 돌길에 튀어 올라가도 보고 걸려 넘어져도 보고 역동적으로 겪을 것 다 겪어보고 나서, 살아보니 인생 별거 없다 읊조려야 감흥이 진해지려나.
소용돌이치며 올라오는 눈발도 새롭고 좋지만 정지화면처럼 곱게 내려오는 눈송이가 더 친근하다. 잘 논다 간다 말할 수 있게 치열하게 살고 싶었던 게 30대라면, 40대는 거꾸로 올라오던 눈들도 다 함께 데리고 내려가 조용히 쌓이는 눈처럼 저 마을 어느 한 구석에서 가만히 숨죽이며 세상을 지켜보고 싶어지는 때인 것 같다.
따스해 보이지만 구멍 숭숭 뚫린 세타를 걸친 듯한 이 불완전한 느낌은, 완성되진 않았지만 인생 중반 여기서 쯤 맛보기엔 딱 어울리는 아직은 덜 숙성한 파란색 같은 행복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