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7월 26일
실패, 좌절, 탈락, 실연, 상실….
누구도 가까이하기 싫은 단어이겠지만, 살아가면서 필연적으로 마주치게 되는 단어들이기도 하다. 인생에서 심각하게 혹은 사소하게 경험하는 실패와 좌절은 차라리 인생의 친구라 하겠다.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에서 작가 박민규는 실제로 존재했던 프로야구팀 삼미슈퍼스타즈의 통산 승률인 1할 2푼 5리가 마치 우리네 인생의 승률 같다고 말한다. 때론 조금 잘 나가기도 하고 또 때로는 못난 일을 저지르면서 살아가는 우리들이 수많은 선택과 갈망의 끝에서 얻게 되는 성적표인 것이다. 승률 1할 2푼 5리를 분수로 바꾸어 보면 1/8인데, 쉽게 말하면 8번 시도해서 1번 정도 성공한다는 뜻이다.
생각해 보면 정말 그랬던 것 같다. 살아가면서 일어나길 간절히 바랐던 일들, 그리고 일어나지 않길 간절히 바랐던 일들은 너무 자주 엇갈려 왔고, 제법 시간이 지나 세월이 되었고 인생이 되어 가는 지금, 손에 쥔 성적표의 승률은 잘 쳐줘도 대략 1/8 아니면 1/10 정도인 것 같다. 그런데 최근 승률이 1/8은 커녕 1/80도 안 되는 사람이 하나 있다. 최근 84일 동안 물고기를 한 마리도 낚지 못한 어부 산티아고가 바로 그 인물이다.
책을 펴자마자 나오는 노인에 대한 소개가 바로 84일 동안 고기를 잡지 못한 어부라니 도대체 뭐가 문제인 걸까? 그 노인이 이제 얼마나 대단한 물고기를 낚게 하려고 작가는 이런 포석을 깔았을까?
그리고 나서, 이 길지 않은 분량의 소설은 노인이 85일째에 만난 물고기 -자신의 고깃배와 크기가 비숫한- 와 어떤 일을 겪는지에 집중한다. 어마어마한 크기의 청새치가 노어부의 미끼를 물긴 물었는데 그 후가 문제다. 청새치 입장에서는 별 거 아닌-어쩌면 노인을 닮은- 조그만 고깃배를 끌고서 점점 더 큰 바다로 나가기 시작하고, 어부는 낚싯줄을 당기고 싶지만 성급하게 욕심을 부렸다가는 낚싯줄이 끊어질 것을 알기에 그러지 못하고 무작정 끌려가게 된다. 며칠 간의 밀고 당기기 끝에 노인은 물고기를 잡는 데 성공하고 의기양양하게 항구로 돌아갈 꿈을 꾸지만 더 큰 시련이 기다리고 있다.
결국 뼈만 남은 물고기와 함께 항구로 돌아온 노인. 그 물고기를 잡아 배 옆에 묶을 때 꾸었던 꿈 -물고기를 팔아서 한몫 챙길-은 이룰 수 없게 되었지만, 배에 여전히 매달려 있는 그 물고기의 뼈를 확인한 마을 사람들은 더 이상 노인을 뒤에서 비웃을 수 없을 것이다. 이렇게 헤밍웨이는 자신이 좋아했던 섬 쿠바와 자신이 좋아했던 취미인 낚시를 소재로 자신의 이야기, 그것도 마지막 이야기를 펼쳐 보였다.
그런데, 하나의 나라, 하나의 언어를 뛰어넘어 한 시대를 대표하는 거장이 된 헤밍웨이도 자신의 인생에서의 승률이 그리 마음에 들지는 않았나 보다. 뛰어난 작품을 쓰면서도 여러 논란에 휩싸이기도 하고, 결혼과 이혼을 반복하기도 한다. 전쟁의 시대를 살았던 탓에 큰 부상도 입었었고 정신 질환으로 오래 고통받다가 결국 자살로 생을 끝낸다.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노인과 바다>는 그의 생전 마지막 작품이 되고 만 것이다.
노인 산티아고는 실제로 쿠바에 살았던 한 어부를 모델로 한 캐릭터이지만, 많은 시간이 지난 후 이 책을 접한 독자에게는 자연스럽게 헤밍웨이 자신을 투영한 인물로 읽힌다. 그리고 어부가 고기를 낚지 못한 84 일의 시간들은 헤밍웨이에게 있어 견디기 힘든 그러나 견디어야 했던 인생의 어느 시간들이었을 것이다. 그 84일 동안 산티아고는 물고기와의 싸움에서 그리고 인생의 운과의 싸움에서 계속 패배하지만 배 위에서 이렇게 외친다. “인간은 파괴될 수는 있지만 패배하지는 않는다.” 이 말은 읽는 이들마다 그리고 읽고 있는 그 순간에 따라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데, 지금 나에게는 이렇게 해석된다. ‘인생의 승부에서는 패배란 내가 인정할 때만 비로소 패배인 것이다.’ 84일 동안의 패배를 패배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노인은 85 일째 날에도 그렇게 바다로 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의 우상인 야구선수 디마지오를 떠올린다. 운동선수로서는 꽤나 심각한 발의 문제를 갖고 있으면서도 메이저 리그 최고의 선수로 활약한 디마지오를 자신의 삶에 이입시키면서 자칫 하면 인생 마지막이 될 수도 있었던 고기잡이를 나서는 것이다.
<노인과 바다>는 그 자체로도 재미있고 뛰어난 소설이다. 하지만 작가 헤밍웨이의 삶을 조금이라도 알고 난 후 읽어보면 어부 산티아고와 헤밍웨이가 마치 한 사람인 것처럼 겹쳐 보이고 결국 작가가 산티아고의 고기잡이 일을 통해 자신의 인생을 펼쳐 보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인생의 수많은 영욕을 시간의 바다에 띄워 보내고 초라하게 남았지만, 아프리카 어느 해안에서 보았던 사자의 당당한 모습을 떠올리며 또 한 번 위대한 작품을 써 내려간 -커다란 청새치를 낚은- 것이다. 노인이 인생 최고의 대어를 잡지만, 정작 항구로 돌아오는 동안 고기는 상어 떼에 다 빼앗기고 빈털터리로 돌아오는 결말은 독자로 하여금 인생의 의미를 환기시켜 주는 최고의 결말이며, 그 상황을 끝까지 무심하고 간결하게 서술하는 헤밍웨이의 문체는 오히려 독자의 감성을 더욱 고양하고, 그가 왜 거장인가를 확인하게 해 준다.
얼마 전 아이와 같이 보았던 팀 버튼의 영화 <빅피쉬>가 떠올랐다. 주인공인 아버지는 인생의 여러 경험 이야기를 -너무 비현실적이어서 지어낸 것임에 분명한- 아들에게 들려주고 마지막 눈을 감는데, 장례식 날 그 이야기들 속 인물들이 죽은 주인공을 추모하기 위해 모여드는 모습은 놀라우면서도 감동적이었다. 그리고 주인공은 커다란 물고기 -영화 제목이 <빅피쉬>인 이유-가 되어 강을 헤엄쳐 떠나간다.
헤밍웨이는 <빅피쉬>의 주인공처럼 편안하게 눈을 감지는 못했지만, 우리에게 놀랍고 감동적인 이야기를 들려주고 나서 큰 물고기가 된 그 누군가처럼 아프리카의 사자로 태어나 삶의 고통은 잊어버리고 어느 해안을 자유롭게 거닐고 있지는 않을지 맥락없는 상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