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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음식...달콤쌉싸름한 초콜릿

2023년 4월 30일

by 행크

사람마다 정말 좋아해서 웬만해서는 거절하지 않는 음식이 한두 가지는 있기 마련이다.


아내는 이 부분에 아주 확고해서 좋아하는 음식을 물었을 때 어떤 망설임도 없이 떡볶이를 외친다. 아내가 떡볶이를 얼마나 좋아하는지는 ‘옛문서’로도 엿볼 수 있는데, 1980 년대 중학생 시절 썼던 금전출납부에 그 기록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무려 40여 년 전의 기록인데, 펼쳐보면 하루가 멀다 하고 떡볶이를 사 먹은 기록이 적혀 있다. 결코 넉넉하지 못했을 용돈의 대부분을 학교 근처의 떡볶이 가게에 쏟아부은 셈인데 얼마나 그 음식을 좋아하는지 다른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 세월이 지나 딸을 낳은 엄마가 되어서는 유치원 다니는 아이를 데리고 홍대로 진출하여 상수역 근처 어느 즉석 떡볶이 가게에서 모녀가 오손도손 떡볶이를 먹는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분명 애가 먼저 먹고 싶다고 하진 않았을 것이다.


나의 경우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음식은 초콜릿이다. 아내의 떢볶이에 대한 사랑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웬만해서는 거절하지 않는 음식이 초콜릿이다. 초콜릿 하면 단 음식의 대명사이기도 한데, 내가 단 음식을 좋아하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 다른 단 음식들은 누가 주면 먹긴 하지만 일부러 찾아 먹지는 않는 걸로 봐서 그냥 초콜릿을 좋아하는 것이라 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어린 시절, 그러니까 초등학교 입학 전후의 나이일 때, 할머니가 어쩌다 한 번씩 사다 주신 미제 ‘허쉬 초콜릿’이 나에게는 초콜릿의 처음이자 대표적인 이미지로 머리에 박혀 있다. 어린아이의 두 손보다 훨씬 컸던 그 두툼한 판초콜릿은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마법을 부리는 존재였다.


한편, 딸아이는 조금 특이하게 멕시코 음식을 좋아한다.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이태원에 있던 “온더보더”라는 멕시코 음식점에 데리고 간 적이 있는데, 여러 재료를 밀전병에 싸 먹는 화이타라는 요리를 먹고 나서는 마음에 깊게 들어갔는지 중학생이 된 지금까지도 주기적으로 멕시코 음식을 먹으러 가는 것이 우리 가족의 일과가 되었다. 여러 번 방문하면서 그 식당에서 파는 메뉴는 거의 다 먹어보았는데, 대부분 맛있게 먹었었고 특히 아이는 브리또에 꽂혀서 최근 몇 년째 온 더보더를 갈 때마다 주문하는 메뉴가 되었다.

그렇게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멕시코의 음식이 우리 가족의 필수 메뉴로 자리 잡아가면서 문득, 아주 오래전부터 책장에 꽂혀 있던 책이 눈에 들어왔는데, 바로 이 책이다.


라우라 에스퀴벨의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제목만큼은 아주 오래전부터 들어서 알고 있었고,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읽어봐야지 하며 사 두었다가 잊고 있었던 책. 음식에 대한 아주 잘 쓴 작품이라 알려져 있는 데다, 그 음식도 멕시코 음식이니 갑자기 호기심이 발동한 것이다. 게다가 책의 제목에 ‘초콜릿’이 들어가다니, 멕시코에서는 초콜릿으로 어떤 음식을 해 먹을까 더더욱 궁금해졌다.


이 책은 멕시코 혁명의 시기를 시대 배경으로 한 가문의 마지막을 그리는, 정확하게는 마지막까지 가문을 지킨 주인공이자 그 가문의 주방을 책임진 여인의 이야기이다. 많은 소설이 그러하듯 주인공은 태어날 때부터 남다른데, 안방이나 병원의 분만실이 아니라 주방의 커다란 탁자 위에서 태어난다. 운명적인 것이다. 태어난 공간이 공간인 만큼 주인공은 요리에 관한 한 최고의 재능을 갖고 있는 데다, 중남미 소설의 매력적인 특징인 마술적 사실주의까지 더해져 정말 환상적이며 창의적인 음식 소설이 되었다.


이 소설이 담고 있는 놀라운 매력은 주인공이 풀어가는 이야기뿐만 아니라 음식 그 자체에 있는데, 멕시코의 전통 음식이 갖고 있는 깊이와 다양함은 예상을 완전히 뛰어넘는다. 우리 가족이 온더보더에서 먹어온 음식들은 과연 멕시코 음식에 낄 수는 있는 건가 생각이 들 정도로, 하나도 알거나 들어본 음식이 없었고, 책에서 묘사하는 요리법은 어떤 요리가 만들어질지 도무지 상상할 수 없다. 다만 그 요리법들이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요리법은 절대 아닐 것이라는 정도를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챕터마다 각각의 요리를 설명하고, 그 요리와 연결해서 풀어나가는 에피소드들은 어느 하나 버릴 것 없이 전체 이야기를 채워나가고, 끝내 주인공 티타는 모든 것을 다 이룬 뒤 가장 충만한 상태로 집과 함께 깨끗이 산화되어 사라지고 만다. 내가 지금까지 읽은 소설의 결말 가운데 가장 시각적으로 뛰어난 결말이라 할 만한 장면이었다. 주인공이 인생이라는 요리의 마지막 재료가 되어 자신의 그것을 완성하고 떠난 것일까? 우리네 식으로 표현하면 인생의 우여곡절 끝에 모든 것을 다 이루고 신선이 되어 우화등선한 것만 같다.


이 소설이 멋진 또 하나의 이유는, 주인공인 티타가 여자로서 그 힘들었던 시대에 주체적인 삶을 어떻게 지켜나가는지를 정말 잘 보여준다는 것이다. 티타는 평생을 집안에서 그것도 거의 주방에서 보내지만, 그는 혁명 전사로 세상을 떠도는 큰 언니 못지않게 인생을 자신의 의지로 채워간다. 이것은 남성 작가들은 상상하기 힘든, 탁월한 여성 소설가만이 쓸 수 있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다 읽고 단 하나 아쉬운 점은 소설 제목의 우리말 번역이다. 원래 제목은 소설의 주제를 비유적으로 잘 담아내고 있어 부족함이 없는데, 우리말로 번역한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이라는 제목은 이 책의 의미를 담아내기에는 많이 부족한 선택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우리나라에 원작 소설보다 영화가 먼저 들어오는 바람에 생겨난 선택인 것 같은데, 그래도 많이 아쉬운 마음은 어쩔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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