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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고 같은 삶의 모습...아침 그리고 저녁

2024년 1월 6일

by 행크

새해의 첫날, 2024년 1월 1일의 오후에 딸아이와 나는 일본 간사이 공항의 한 라운지에 앉아 있었다. 창 밖이 시원하게 보이는 자리를 잡고 앉아 자그마한 빵 몇 조각과 달지 않은 탄산음료를 먹고 있는데, 몸이 앞뒤로 울렁울렁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처음엔 내가 피곤해서 현기증을 느끼는 건가 했는데 옆자리의 아이도 흔들림을 느꼈는지 좀 놀란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지진이구나!’

흔들림은 조금 더 이어졌고 유리잔에 담겨 있던 음료도 제법 출렁거려 손으로 꼭 쥔 채 흔들림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예전, 일 때문에 일본을 자주 다니던 때에 두어 번 약한 지진을 느낀 적이 있었는데, 그때보다 좀 더 많이 흔들린 것도 같고 해서 바로 구글 검색을 해보니, 진도 7이 넘는 아주 강한 지진이 발생해서 일본의 북서 해안은 큰 피해가 발생했다고 한다. 인명 피해도 커서 100 명 가까이 많은 사람들이 지진으로 사망했다고 하니 그 순간 일본에 있었던 우리 가족에게 별일 없었던 것이 정말 고맙게 느껴졌다. 한편으로는 갑자기 지진이라는 천재지변을 당해 어찌 손 쓸 기회도 없이 삶을 마감한 사람들이 안타까웠다. 그들이 비록 지진이 많이 나는 일본이라는 나라에 살고 있다고 해도 자신이 그렇게 속절없이 죽음을 맞으리라 생각한 사람을 없었을 것이다. 삶을 돌아볼 시간도, 작별 인사를 나눌 기회도 갖지 못한 이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많이 좋지 않았다.


사람은 태어날 때 아무 준비도 없이 별안간 세상으로 나온다. 그렇게 인생을 시작하는 아이는 부모의 보살핌을 받고, 친구를 사귀고, 사랑을 만나고, 또 헤어지기도 하며 자신의 시간을 채워간다. 살아가며 뜻하지 않은 행운을 만나거나 불운을 만나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삶이 흐르기도 한다. 그렇게 또 시간이 흐르고 각자에게 주어진 방식으로 죽음을 만난다. 준비없이 치루어지는 탄생은 생물학적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니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만, 준비하지 못한 죽음은 꽤나 곤혹스럽다. 얼마 전 있었던 어느 유명한 배우의 죽음처럼 스스로 죽음을 결정하는 경우-스스로라는 말은 써놓고 보니 좀 많이 틀린 표현인 것도 같다-는 또 어떤가? 죽어 떠나는 사람이나 그것을 지켜보고 견뎌야 하는 남은 사람들이나 모두 힘겹기만 하다.


이렇게 탄생에서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우여곡절들이 바로 이야기이고, 우리 시대에는 소설이라는 형식으로 사람들에게 전해져 기쁨과 슬픔, 고독과 허무, 미움과 분노, 평화와 구원을 느끼게 한다. 그런데, 소설이긴 한데, 그 우여곡절을 소재로 삼지 않고 한 인물이 태어날 때와 죽을 때 만을 소재로 한 소설이 하나 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주인공이 태어난 날과 죽는 날, 단 이틀만을 묘사한 소설이다.


욘 포세의 <아침, 그리고 저녁>.


주인공 요한네스가 태어난 날은 초조하게 아이의 출산을 기다리는 아버지의 시점에서, 죽는 날은 요한네스 자신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풀어가는데, 태어난 그다음 날부터 죽기 그전 날까지의 이야기는 완벽하게 들어내 버리고 이틀의 시간 만으로 요한네스의 인생을 이야기한다. 책의 제목에서 “아침”은 태어난 날을, “저녁”은 죽는 날을, 그리고 그 사이의 시간은 “그리고”이다. 그 “그리고”의 시간은 결코 짧지 않아서 평생의 친구도 만나고, 결혼해서 많은 아이도 낳고, 그 아이들도 또 자신의 아이들을 낳았을 정도의 충분히 긴 시간이다. 하지만 그 시간은 주인공의 독백 속에서 언뜻언뜻 스쳐 지나갈 뿐이고, 주인공이 죽음을 맞아 자신의 처지를 받아들이는 과정에 집중한다. “그리고” 단 세 글자로 요약하고 넘어간 주인공의 인생은 독자가 상상으로 채워야 한다. 아마도 독자들이 상상해 본 요한네스의 인생은 독자 각각의 인생을 닮아 있을 것이다, 아주 많이. 당연하게도 우리는 우리가 지나온 시간의 기억 속에 요한네스를 대입해 볼 것이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르고 세월이 지나 우리가 죽음을 맞게 될 그날, 우리에게 올 죽음의 모습이 요한네스가 맞는 죽음과는 다를 수 있겠지만, 그날 요한네스가 어리둥절하고 당황하면서도 자신의 대단치도 않았던 삶을 긍정하며 마침내는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나도 그리고 우리도 그렇게 그 순간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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