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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여행과 인생...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2022년 9월 26일

by 행크

스물다섯, 아니면 스물여섯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학부를 졸업하고 많은 동기들이 그러하듯 대학원에 진학해서 석사 과정 중인 시절이었다. 어느 주말, 부산에서 서울로 오는 무궁화호 열차를 타고 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린 시절 이혼한 부모님 때문에 어수선한 집안 배경을 가지게 된 나는 스무 살이 훌쩍 넘은 나이에도 그 일을 생각하면 여전히 마음이 편치 않았고, 가끔이지만 부산으로 친어머니를 만나러 갔다 오는 길이 그리 즐겁지도 않았다. 서울로 돌아올 때는 매번 무궁화호를 이용하였는데, 당시 특급 열차였던 새마을호-그때는 ktx가 없던 시절이다-는 생활비를 벌어 쓰고 있는 대학원생에게 조금 사치 같기도 했고 사실 새마을호로 두어 시간 더 빨리 서울에 도착해 봐야 일요일 저녁에 딱히 할 일도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렇게 저물어 가는 일요일의 풍경을 차창을 통해 몇 시간이고 바라보며 제법 예민했던 20대의 상념에 빠져들곤 했었다.


부산을 출발한 기차는 오랜 시간에 걸쳐 큰 도시와 작은 마을을 여러 번 정차하며 결국은 서울로 들어온다. 해도 저물어 어둑어둑한 하늘을 배경으로 기차가 마침내 한강을 건너면 내 마음도 수없이 오가던 생각들을 빠져나와 현실을 맞을 준비를 한다. 속력을 한참 줄인 기차는 한강을 건너고도 서울역 도착까지 아직 4, 5분이 더 남았지만 짐짓 먼저 일어나 출입구 쪽으로 가 미리 서있기도 했다.


내 인생의 초반부, 그러니까 20 대 초반까지는 부모님의 이혼이 내 마음 한구석을 꾹 누르는 기분으로 살아왔다. 사람의 마음이란 것이 당연히 머리에 있는 것이겠고, 때로는 가슴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나에게는 어떤 마음이 목구멍 바로 아래에도 하나 더 있는 것만 같았다. 어느 순간 내지르고 싶지만 꿀꺽 삼키고 마는, 그렇다고 시원하게 아래로 내려가지도 못하고 멈추는 그곳 어딘가에.


몇 번인지 세어보진 않았지만 그렇게 반복되는 부산으로의 기차 여행에서, 덜컹거리는 무궁화호 차창을 바라보다가 어느 순간 불현듯 깨달았다. 내가 타고 있는 이 기차가 서울역에 도착하면 기차에서 내려 다시 일상을 살아가야 하듯, 내 인생도 이제 서울역에 도착하였음을, 이제는 유년의 기차에서 내려 조금은 새롭고 성숙한 삶을 살아가야 함을.


세상 분간 못하던 어린 시절부터 떠안아야 했던 상처와 박탈감, 어쩌면 모두가 피해자일지 모른다는 어설픈 연민과 비애감. 이젠 잘 쓸어 모아 마음 어느 한 칸에 고이 담아두고 어지간하면 꺼내보지 않도록 하자. 앞으로도 많은 슬픔과 어려움을 마주 하겠지만 그것들이 남이 아니라 나로 말미암은 것이 되도록 하자.


그러고 나자 곧바로는 아니었지만 목구멍 아래 있던 그것이 차츰차츰 자신의 무게를 잃어가는 게 느껴졌다. 그 몇 번의 기차 여행은 그렇게 나에게 의미가 되어 주었던 것이다. 단조로운 리듬의 기차 바퀴와 무심한 창 밖 풍경과 노을 진 한강 철교는 나에게 큰 선물을 준 셈이었다.


그 뒤 한 세월이 지난 어느 저녁, 한 권의 책을 읽다가 위의 이야기를 단 한 줄로 압축한 문장을 만나게 되었다.

“기차에서는 인생에 대해 더 명확하게 생각할 수 있죠.” 바로 이 책이다.


에릭 와이너의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책의 한 꼭지에 잠깐 등장하는 어느 술집의 바텐더가, 기차를 좋아하는 이유를 묻는 지은이에게 해준 대답이다. 바텐터는 제법 번듯한 회사에서 회사원 생활을 하던 중, 많은 기차 여행을 통해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고 나서는 세상이 정해준 삶을 던져 버리고 자신이 정하는 삶을 살기로 한 뒤 술집-기차 모형을 콘셉트로 한-을 차린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술집이 아니다. 자신 인생의 길을 돌아보고 자신만의 길을 가기로 한 것, 그리고 그 결심이 기차 여행을 통해서 일어난 것이 중요한 것이다. 바텐더에게, 지은이에게 그리고 독자인 나에게도.


증기기관의 발명으로 등장한 기차는 인류를 산업사회로 그리고 자본주의 세상으로 이끌었다. 문명이 생겨나고 수천 년이 지나도 여전히 느릿느릿 흐르던 인간들의 시간을 지금처럼 정신없이 급하게 흐르게 만든 장본인이다. 그런데 그 후로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너무 멀리 와버린 탓일까, 우리에게 기차가 주는 감수성은 오히려 기차의 등장 이전의 시대를 떠올리게 하고 기차가 지나간 굽이굽이 철길은 우리 각자의 인생을 뒤돌아보게 만든다.


책 제목에서도 넌지시 풍기듯이-여기서 익스프레스는 특급열차를 뜻한다- 지은이는 역사 속에서 지혜로웠던 옛사람들의 흔적을 찾아가는데 적극적으로 기차를 이용한다. 비행기를 타고 가거나 차를 몰고 간다면 훨씬 빠르고 편하게 갈 수도 있을 텐데, 최선을 다해 기차를 타려 한다. 심지어 간디의 에피소드에서는 간디의 마지막 흔적이 남아있는 곳을 가기 위하여 여러 기차들 중에서도 굳이 간디가 즐겨 탔었던 등급의 기차를 타려 한다.


그렇게 기차를 타고 가는 동안 자신이 찾아가는 그 철학자/사상가/작가의 책을 읽기도 하고 자신의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며, 그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준다. 오래된 철학과 사상을 공부하고 깨닫는 것은 그 결과 못지않게 과정도 중요하다는 것을, 지은이는 기차라는 조금 불편하고 느리기도 하지만 특유의 감수성을 간직한 탈 것을 이용하는 모습을 빌려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 같다. 그 덕에 이 책은 좋은 철학 입문서이기도 하지만 또한 못지않게 좋은 기행 문학 작품이 되었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어지간해선 읽지 않을 책들을 맛보는 동시에, 역시 웬만해서는 가보지 못할 곳을 지은이의 눈을 통해 가보고 느낄 수 있다. 더욱 좋은 것은 이 지은이의 예전 책인 <행복의 지도>에서 보다 더 원숙하고 아름다운 문장으로 읽는 이로 하여금 순수한 독서의 즐거움을 안겨 준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 곳곳의 산과 들과 강과 다른 모든 풍경 속을 달리고 있을 기차를 바라보는 느낌이다.


마지막 페이지를 읽고 책을 덮고 나니, 문득 구례행 기차를 타고 지리산을 향하던 예전이 떠올랐다. 용산역에서 밤 12시 가까운 시간에 출발하면 새벽 4, 5 시쯤에 구례에 도착하던 무궁화호 열차. 들떠 있는 등산객들로 가득 차 시끌벅적한 객차 안은 피곤한 중에도 좀처럼 잠들기 어려웠지만, 막 시작한 여행의 설렘이 싫지만은 않았다. 조금 추워지면 구례행 기차를 다시 한번 타고 가서 지리산 노고단이라도 올라가 보아야 하겠다. 그 기차 여행은 또 어떤 인생의 자그마한 깨달음을 나누어줄지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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